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화

그 눈빛은 마치 한 바가지 얼음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차가웠다. 그 한순간 정윤재의 가슴속에서 타오르던 폭력적인 불길은 순식간에 꺼져버렸고 동시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예우미는 본능적으로 한 걸음 물러났다. 자신이 치명적인 바이러스라도 된 듯 몸을 움츠리며 그와 거리를 두는 그 반응에 정윤재는 멍하니 아래로 내려다봤다. 다른 사람의 피로 얼룩진 자신의 주먹이 서서히 떨리기 시작했고 그제야 밀려오는 공포와 혼란이 전신을 뒤덮었다. ‘방금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어떻게 이렇게까지 이성을 잃을 수가 있지?’ ‘그저 우미가 다른 사람한테 웃어줬다는 이유로?’ 그 순간 그는 더는 자기 자신을 속일 수 없었다. 이건 단순한 소유욕도 자존심을 지키려는 유치한 몸부림도 아니었다. 그건 분명한 질투였고 두려움이었고 무엇보다 사랑이었다. 그는 예우미를 정말로 사랑하게 된 것이었다. 그 사실을 깨닫는 찰나 심장은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고 손끝과 발끝은 얼어붙은 것처럼 차가워졌다. 그리고 그 사랑은 이제 더는 돌이킬 수 없는 것이 되어버렸다. 다음 날, 정윤재는 억지로 외양을 단정하게 꾸며냈다. 하지만 눈가에 드리운 지친 그림자와 터져버린 실핏줄로 붉어진 눈동자까지는 감출 수 없었다. 그는 다시 예우미의 아파트 앞에서 그녀를 기다렸다. 문이 열리고 그녀가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그는 곧장 다가섰다. 예전처럼 능청스럽고 여유로운 미소 따윈 사라진 지 오래였다. 목젖이 간신히 한번 움직이고 떨리는 목소리는 긴장에 질려 거칠게 갈라졌으며 그조차 자각하지 못한 채 절박함과 초라한 애원이 밑바닥에서 묻어나왔다. “예우미.” 그는 마치 말을 꺼내는 것조차 고통스러운 사람처럼 힘겹게 입을 열었다. “예전의 나는 정말 쓰레기였어. 널 속이고 또 널 이용했지. 그 모든 게 사실이야. 하지만 지금은 진심이야. 정말 진심으로 너를 좋아하게 됐어.” 숨을 크게 들이마신 그는 거의 마지막 남은 용기를 끌어모으듯 그녀를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그 눈빛엔 단 하나의 간절한 희망만이 매달려 있었다. “그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