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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강청서는 익숙한 대나무 향기에 정신을 차렸다. 오라버니가 대나무를 좋아해서 그녀는 늘 마른 대나뭇잎을 갈아 가루로 만든 후, 오라버니가 지니고 다닐 수 있게 봉랍과 섞어 향환을 만들었다. 흔들림 속에서 천천히 깨어난 강청서가 눈을 떠보니 자신은 강희천의 등에 업혀 있었다. 강희천은 그녀를 업고 작아 골목으로 향했다. 의식이 없는 강청서가 떨어질까 봐 그녀의 손목을 묶은 밧줄을 자신의 목에 걸었다. 한 걸음 걸을 때마다 밧줄이 살을 조이는 탓에 목에는 새빨간 줄이 생겨났다. 강희천이 기척을 느끼고 물었다. “깨어났느냐?” 강청서는 숨을 죽인 채 고개를 끄덕였다. 어렸을 적에 부모님을 여읜 후, 그녀를 데리고 공부 배우러 험난한 길을 오갔을 때도 발이 아플까 봐 그녀를 업어주곤 했었다. 추운 겨울이든 무더운 여름이든 막론하고. 부모 없는 가난한 학자가 누이동생을 데리고 향시 보러 경성에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는지를 사람들은 알지 못했다. 전생에 그녀가 왕부를 선택한 연유도 왕부에서 자리를 잡은 후에 오라버니의 고생을 덜어드리려고 했던 것이었다. 그러나 자신뿐만 아니라 오라버니까지 피해가 갔으니. 스무 살이 갓 넘은 신과 진사이니 탄탄대로가 열리는 것은 시간문제였으나 오라버니는 그녀를 만나려다 왕부의 대문 앞에서 맞아 죽고 말았다. 그녀가 뛰쳐나갔을 때는 피로 물든 오라버니의 푸른 도포와 바닥에 흩어진 계화떡이 보였다. 그것은 그녀가 어렸을 때 가장 좋아했던 영승각의 계화떡이였다. … “오라버니, 이제 화내지 마세요.” 강청서의 부드러운 목소리에 강희천의 발걸음이 무거워졌다. 그녀를 데리러 의원에 갔을 때 의원의 쓴소리가 생각나서 강희천은 갑자기 우울해졌다. [어젯밤 사람들에게 괴롭힘을 당한 것인가? 오라버니란 사람이 동생이 이 지경이 되도록 대체 뭐 하고 있었던 거요? 그리고 피자탕과 불임탕은 구분할 줄 모르는가? 이 두 약은 엄연히 달라서 함부로 마시면 아니 되오. 어린 처자가 반 사발만 마셔서 참으로 다행이긴 하나 앞으로 십 년간은 아이를 가질 수 없을 거요. 십 년 후인 서른에 출산한다면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고. 어찌 이리도 어리석단 말인가.] 강청서의 몸을 살짝 위로 올린 후, 강희천은 탄식하며 말했다. “네 잘못이 아닌데 내가 왜 화를 내겠느냐.” 그는 강청서의 이마를 어루만지며 부드럽게 속삭였다. “기억하거라. 이 오라비가 살아있는 한 널 반드시 지켜줄 것이다. 설령 네가 큰 일을 저질러도 내가 나서주겠단 말이다. 일찍 떠난 아버지와 어머니가 네게 주지 못한 사랑을 이 오라비가 대신 채워줘야지.” 그 말에 전생의 억울함과 슬픔이 한꺼번에 몰려온 강청서가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리자, 강희천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녀의 등을 토닥였다. … 작아 골목에 도착했을 때는 날이 이미 어두워진 뒤였다. 멀리서부터 골목에 불이 환하게 켜져 있는 것이 보였다. 그들이 살던 작은 뜰의 대문이 활짝 열린 대문으로 두 인부가 잡동사니, 상자, 서책, 종이와 붓 등을 냅다 던지고 있었다. 좁은 골목 바닥이 어지럽혀져 있었다. 시력이 좋아 단번에 그것이 자신들의 물건임을 알아차린 강청서는 화가 치밀어올라 강희천의 등에서 내려오자마자 이들에게 달려가며 소리쳤다. “지금 뭐 하는 짓입니까?” 허리가 굵은 집주인이 음흉한 눈빛으로 그녀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진작에 내 첩이 되었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것이 아니냐! 이제 와서 후회한들 이미 늦었어! 새로 들어온 세입자가 매달 너희들보다 은자 세 냥을 더 준다고 하니 너희들은 다른 데를 알아보거라.” 그 말에 강청서는 화를 내며 반박했다. “저희는 1년 치 집세를 지불해서 10월에야 계약이 끝납니다. 아직 한여름인데 새 세입자라도 계약이 끝난 후에 들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집주인은 품 안에서 열다섯 냥이 들어있는 금화 주머니를 꺼내 잡동사니가 어지럽게 널려있던 바닥에 던지며 비아냥거렸다. “어느 산골에서 기어 나온 거지새끼들인지 원. 경성에서 살려면 재물이 많거나 출신 성분이 좋아야 해서 아무리 이쁘게 생겨도 아무짝에도 쓸모없다. 네 오라비도 단지 거인에 불과하니 경성에서는 통하지 않아. 나도 조상을 거슬러 올라가면 황족 출신이어서 땅을 많이 하사받은 것이란다. 솔직히 말해주랴? 새로 입주한 분은 후작부의 서녀로, 장사하려고 머물 곳을 찾고 있던 중이었다. 너희들이 만약 그분을 건드린다면 쫓겨나는 정도에서 끝나지 않을 것이니 알아서들 꺼지거라!” … 후작부. 왕부에서 다섯 해를 굴욕 속에서 지낸 강청서는 누구보다도 권세라는 두 글자의 무게를 잘 알고 있었다. 관아에 소송을 제기해 봤자 관아에서는 이들에게 곤장을 때리고 후작부에 사과하라고 할 게 뻔했다. ‘후작부의 서녀가 어찌하여 화려한 저택이 아닌 남문 시장에 있는 궁벽한 곳까지 와서 나와 오라버니의 생계를 빼앗으려는 건지 통 알 수가 없구나.’ 강청서의 얼굴에 핏기가 가시는 것을 보고 그녀 앞으로 다가간 강희천은 위엄이 서려 있는 표정으로 집주인을 바라보다가 온화한 목소리로 물었다. “조 대인께 감히 여쭙겠습니다. 후작부의 어느 서녀를 말씀하시는지?” 이 젊고 유능한 천재를 적으로 돌리는 게 두려웠던지 집주인은 잠시 망설이다가 답했다. “장춘부원군 댁의 서녀, 일곱째 딸인 김연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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