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화
강청서는 아들을 안은 채 허겁지겁 마마 앞에 무릎을 꿇었다.
“제발, 원이에게 의원을 불러 주세요.”
눈물을 흘리며 이마를 땅에 조아렸지만, 피가 뺨을 타고 옷깃으로 스며들 때까지도 그녀는 통증을 느끼지 못했다.
그녀는 엎드린 채 마마의 옷자락을 움켜쥐며 울부짖었다.
“마마님도 자식과 손주가 있지 않습니까. 원이는 이제 다섯 살밖에 안 되었으니, 자비를 베풀어 주시면 아니 되겠습니까.”
마마는 역겨운 듯 그녀의 손을 뿌리친 후, 얼굴에 침까지 뱉었다.
“퉤! 너 같은 천한 계집년이 감히 나를 협박하려 들어? 대군마마께서 말씀하셨다. 혼삿날에는 누구도 경거망동하지 말라고 말이다. 특히 네년은 죽을지언정 왕비 마마의 눈에 띄어서는 아니 된다.”
‘쿵’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굳게 닫히고 자물쇠가 잠긴 소리까지 들으니, 가슴은 마치 칼날로 가슴을 찌르는 듯 아파졌다.
그녀가 푸른 가마를 타고 섭정왕부에 들어온 지 5년이란 시간이 흘렀지만, 그녀를 사람 취급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녀를 잡종이라며 욕하고 쉰 밥과 누더기를 던져주는 것은 기본이고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겨울에는 새벽까지 빨래를 시켰고, 강한 햇볕이 내리쬐는 여름에는 공방에 무릎 꿇고 앉아 양동이를 씻게 했다.
욕과 채찍질을 당하는 것은 일상이었지만 이경원을 위해 그녀는 모든 것을 참아내야 했다.
아이가 잘 자라서 이 외딴 마당을 벗어나 바깥세상을 볼 수만 있다면 그녀는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었다.
‘하늘도 참 무심하시지. 대체 내게 이런 시련을 주는 것인가?’
그녀의 품에 안겨 있던 아이가 눈을 깜빡였다.
검은 눈동자에는 순수함이 가득했지만, 볼은 너무 야위어 움푹 패어있었다.
“어머니…”
아이는 힘없는 목소리로 강청서의 소매를 흔들었다.
“원이는 차라리 이대로 죽어버리면 좋겠어요.”
“무슨 헛소리를 하는 게야!”
강청서의 눈물이 홍수처럼 쏟아졌다.
“네가 죽는 꼴을 이 어미는 못 본다.”
“하나 어머니는 항상 원이 때문에 울지 않습니까?”
아이는 힘겹게 팔을 힘겹게 들어 올리며 강청서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
“어머니, 원이가 죽으면 울지 마세요. 이 원이는 다음 생에도 어머니의 자식으로 태어날 겁니다…”
아이의 야윈 몸이 점차 굳어지더니 강청서의 눈물을 닦아 주던 그의 팔은 그대로 허공에 멈춰선 채 영원히 굳어버렸다.
온몸을 떨고 있던 강청서가 아이의 이름을 부르려고 입을 벌렸지만, 입안에서는 소리 대신 피가 뿜어져 나왔다.
펑!
섭정왕부의 주변에서 수만 냥 어치의 폭죽 소리가 울려 퍼지자, 백성들이 환호성을 지었다.
오늘은 섭정왕이 왕비를 맞이하는 날이란 것을 사람들은 알고 있었다.
어렸을 적에 군주가 된 섭정왕 이현익은 수십 년 동안 문무백관을 통솔하며 조정을 장악했던지라 그 권세가 하늘을 찔렀다.
하지만 뒤채는 한 명의 첩도 들이지 않아 텅 비어 있었다.
소문에 따르면, 예전에 한 여인을 마음에 품고 있었으나 그 여인이 그를 구하려다 사망한 후로는 여인에게 마음을 열지 않았다고 했다.
한데 그런 그가 후작부의 서녀인 김연희를 위해 가마까지 보내어 성대한 혼례를 치렀다.
…
왕부 냉원.
온몸이 피투성이인 여인이 맨손으로 벽모퉁이에 있는 흙을 파헤치고 있었다.
손가락은 뼈가 드러날 정도로 닳아서 흙을 파헤칠 때마다 흙이 뼈 사이로 파고들어 살을 에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지만, 그녀는 개의치 않았다.
아이의 시신을 구덩이에 넣은 후, 황토로 시신을 덮고 나서야 두 줄기의 눈물이 그녀의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원아, 기다리거라. 이 어미도 곧 따라갈게…”
말을 마친 그녀는 미리 준비한 횃불로 자신에게 불을 질렀다.
…
왕부 앞채, 의전이 부부의 맞절을 외칠 때 집사가 허둥지둥 달려와서는 혼례복을 입은 이현익에게 귓속말로 속삭였다.
“뒤채에 불이 났습니다. 그 여인이… 스스로 불을 질렀습니다.”
그 말에 잠시 어리둥절해하던 이현익은 저도 모르게 붉은색 옷자락을 움켜쥐고 있던 오른손에 힘을 주었다가 천천히 풀었다.
“잘 죽었다. 신경 써야 할 것이 하나 없어졌구나.”
하지만 집사는 망설이다가 또 하나의 사실을 전했다.
“불을 끄다가 방에서 옥패를 발견했습니다. 어릴 적에 생명의 은인에게 주신 것과 똑같은…”
“지금 뭐라 하였느냐?”
이현익은 쥐고 있던 비단을 내던지더니 집사의 옷깃을 움켜쥐며 번쩍 들어 올렸다.
“다시 한번 말해보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