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화
주강혁은 인터넷에 퍼진 기사를 보고는 황급히 윤라희에게 전화를 걸었다.
“라희야, 너 서 대표랑 얘기 끝낸 거야?”
“응.”
“그렇게 빨리?”
주강혁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방금 그에게서 카드키를 받은 지 겨우 이십 분 남짓이었고 호텔로 이동한 시간과 드나드는 시간을 빼면 실제로 대화를 나눴을 시간은 고작해야 오 분도 되지 않았다.
게다가 뭐 특별한 일이라도 있었다면 그 시간은 더 짧아졌을 터였다.
‘서 대표도 별거 없네.’
윤라희는 의아한 표정으로 말했다.
“빨랐나? 그냥 몇 마디 나눈 거뿐인데, 그게 얼마나 걸리겠어. 오히려 커피 다 마시고 좀 쉬다 내려왔어.”
이번엔 주강혁의 턱이 떨어졌다.
“그건 그렇고, 강혁 오빠. 혹시 오빠 손에 뭐 적당한 작품 없을까?”
윤라희는 살짝 얼굴이 붉어졌다. 지금 그녀는 아무런 배경도, 기댈 곳도 없었다. 회사 자원도 쓸 수 없고 결국 손을 내밀 수 있는 건 주강혁뿐이었다.
이 빚은 나중에 꼭 갚을 것이다.
주강혁은 얼른 잡생각을 지우고 진지하게 말했다.
“그런데 그렇게 서두를 일은 아니야. 지금 여론이 가장 안 좋을 때라 괜히 성급하게 나섰다간 더 욕먹을 수도 있어. 처음엔 기부 같은 거 하면서 이미지부터 천천히 쌓는 게 어때?”
그건 흔히 말하는 연예인 이미지 세탁의 정석 코스였다. 선행으로 대중의 호감을 사고 좋은 사회적 이미지를 만든 뒤에 복귀 수순을 밟는 방식.
하지만 윤라희는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 난 내 판단대로 할게.”
지금 윤라희에게 필요한 건 시간이 아니었다. 그녀의 이름은 이미 선행 따위로 회복될 수 있는 수준을 넘었다. 서경민과의 내기 시간은 겨우 한 달뿐이었기에 독하고 세게 밀어붙여야 했다.
자신을 짓밟은 인간들에게 똑똑히 보여줄 생각이었다. 누가 진짜 이 바닥의 여왕인지.
“그게...”
주강혁은 난감한 얼굴을 했다. 작품은 있었지만 윤라희와 어울릴 만한 건 아니었다. 지금 그녀를 기피하는 분위기였고 누가 그녀를 캐스팅하려 들면 바로 매장당할 판이었다. 다들 마치 전염병 피하듯 그녀를 피했다.
하지만 주강혁은 끝내 마음을 접지 못했다.
“마침 네 또래 배우들이 많이 지원 중인 웹드라마가 있어. 감독이 내 대학 동기라 한번 말해볼게. 오디션 자리라도 만들어 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정말? 고마워, 강혁 오빠.”
그날 밤, 윤라희는 주강혁에게서 다시 전화를 받았다.
“말 잘 됐어. 내일 오디션 잡혔어. 대본이랑 주소는 문자로 보냈다. 나 내일 다른 스케줄 있어서 못 따라가니까 너 혼자 갈 수 있겠지?”
“그럼. 걱정하지 마.”
윤라희는 시원하게 답했다. 주강혁도 관리하는 배우가 여러 명인데, 그중에는 남우주연상 출신 배우 둘에 여우주연상 출신도 하나 있다. 그 와중에 자신을 위해 시간 내 준 것만 해도 고마운 일이었다.
드디어 한 걸음 내디뎠다. 그다음은 스스로 해낼 차례였다.
...
오디션장은 꽤 멀었다. 윤라희는 늦지 않으려고 일찍 서둘러 나섰다.
건물에 도착했을 때, 이미 몇몇 여자 연예인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그녀가 들어서자 모든 시선이 동시에 쏠렸다.
눈빛이 일제히 반짝였다. 감탄이 실린 놀람이었다.
한때 ‘연예계 1위 미녀’라 불렸던 윤라희, 그 타이틀이 괜한 게 아니었다.
결점 없는 피부, 선명한 이목구비, 긴 속눈썹 아래로 촉촉한 눈망울이 번뜩였고,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흑발은 화장기 없는 얼굴과 어우러져 아찔할 만큼 눈부셨다.
대기실 한가운데에 선 그녀는 그저 흰색 트레이닝복 한 벌만 입고 있었음에도,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여자를 단숨에 압도했다.
세련된 화장, 성형 티가 역력한 이목구비를 한 여자 배우들조차도 그 앞에서는 마치 무너진 필터 속 인스타 라이브처럼 허술하게 느껴졌다.
잠깐의 침묵 후, 시선에는 질투와 경멸이 가득했다.
‘예뻐서 뭐 해. 한때 잘나가긴 했다지만 지금은 하수구에 빠진 쥐 신세잖아.’
‘지금은 우리보다도 못하지.’
“윤라희? 쟤가 여기 왜 왔대?”
“오디션 보러 온 거 아냐? 복귀한다더니.”
“훗, 저런 이미지로 뭘 다시 해. 우리 역할까지 뺏어가려는 거면 꿈 깨시고.”
“그 얼굴에 그... 뭐, 능력 있잖아. 금방 따내겠네.”
조롱과 비아냥이 속삭임으로 흘러 들어왔고, 윤라희는 미간을 찡그렸다.
시선을 돌려 대기실 안을 훑었지만 아는 얼굴은 하나도 없었다.
이 바닥은 속도전이다. 불과 2년이란 시간 동안, 이미 스타들은 몇 번이나 물갈이됐다.
모두의 시선을 무시한 채, 자리를 찾아 앉으려던 찰나 누군가의 외침에 주변이 술렁였다.
“와! 조서영이다! 진짜야, 조서영이 오디션 본대!”
윤라희의 얼굴이 순간 굳었다.
조서영은 과거 윤라희의 대역 배우 출신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국내 최고 인기 여배우가 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