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3화
이사하기로 마음을 굳힌 이상, 강청서는 더 이상 지체하지 않았다.
그녀는 이튿날 아침 일찍부터 자질구레한 살림살이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불과 한 달 남짓 머물렀을 뿐인데도 막상 짐을 싸다 보니 쌓인 물건들이 마치 해를 넘겨 거처한 듯했다.
책장 한구석을 정리하던 중 그간 잊고 지낸 실패작 목탄필 몇 자루가 눈에 띄었다.
삐뚤빼뚤한 모양새에 글씨도 일정치 못한 그 목탄필들은 한때 그녀가 쓰다 버린 것들이었는데 뜻밖에도 지금껏 남아 있었던 것이다.
그 목탄필로 인해 일어난 오의 골목에서의 소동이 떠오르자 강청서는 저도 모르게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당시 은전을 조금이라도 벌어보겠노라며 김연희의 전생 아이디어를 몰래 흉내 냈었는데 수익은커녕 오히려 자기 발등을 찍을 뻔했다.
그 뒤로는 오의 골목을 찾을 때마다 면사로 얼굴을 가려야 했다.
하지만 다시금 은전을 벌려고 오의 골목으로 향했고 필사폰을 팔고자 했다.
그러나 운은 더없이 기구했다. 누군가 그녀의 처소를 알아내어 대낮에 도둑질을 해 간 것이다.
강의는 결국 관아에 들어가게 되었고 그 일로 친 오라비 강희천과도 금이 갔다.
강청서는 자신에게는 은전을 벌 재주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목탄필 두 자루를 손에 들고 멍하니 서 있던 그녀는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이총 골목에 온 후로 이상하리만치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었다.
강청서는 고개를 저으며 문으로 향했는데 문을 열자 그 자리에 서 있는 뜻밖의 인물을 보고 숨이 턱 막혔다.
누추한 골목길과 곱게 땋은 옥잠에 바람결 흩날리는 넓은 소매 차림의 여인을 번갈아 보던 그녀는 초라하다는 네 글자가 뇌리를 스쳤다.
그녀는 두 걸음 뒤로 물러나며 가슴속 떨림을 억누르고 억지로 숨을 고르곤 입꼬리에 힘을 주어 미소를 띠었다.
“누구...”
그러나 마주 선 김연희의 얼굴에서 웃음기는 이내 사라졌다.
그녀의 시선이 곧장 강청서의 손에 쥔 목탄필로 향했는데 며칠 전 그 불쾌했던 만남이 뇌리에 선연히 떠올랐다.
이 앞에 선 여인은 자신의 목탄필을 흉내 내고 결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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