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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강지영이 다시 눈을 떴을 때, 눈앞에는 새하얀 병원 천장이 보였다. “드디어 깨어나셨네요!” 간호사가 안도한 듯 숨을 내쉬었다. “상태가 너무 심각해서 빨리 보호자분께 연락드려야겠어요.” 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안쓰러운 듯 말을 이었다. “옆 병실의 배시우 씨는 같은 사고였는데도 상처가 훨씬 가볍거든요. 그런데 박 대표님이 꼬박 이틀 동안 곁을 안 떠나셨다니까요. 애지중지하더라고요. 강지윤 씨 보호자분은 이틀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안 오셨네요...” 강지영은 입술만 살짝 움직였다. 대답은 하지 않았다. 그때였다. 병실 문이 쾅 열렸다. 박태형이 문가에 서 있었다. 싸늘한 눈빛이 그녀를 겨누고 있었다. 간호사는 놀란 표정으로 둘을 번갈아 보다가 그의 얼굴빛이 심상치 않은 걸 발견하고는 서둘러 병실을 빠져나갔다. 문이 닫히자마자 박태형이 침대 머리맡의 약봉지를 거칠게 쓸어엎었다. 유리병이 깨지며 바닥으로 약이 흩어졌다. “네가 시우를 밀어서 바다에 떨어뜨렸지?” 그의 목소리는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강지영은 잠시 멍하니 그를 바라봤다. 배시우가 또 무슨 거짓말을 한 건지, 이제는 지쳐서 말조차 하기 싫었다. “아니에요.” “아직도 잡아떼?” 박태형이 손을 뻗어 그녀의 손목을 세게 움켜쥐었다. “시우가 직접 말해줬어! 예전에는 안 그랬잖아. 왜 갑자기 이런 짓을 해?” 그는 냉소를 띠며 낮게 웃었다. “설마 그동안 착한 척, 이해하는 척했던 거야? 전부 연기였던 거냐고? 나한테 관심 끌려고?” 강지영의 얼굴빛이 새하얗게 질렸지만 눈빛은 잔잔했다. 설명할 가치조차 느끼지 못했다. 그 무표정이 오히려 박태형을 더 자극했다. 그는 손을 확 놓으며 차갑게 말했다. “좋아. 끝까지 인정 안 하겠다면 네가 책임져.” 그는 돌아서며 낮게 말을 내뱉었다. “지금부터 어떤 의사도 간호사도 네 곁에 안 붙을 거야. 그 고통, 네가 알아서 버텨.” 그 후 며칠간, 강지영은 지옥을 버텼다. 의사는 오지 않았고 간호사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녀는 상처투성이 몸을 이끌고 약장까지 기어가 스스로 붕대를 갈았다. 여러 번 넘어져 무릎이 퍼렇게 멍들었지만 강지영은 이를 악물고 일어섰다. 박태형은 아마 생각했겠지. 강지윤 같은 금수저 아가씨가 이런 고통을 버틸 리 없다고 말이다. 하지만 그는 몰랐다. 그녀는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명문가 영애 강지윤이 아니라 시골에서 혼자 살아남은 강지영이었다. 부모님에게 버려진 뒤에도 아파도 스스로 꿋꿋이 버텨온 여자였다. 이 정도 고통쯤은 그녀에게 아무것도 아니었다. 며칠 후, 퇴원 수속을 마친 강지영은 짐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때 문이 발로 차이듯 열렸다. 박태형이 다시 나타났다. 그의 얼굴에는 먹구름이 낀 듯한 분노가 서려 있었다. 그는 다가오자마자 그녀의 손목을 거칠게 움켜쥐었다. “나 따라와.” “왜요?” 강지영이 눈살을 찌푸렸다. “시우가 납치당했어. 범인은 주성호야.” 박태형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놈이 네 이름을 불렀어. 널 데려오면 사흘 후에 시우를 돌려보내 준대.” 순간, 강지영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주성호, 그 남자는 업계에서도 악명 높은 미치광이였다. 그 눈빛만 봐도 소름이 돋을 만큼 음습했다. “싫어요. 안 가요.” 강지영이 곧바로 거절했다. 박태형의 시선이 싸늘하게 식었다. “넌 선택권 없어.” 그러다 잠시 숨을 고르더니 목소리를 누그러뜨렸다. “주성호가 널 좋아해. 해치진 않을 거야. 이번만 잘 넘기면 네가 원하는 건 뭐든 들어줄게.” 강지영은 그를 똑바로 바라보다가 입꼬리를 천천히 올렸다. “좋아요. 그럼 결혼식 올려요.” 박태형의 표정이 굳었다. “뭐라고?” “그때 우리는 혼인신고만 했잖아요.” 강지영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번에는 진짜 결혼식 해줘요.” 그건 그녀가 오래전부터 세워둔 계획이었다. 강지윤이 돌아왔을 때, 세상 모두가 보는 앞에서 ‘박태형의 아내’ 자리의 주인을 바꿔놓기 위해서였다. 박태형은 한참 동안 말없이 서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낮게 말했다. “좋아. 그렇게 해.” 강지영이 주씨 가문 저택에 도착했을 때, 주성호는 소파에 느긋하게 기댄 채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눈가에는 비열한 웃음이 어려 있었다. “강지윤 씨, 오랜만이네요.” 그의 손끝이 그녀의 얼굴을 따라 미끄러졌다. 강지영은 속이 뒤집혔는데도 꾹 참을 수밖에 없었다. 피할 수도, 피해서도 안 되었다. 앞선 며칠간의 고통은 차라리 ‘준비 운동’에 불과했다. 주성호는 사람을 시켜 그녀의 피를 끊임없이 뽑아내게 했다. 바늘이 혈관을 찌를 때의 통증에는 이미 무감했지만 그 피가 유리관에 차오르는 걸 바라볼 때마다 강지영은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셋째 날 새벽, 반쯤 잠이 든 그녀의 귀에 기괴한 속삭임이 들려왔다. “도련님 미친 거 아니야? 정말 피 다 빼서 샘플 만든대?” “쉿! 목소리 낮춰. 도련님이 그러시잖아. 너무 예뻐서 죽여서라도 영원히 곁에 두고 싶다고.” 그 말에 강지영의 온몸의 피가 한순간에 식었다. ‘해치지 않을 거’라던 박태형의 말은 이제 그저 우습게 느껴졌다. 그녀는 이제 정말 죽게 될지도 모른다. 등줄기를 따라 서늘한 한기가 뼛속까지 파고들었다. 강지영은 입술을 세게 깨물었다. 금세 피 맛이 번졌다. 그녀는 가까스로 이성을 붙잡고 경비가 방심한 틈을 노려 침대 머리맡의 유리 장식품을 움켜쥐었다. “쿵!” 유리가 산산이 부서졌다. 강지영은 그 날카로운 조각으로 손목의 밧줄을 끊고 2층 창문에서 그대로 몸을 던졌다. 발목에서 뚝 소리가 났다. 아득한 통증이 밀려왔지만 그녀는 멈출 수 없었다. 비틀거리며 피투성이가 된 채 강지영은 주씨 가문의 정원을 가로질러 겨우 박씨 가문 저택 문 앞에 도착했다. 문을 열자, 거실 한가운데서 박태형은 한쪽 무릎을 꿇은 채 정성스럽게 배시우의 발목에 약을 바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태형아...” 배시우의 눈가가 촉촉이 젖어 있었다. “지영 씨가 며칠째 소식이 없는데 걱정은 안 돼?” 박태형의 손이 잠시 멈췄다. 그가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나는 너만 걱정돼. 다친 거 왜 말 안 했어. 나 더는 걱정하게 하지 마.” 강지영은 문가에 서 있었다. 온몸은 젖어 있었고 부은 발목은 제대로 딛지도 못했다. 그런데도 그에게서는 단 한 번의 시선조차 받지 못했다. 강지영은 말없이 그들 곁을 지나쳤다. “강지영?” 그제야 박태형이 고개를 들더니 순간 놀란 듯 일어났다.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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