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9화
이현익은 언제나 왕부에 있어 타인이 조심조심 눈치를 보며 그를 모셨기에 이토록 굽히고 몸을 낮춘 모습은 아무도 본 적이 없었다.
“그만하거라.”
이현익은 싸늘한 시선을 보내며 그 손에서 성지를 확 낚아채더니 귀찮다는 듯 펼쳐 보았다. 곧이어 성지의 내용을 확인한 그는 콧방귀 섞인 냉소를 흘렸다.
“역시나 그러하구나.”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놈이 감히 임금 행세를 하며 나한테 혼인을 내리다니.’
‘게다가 삼 개월 뒤에 태묘에서 예를 갖춰 혼례를 올리겠다고?’
이현익의 눈매에 스친 조소가 한 줄기 번개처럼 흘러가더니 이내 성지를 촛불 위에 얹어 태워버렸다.
활활 타오르는 불길을 보자 조상우의 두 눈에는 당혹과 공포가 떠올랐다. 그는 주저앉듯 무릎을 꿇으며 울상으로 외쳤다.
“대군... 그러시면 아니 되옵니다...”
이현익은 타오르는 성지를 손끝으로 굴리며 덤덤히 내뱉었다.
“성지는 이미 불살랐도다. 이제 와 무슨 말을 한들 소용 있겠느냐.”
“삼 개월 뒤라 하였지? 그날 그가 과연 나를 태묘로 끌고 갈 수 있을지 두고 보자꾸나.”
조상우는 불길 속에서 성지가 완전히 재가 되어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속으로 긴 한숨을 내쉬었고 더는 어떤 말도 감히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었다.
‘대군께선 조정의 권력을 한 손에 쥐고 있는데 전하께선 점차 장성해 가니 이 두 분이 언젠가는 반드시 맞부딪히게 될 것이야.’
그때 닥칠 충돌은 혼인 명령 따위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것이었다.
그는 다만 그날이 조금만 더 늦게 찾아오길 바랄 뿐이었다.
...
강희천은 맞은편의 굳게 닫힌 방문을 응시하며 걸음을 멈췄는데 살짝 찌푸린 눈썹 아래로 날카롭고 깊은 의심의 빛이 번졌다.
방금 전 보았던 중년 남자의 허리춤엔 분명 경성 귀족만이 소지할 수 있는 요패가 달려 있었던 것 같았다.
요패란 곧 신분의 상징이었다.
각 가문의 규격과 재질이 모두 제각각인데, 문양과 글씨도 모두 달라 쉽게 속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오늘따라 구름이 짙어 달빛도 흐릿한 탓에 글자는 똑똑히 보지 못했지만 그 패가 옥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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