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0화
고지수는 노민준을 똑바로 바라봤다.
“지금 네가 의심하는 걸 다 털어놓고 말해. 나도 사실대로 말할 테니까.”
그녀는 잠시 숨을 고르고 담담하게 이어갔다.
“내가 심 대표님이랑 처음 만난 건 한 달 남짓 전에 덴보크에서였어. 심 대표님이 나를 도와준 건 내가 부탁해서 그런 게 아니라 심 대표님의 어머니 때문이야. 현숙 이모가 예전부터 날 많이 챙겨주셨거든. 이모는 내가 원하는 삶을 살길 바랐고 그래서 심 대표님한테 명안의 힘으로 내 편이 돼주라고 부탁하신 거야.”
고지수는 차분하지만 단호하게 말했다.
“그리고 약혼했다는 소문은 사실이 아니야. 난 네가 근거 없는 의심으로 심 대표님을 욕하고 그 사람의 명예를 더럽히지 말았으면 좋겠어.”
그녀의 목소리는 점점 차가워졌다.
“내가 너랑 이혼하려는 건 다른 사람 때문이 아니야. 오직 너 때문이야. 네가 날 실망시켰으니까. 그러니까 변명하려고 남을 탓하지 마.”
그 말에 노민준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고 눈동자가 순간 움찔하며 줄어들었다. 마치 가슴팍 깊숙이 바늘이 꽂힌 것처럼 숨 쉬는 것조차 힘겨웠고 그는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겨우 고통을 눌렀다.
“난 너를 의심한 게 아니야.”
노민준은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중얼거렸지만 그 말은 진심이었다. 조금 전에 그가 내뱉었던 말들은 단지 질투가 그의 이성을 지배했고 분노 때문에 혀가 앞서가 버린 거였다.
노민준과 고지수는 알고 지낸지 오래됐으니 그는 고지수를 잘 알았다. 그녀가 짧은 시간 안에 그를 잊고 다른 남자를 사랑하는 건 불가능했다.
사실 노민준이 의심하는 건 고지수가 아니라 심동하였고 그는 참을 수 없었다. 고지수는 그의 여자였고 비록 이 결혼생활에 금이 갔고 이제 끝을 향해 가고 있어도 시작은 자신이었다. 그런데 심동하가 갑자기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다니, 그게 어떻게 용납이 된단 말인가?
고지수는 말없이 가방을 집어 들더니 더는 노민준과 말을 섞을 가치도 없다는 듯 심민지를 데리고 룸에서 나갔다.
박주경은 남겨진 노민준의 곁으로 다가가 그의 어깨를 툭 두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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