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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주강혁은 더 답답해졌다. 도무지 말이 통하지 않았다. “라희야, 시대가 바뀌었어. 지금 연예계는 예전처럼 실력 하나로 버틸 수 있는 곳이 아니야.” 그 말은 곧 윤라희가 이제 시대에 뒤처졌다는 뜻이었다. “알아. 그런데 오빠, 유행은 바뀌어도 실력은 절대 사라지지 않아. 나 다시 일어설 수 있어.” 결국 주강혁은 지친 듯 말했다. “알았어. 내일 한번 물어는 볼게. 대신 확답은 못 한다.” “응. 고마워, 오빠.” 윤라희는 진심을 담아 감사를 전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녀는 단 한 번의 기회만 주어진다면 다시 꼭대기까지 올라갈 수 있다고 확신했다. 다음 날 주강혁은 약속대로 연락을 줬다. “미안하다, 라희야. 서 대표한테 말은 꺼내봤는데, 너 복귀하는 거 반대하시더라.” 윤라희는 입술을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예상했던 반응이었다. 그도 그럴 게 지금 레온 엔터의 실질적인 대표는 바로 그 불륜 스캔들의 또 다른 당사자 서경민이었다. “오빠, 서 대표님한테 전해줘. 내가 직접 만나서 이야기하고 싶다고.” “그건...” 주강혁은 조금 망설였다. “네 실력이면 다른 길도 충분히 갈 수 있어. 굳이 이 바닥에 매달릴 필요 없잖아.” 윤라희가 이혼당한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서경민과 불륜을 저질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런 상대와 다시 마주 앉아 무슨 이야기를 하겠다는 건지 생각만 해도 기막혔다. 솔직히 이 바닥에서 그런 식의 거래는 흔했지만 스스로 그 길을 택할 정도로 타락해 버린 윤라희가 안쓰럽기까지 했다. “오빠, 그냥 약속만 잡아 줘.” “그래. 길은 네가 선택하는 거니까... 알아서 잘해.” 주강혁이 오해하고 있다는 걸 알았지만 윤라희는 굳이 해명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될 거라 믿었다. 그날 오후, 주강혁에게서 다시 연락이 왔다. 서경민이 호텔에서 만나자고 했다는 것이었다. 장소를 확인한 순간 윤라희의 얼굴이 굳었다. 하지만 이내 묵묵히 준비를 마쳤다. 마스크와 선글라스로 얼굴을 가린 윤라희는 주강혁이 준 카드키를 들고 서경민이 예약한 호텔 프레지덴셜 스위트룸으로 향했다. 방 안엔 아무도 없었다. 대신 욕실에서 물소리가 들렸다. 차도겸에게 현장에서 잡힌 그날이 떠올라 괜히 긴장됐다. 윤라희는 조용히 소파에 앉아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욕실 문이 열렸고 허리에 수건 하나만 두른 서경민이 안에서 걸어 나왔다. 아직 마르지 않은 물방울들이 단단한 가슴과 배를 타고 흘러내려 선명한 복근을 지나 수건 아래로 사라졌다. 윤라희는 슬쩍 한 번 훑어보고는 곧바로 시선을 거뒀다. 속으로 은연중 비교하고 있었다. 몸매는 차도겸이 더 나았다. 비록 결혼 후 차도겸이 그녀를 안은 적은 없었지만 같은 침대를 쓴 만큼 그의 몸은 자주 볼 수 있었다. 눈썹을 치켜올린 서경민은 수건으로 머리를 닦으며 그녀 맞은편에 앉았다. “무슨 일로 날 보자고 한 거야?” 윤라희는 돌려 말할 생각이 없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복귀하고 싶어요.” 서경민은 의미를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윤라희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 시선은 곧 그녀의 굴곡진 몸매로 천천히 내려갔다. 너무 노골적인 시선에 윤라희는 눈살을 찌푸렸다. “어떻게 해야 내 퇴출을 철회할 거예요?” “지금 나한테 사정하는 거야?” “맞아요.” 서경민은 다리를 꼬고 소파에 느긋하게 기대앉더니, 윤라희를 여유롭게 내려다봤다. “윤라희 씨, 세상에 공짜는 없잖아. 나한테 뭘 해줄 건데?” 차도겸의 아내였을 땐 아무도 감히 넘보지 못하던 여자였지만 지금은 달랐다. “조건이 뭔데요?” 윤라희는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 눈빛에선 전혀 기죽은 기색이 없었다. “일주일 동안 나랑 있어. 그러면 퇴출도 없던 일로 해주고 영화 하나 투자해 줄게. 어때?” 서경민은 하유선을 제외하곤 어떤 여자에게도 일주일 이상 관심을 가져본 적 없는 남자였고 질리면 가차 없이 버렸다. 윤라희의 눈에 혐오가 스쳤다. 이런 쓰레기한테 병이라도 옮을까 걱정이었다. “좋아요, 그럼 우리 내기 하나 할래요?” “내기?” “회사 도움 없이 나 혼자 힘으로 한 달 안에 다시 정상에 오를게요. 내가 이기면 날 두 번 다시 퇴출시키지 말고 예전 조건도 전부 복구해 줘요.” ‘이미지 바닥난 주제에 한 달 안에 정상을 찍겠다고? 어이가 없네.’ 서경민의 얼굴엔 조소가 가득했다. “좋아. 그런데 네가 지면?” “지면 당신한테 갈게요. 서경민의 여자로 회사에 소속된 채 돈도 안 받고 일하죠.” 제법 흥미로운 내기였다. 평판이 바닥난 연예인이 다시 재기하겠다니, 과연 가능하기나 할까. 서경민은 비웃듯 입꼬리를 올렸다. “참 자신감 하나는 넘치네. 그런데 내가 왜 이 내기를 받아야 하지?” 윤라희는 깊게 숨을 들이켰다. “날 원하잖아요. 나 차도겸이랑 막 이혼했어요. 그런 나한테 손대는 건 차씨 가문에 대한 모욕 아닐까요? 적어도 지금은. 그런데 이 내기를 핑계 삼으면 누가 뭐라 하겠어요. 그리고...” 윤라희는 발끝으로 서경민의 종아리를 스치듯 건드리더니, 혼을 쏙 빼놓을 듯한 요염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억지로 하는 건 재미없잖아요. 내가 적극적으로 다가가면 더 짜릿하지 않겠어요?” 서경민은 눈빛이 확 달라지며 숨소리마저 거칠어졌다. ‘이 여우 같은 것.’ 한마디 한마디가 시선 하나하나가 숨 막힐 만큼 치명적이었다. “좋아. 내기 받아들이지. 그런데 뭘 기준으로 ‘정상’이라 할 건데? 지금도 아주 유명하잖아. 악명으로.” “진짜 인기. 팬이 생기고 광고가 붙고 작품이 들어오고. 그런 정상.” 윤라희의 눈빛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고 목소리는 단호했다. ‘나를 짓밟고 상처 줬던 인간들 이제부터는 각오해. 윤라희가 돌아왔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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