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7화
밤은 고요했다.
너무 고요해서 고지수는 그의 숨결마저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런 고요함은 심동하의 말을 조금 아련하게 만들기도 했다.
만약 심동하의 시선이 이렇게 담담하고 당당하지 않았다면, 목소리가 평온하지 않았다면, 그리고 예전의 경고가 없었다면 고지수는 분명 오해했을 것이다.
그녀는 속으로 다짐했다. 앞으로 술 취해 누구를 부르든 심동하만은 절대 부르지 않겠다고.
한 번 엎어진 거로 충분하지 그 자리에 그대로 누워버릴 생각은 없었다.
“좋아요. 앞으로는 일이 있으면 바로 말할게요.”
“이번 주에 제가 이사하거든요. 심 대표님, 시간 괜찮으세요? 제가 한턱 쏠게요.”
“이사요?”
“전에 살던 집은 제 친구 집이었어요. 이제 이혼하고 재산 일부를 받았으니까 스튜디오에서 가까운 곳으로 옮기려고요.”
“좋아요.”
그렇게 심동하를 배웅한 뒤, 고지수는 임지후를 데리고 스튜디오로 돌아왔다.
점심시간도 아직 끝나지 않아 사무실 안은 한산했다.
임지후는 곧바로 일 모드로 들어가 고지수가 현재 어떤 일거리를 맡고 있는지부터 파악했다.
그는 책상 위에 놓인 다음 주 비즈니스 파티의 초대장을 집어 들었다.
“이 초대장은 몇 장 받으셨어요?”
“두 장이요.”
“그럼 제가 가겠습니다. 연말에 열리는 이런 대규모 비즈니스 파티에는 각계 인사들이 다 모이거든요. 인맥을 넓히기 좋은 기회예요. 거래 성사까지는 못 가더라도 갓 귀국한 저로서는 꼭 필요하죠.”
“그럼 그 장은 가져가세요. 제 건 따로 챙겨놨어요.”
“네.”
고지수는 서랍에서 미리 준비해둔 계약서를 꺼냈다.
“제가 초안으로 작성해둔 계약서예요. 급여도 명시해놨는데 마음에 안 드시면 다시 조율해도 돼요.”
임지후는 계약서를 펼쳐 급여 항목부터 확인했다.
“Rita 선생님이 이 정도 급여를 제시한다면 오히려 더 꼼꼼히 살펴보고 싶어지네요.”
너무 후하면 뭔가 함정이 있는 건 아닌가 싶은 법이다.
“지후 씨 경력이라면 이 정도 조건의 자리 찾는 게 어렵지 않다는 거 알아요. 지후 씨가 여기 온 건 심 대표님 때문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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