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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남민우는 전기자전거를 충전소 안으로 비집고 밀어 넣고 QR코드를 찍어 충전을 시작하면서 여수민에게 말을 걸었다. “수민아, 너 어떻게 만월까지 간 거야? 우리 과 사람이 그러는데, 만월은 하룻밤 최소 소비만 해도 몇백만이래.” 여수민은 글자를 입력해 음성 변환을 켜고 오늘 밤에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손영후가 다른 휴대폰으로 생일 케이크를 주문해서 사장님이 저보고 가져다주라고 했어요. 제가 거의 당할 뻔해서 한 대 치고 도망쳤고, 오빠가 나타날 때까지 숨어 있었어요.] 남민우는 깜짝 놀라서 황급히 몸을 돌려 여수민의 상태를 살폈다. “너 다친 데는 없지? 어떻게 빠져나온 거야? 경찰 부를까?” 여수민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손짓으로 간단히 말했다. [아니에요, 저 손해 안 봤어요.] 그녀는 반응이 빨랐다. 룸 안으로 끌려 들어가는 순간부터 필사적으로 버텼고, 거기에 계속 남아 있으면 분명히 끝이 좋지 않으리라는 걸 직감했다. 그래서 여수민은 단번에 결심하고 술병을 집어 들어 손영후의 머리를 내리쳤다. 모두가 아직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틈을 타 죽을힘을 다해 뛰었다. 다행히 가슴이 철렁하긴 했어도 큰 화는 면했다. 그녀는 룸 안에서의 민망한 장면은 대충 빼고 전체적인 사건만 설명했다. 남민우는 말없이 서 있었다. 마음속에는 미안함과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는 무력한 슬픔이 가득했다. 여수민은 줄곧 케이크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해 왔고, 손영후는 여자친구를 데리고 물건을 사러 올 때마다 여러 번 그녀를 집요하게 괴롭혔다. 그들은 이미 한 번 신고까지 했었다. 그러나 손영후가 실제로 상처를 입힌 것은 아니라는 이유로 결국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게다가 손영후 집안은 돈도 많고 힘도 있었다. 감히 건드릴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이번에 여수민이 비록 도망치기는 했지만 골칫거리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남민우의 눈빛에는 환하게 드러나는 안쓰러움이 비쳤다. 여수민은 그를 향해 활짝 웃어 보였다. 눈매가 휘어져 하늘가의 달처럼 되었다. 그녀는 벌떡 안겨 들어가 남자친구 품에 얼굴을 비비며 조용히 위로를 구했다. “수민아, 미안. 요즘 실험하느라 바빠서 너를 제대로 못 챙겼네.” 여수민은 그의 품 안에서 고개를 저었다. 상관없다고, 골치 아픈 일이 찾아온 이상 피할 수 없으면 그냥 용기 내서 맞설 뿐이라고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남민우는 그녀를 꼭 끌어안으며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그냥 해성으로 돌아갈까? 두 달만 숨어 있으면 분명히 아무 일도 없을 거야.” 여수민은 살짝 웃으며 붉어진 얼굴을 그의 품에서 빼고 휴대를 꺼내 글자를 쳤다. [오빠가 먼저 돌아가요. 저는 아직 김 교수님 댁에 가서 수업 들어야 해요.] 여수민은 어릴 때부터 미술 재능이 아주 뛰어났다. 하지만 성대가 손상된 탓에 학교를 다니는 내내 남들보다 몇 배, 아니 수백 배의 노력을 쏟아야 했다. 종합시험이든 개별 실기시험이든, 그녀는 늘 1등이었다. 그렇지만 귀가 들리지 않는 것은 아니어도 말은 전혀 하지 못하는 터라, 실질적인 장애인으로 분류되었다. 연경의 몇몇 유명 미대에서는 그녀를 받아 주지 않았다. 그래도 막힌 길 끝에는 다른 길이 있었다. 연경미대의 김미숙 교수는 그녀의 작품을 무척이나 아꼈고, 김미숙의 도움 덕분에 여수민은 연경미대 첫 장애인 특기생이 되었다. 김미숙은 개인적으로도 여수민을 제자로 들였다. 여수민은 김미숙이 자신에게 준 이 기회를 무엇보다 소중히 여겼다. 그래서 여름방학에도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고, 이곳에 남아 그녀가 내준 과제를 하고 있었다. 내일도 김미숙을 찾아가 수업을 들어야 했다. 남민우는 이야기를 다 듣고 막연했던 생각을 접었다. “잘됐네. 나도 사실 못 나가. 실험실 일도 산더미고, 아까 그 여제자도 챙겨야 하고. 나는 석사 2년 차라, 지도교수도 여사수도 아무나 막 서운하게 할 수가 없어.” 그 말을 꺼내자 속에 담아 두었던 불만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네가 그 여자 몰라서 그래. 해외에서 돌아왔다는데 아무것도 모른다? 근데 집안이 대단해서 새 장비 한 세트를 통째로 기증해 버렸어. 바로 우리 지도교수를 사로잡았지. 지도교수는 이 부담을 그냥 나한테 넘기고 대충 달래서 같이 놀아 주면 된대. 내가 반년 동안 만들어 놓은 데이터도, 그냥 와서 반은 자기가 쓰겠다고 말을 해. 맨날 실험실에서는 숏폼만 보고 아무것도 안 하거든. 딱 봐도 공주님이잖아...” 여수민은 미술 전공이라 이런 이야기를 잘 알지는 못했다. 그래도 요즘따라 남민우가 이런 불평을 자주 늘어놓는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녀는 말을 할 수 없어서 언제나 조용했고, 남자친구 품에 기대어 그에게서 풍기는 은은한 향수 냄새를 맡았다. 가슴이 갑자기 꽉 조여들었다. 왠지 모를 불안이 스며들었다. 남민우는 당시 해성시에서 이과 수석으로 연경대 생물학과에 합격했다. 지금 그의 지도교수는 업계에서도 이름난 사람이었다. 여수민은 그런 남민우를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동시에 자신의 결함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조금은 위축되기도 했다. 사춘기 때부터 지금까지 여수민의 모든 발걸음은 늘 남민우의 뒷모습을 따랐다. 여씨 가문에 입양되었을 때, 그녀는 겨우 4살, 남민우는 9살이었다. 맞은편에 살던 그 오빠는 부드럽게 그녀의 손을 잡고 단지 아이들에게 말했다. 앞으로 여수민은 자기 여동생이라고. 남민우가 대학교에 합격했을 때, 그는 눈부신 소년이었다. 여수민은 마음속으로 맹세했다. 자신도 반드시 연경으로 가겠다고. 얼마나 어려워도 꼭 붙어 보겠다고. 마침내18살이 되는 해, 그녀는 연경미대에 입학했다. 그때 남민우는 이미 석사 1년 차였고 그녀에게 고백까지 했다. 돈을 모아서 언젠가는 그녀의 목도 치료해 주겠다고 말했다. 이런 기억들을 떠올리니 여수민은 괜히 소꿉친구인 남자친구를 의심하는 건 아닌가 싶었다. 공연히 의심하고 괜히 불안해하는 건 정말 필요 없는 일일지도 몰랐다. 그녀는 계속 남민우의 투덜거림을 조용히 듣고 있었다. 두 사람이 건물 아래층까지 내려왔을 때, 갑자기 남민우의 휴대폰이 울렸다. 그는 얼굴을 찌푸리며 전화를 받았다. 맑은 얼굴에 짜증이 스쳤다. “이번에는 또 뭐야?” “선배, 아직도 안 돌아왔어? 교수님이 내일 내 데이터 보시겠대. 얼른 와서 좀 도와줘. 내가 야식 살게. 제발...” 남민우는 한숨을 내쉬었다. “나 지금 여자친구랑 같이 있어. 시간 없어.” 잠시 동안 휴대폰 너머가 조용해졌다. 그 뒤에야 억울한 기색이 묻어나는 목소리가 돌아왔다. “그럼 어쩔 수 없죠, 내일 혼나야겠네요. 선배 바쁘신 거 알겠어요.” 그러고는 전화를 끊어 버렸다. 여수민은 말없이 그를 바라보았다. 분명히 느껴졌다. 남민우는 지금 매우 짜증이 나 있었고 마음은 딴 데 가 있었다. 그녀는 손을 들어 표시했다. [일 있으면 가 봐요.” 남민우는 가만히 서 있다가 잠시 뒤 미안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여 여수민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나도 정말 가기 싫어. 근데 이 공주님 진짜 장난 아니거든.겉으로 보기에는 얌전해 보인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속으로는 무슨 꿍꿍이를 품고 있는지 몰라. 뒤에서 나한테 무슨 짓을 할지도 모르고, 지도교수한테도 마냥 모른 척할 수가 없잖아.” 여수민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하고 있다는 뜻을 보였다. 남민우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헝클어 놓고, 여수민을 집까지 바래다 준 뒤에야 택시를 잡아 떠났다. 세든 다락방으로 돌아오자, 여수민의 기분은 괜히 가라앉았다. 그녀는 방을 한 번 정리하고, 샤워를 마친 뒤에야 다시 이젤 앞에 앉아 그림을 이어 그리기 시작했다. 평소 그녀는 몇몇 프로그램을 통해 개인 의뢰를 받았다. 맞춤 아크릴화나 유화를 주문받는 식이었다. 아크릴화는 가격이 저렴하고, 일주일만 말리면 발송할 수 있다. 하지만 유화는 다르다. 재료도 비싸고, 손이 많이 가고, 마르는 데도 오랜 시간이 필요해서 주문하는 사람도 많지 않다. 게다가 여수민의 능력과 시간에는 한계가 있어서 캔버스 크기도 그리 크지 않다. 지금 그리고 있는 이 한 점도 15×20 사이즈로, 예전부터 그녀에게 의뢰하던 단골이 반려견을 위해 주문한 유화였다. 아주 귀여운 슈나우저였다. 여수민은 강아지의 털을 한 올 한 올 그려 넣었다. 그녀의 손은 놀랄 만큼 섬세해서 슈나우저의 작은 곱슬털이 살아 있는 것처럼 생생했다. 이 그림은 이제 거의 막바지로 말리기만 하면 될 단계였다. 연경의 날씨는 건조해서 작은 캔버스에 두껍지 않게 올린 유화라면, 대략 보름만 지나면 완전히 마르고, 그 위에 바니시를 입힐 수 있을 것이다. 여수민은 허리를 쭉 펴고 기지개를 켠 뒤, 손을 씻고 침대에 몸을 뉘었다. 막 태블릿을 꺼냈는데 누군가 문을 노크했다. 정확히 말하면 쾅쾅 두드리는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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