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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

예우미는 경대에서 소문난 청순 여신이었다. 수많은 남학생이 그녀를 마음속 첫사랑으로 품었고 감히 손댈 수 없는 존재로 여겼다. 하지만 어느 날, 그 완벽한 여신이 한순간에 무너졌다. 캠퍼스 커뮤니티에 그녀의 사적인 사진들이 유출된 것이다. 대학원 추천 자격은 취소되었고 복도와 식당을 걸을 때면 누군가 비웃으며 물었다. “하룻밤에 얼마야?” 그 사진을 가진 사람은 단 한 명뿐이었다. 그녀의 남자친구, 정이현. 믿을 수 없었다. 예우미는 충격에 휩싸인 채 그를 찾아갔다. 하지만 문을 열기 직전, 안에서 들려온 대화가 그녀의 발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이현아, 이번 수 진짜 독하네. 그런 사진들 터졌으니 예우미는 완전 끝났지. 대학원도 물 건너갔고 이제 감히 박경하랑 경쟁할 생각도 못 하겠네?” 다른 이가 비웃으며 맞장구쳤다. “그것뿐이면 다행이지. 만약 그 여자가 이현이가 단 한 번도 진심이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되면 어떨 것 같냐? 손끝 하나 대기도 싫어서 낮엔 대충 넘기고 밤엔 자기 동생 시켜 대신 침대로 보냈다는 걸 안다면? 하하, 그때야말로 진짜 미쳐버리겠지.” 그 말은 벼락처럼 예우미의 귓가에 울렸다. 숨이 막혔다. 입을 틀어막고 울음을 참았지만 얼굴은 순식간에 핏기 하나 없이 하얗게 질렸다. 그때 또 다른 남자가 팔꿈치로 옆 사람을 찔렀다. “야, 윤재야. 네가 형 여자친구랑 2년 동안 몰래 잤다며? 어땠냐? 진짜 궁금해서 미치겠는데.” 남자는 정이현과 똑같이 생긴 얼굴로 느긋하게 술잔을 들어 올리며 비웃듯 말했다. “어떻긴, 끝내주지. 피부는 하얗고, 몸은 부드럽고 목소리도 기가 막혀. 어떤 자세든 다 받아 줘. 내가 이번에 학교 옮기는 것도 걔를 더 쉽게 만나려고 그런 거야.” 그때까지 침묵하던 정이현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감정 하나 묻히지 않은 냉담한 목소리였지만 그 한마디 한마디가 예우미의 심장을 송곳처럼 찔렀다. “며칠 안 남았으니까 실컷 즐겨. 대학원 추천 정원은 경하한테 주면 끝이야. 그때 가서 깔끔히 정리하고 정식으로 고백할 거니까.” “와, 드디어 경하한테 대시하시는 거야?” 놈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형이 경하 누나 좋아하는 거 우리 다 알죠. 어릴 때부터 별이라도 따다 줄 기세였잖아요. 이번에 대학원 자리가 딱 하나뿐이라, 경하가 그걸 원하니까 형이 경쟁자였던 예우미한테 접근해서 연애하고 마지막엔 이렇게 끝내버리고... 완전 순정남이네요!” 웃음과 조롱이 뒤섞인 소리 속에서 예우미의 세상은 산산이 부서졌다. 피가 식은 듯 온몸이 싸늘해졌고 심장은 마치 낯선 쇠못에 박힌 것처럼 아팠다. 진실은 이렇게 더럽고 이렇게 잔인했다. 그녀는 더 이상 그 자리에 설 수 없어 그대로 뛰쳐나왔다. 눈물이 쏟아져 앞이 흐려졌고, 세상이 일그러져 보였다. 예우미는 어릴 적부터 부모에게 혹독하게 길러졌다. 연애 따위는 시간 낭비라 여겼고 감정은 약점이라 믿었다. 그런 그녀가 처음으로 심장이 뛴 순간은, 대학 1학년 봄이었다. 책을 품에 안고 농구장을 지나던 중, 어디선가 농구공이 그녀를 향해 날아왔다. 겁에 질려 눈을 감았지만 생각했던 충격은 없었다. 누군가 대신 몸을 던져 그 공을 막아준 것이다. 놀라 눈을 떴을 때, 석양을 등진 남자의 실루엣이 보였다. 햇빛에 반짝이는 땀방울, 또렷한 이목구비와 차가운 눈동자. 그 순간, 그녀는 자기 심장이 미친 듯이 뛰는 소리를 들었다. 그가 바로 경인대의 전설이자 재벌가의 도련님, 정이현이었다. 여학생들의 고백은 끝없이 이어졌고 그를 보기 위해 교문 앞에 줄이 늘어섰다. 하지만 그는 언제나 냉정하고 무심했다. 단 한 사람, 음악과의 여신 박경하 앞에서만 조금 달랐다. 예우미는 처음부터 그와 자신은 전혀 다른 세상의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감정을 억누른 채 오직 공부에만 몰두했고 덕분에 늘 성적은 1등에 모범생의 표본이었다. 그러나 어느 날부터인가, 정이현은 이상하리만치 자주 그녀 곁에 나타났고 도서관, 강의동 등 어디서든 마주쳤다. 그리고 어느 날, 밤새워 공부하던 그녀는 도서관에서 잠이 들었고 눈을 떴을 때 그의 어깨에 기대 자고 있었다. 놀라 몸을 떼려는 순간, 그가 손목을 잡았다. 낮고 깊은 목소리가 그녀의 귓가를 스쳤다. “예우미, 나랑 사귈래?” 그 순간, 세상이 하얗게 비어버렸다. 기쁨과 설렘이 뒤섞인 채,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시작된 연애였지만 그는 늘 어딘가 이상했다. 낮에는 무뚝뚝했고 연락도 드물었으며 데이트조차 형식적이었다. 그런데 밤이 되면 그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숨이 막힐 만큼 뜨겁고 욕망에 취한 채 그녀를 탐했다. 그리고 언제나 카메라로 그녀의 모습을 찍었다. 그녀는 불안했지만 사랑이 모든 걸 덮었다. ‘낮엔 피곤하니까 그런 거야. 그래도 나를 사랑하니까 밤엔 이렇게 달라지는 거겠지...’ 그렇게 자신을 속이며 하루하루를 버텼다. 하지만 진실은 상상보다 끔찍했다. 낮에 그녀를 만난 사람은 형 정이현이었고 밤에 그녀의 방에 들어온 남자는 그의 동생 정윤재였다. 그녀는 두 형제의 욕망을 대신 받아주는, 한낱 ‘장난감’에 불과했다. 그리고 그 모든 이유는 단 하나, 박경하의 대학원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예우미는 힘이 풀린 채 한적한 골목에 주저앉았다. 목이 메이고 숨이 막혀 울음이 터져 나왔다. 그때, 휴대폰이 울렸다. “예우미! 학교 커뮤니티에 올라온 그 사진들은 뭐야? 지도교수한테까지 전화 왔어! 네가 우리 집을 어떻게 망신시키는 줄 알아?” 엄마의 비명 같은 목소리 뒤로 아버지의 분노가 겹쳤다. “우리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대학 가서 그런 짓 하라고 키운 거야?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목이 메어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부모는 언제나 냉정했다. 그녀가 1등을 할 때만 잠시 웃었고 상을 받을 때만 칭찬했다. 그래서 그녀는 늘 스스로를 옭아매며, 완벽해야만 사랑받을 수 있다고 믿었다. “울긴 왜 울어! 대학원도 물 건너갔으니 이번 달 말에 해외로 나가라. 이미 항공권 예매했어. 몇 년 조용히 있다가 사람들이 잊으면 돌아와.” 엄마의 목소리는 차갑고 단호했다. 예우미는 더는 울 수조차 없었다. “알겠어요.” 목소리는 공허했고 눈빛은 죽어 있었다. 이제 그녀는 떠날 것이다. 그리고 다시는, 이 땅으로 돌아오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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