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화
서울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원시아에게는 ‘아내 바라기’로 불리는 완벽한 남편이 있다는 사실을.
그런 그녀가 산후조리 중이던 어느 날, 낯선 사람에게서 친구 추가 요청을 받았다.
메시지는 단 한 줄이었다.
[신도운이 바람피웠어요. 증거도 있습니다.]
짧은 문장이었지만 독이 발린 갈고리처럼 눈에 박혀 숨이 턱 막혔다.
원시아는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세면대 앞에 서서 그녀가 방금 갈아입은 피 묻은 바지를 손수 빨고 있는 신도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밖에서는 위엄 있고 고귀한 신해 그룹의 대표, 하지만 그녀의 앞에서는 누구보다 익숙하게 허드렛일을 해내는 남자였다.
그는 원시아의 일만큼은 단 한 번도 남의 손에 맡긴 적이 없었다.
원시아는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 그리고 그 친구 요청을 바로 삭제했다.
신도운은 원시아가 목숨처럼 아끼는 사람이었다.
때문에 세상 모든 남자가 바람을 피운다 해도 신도운만큼은 절대 아닐 거라 믿은 것이었다.
그러나 사흘 뒤, 또다시 같은 계정에서 요청이 왔다.
[못 믿겠다면 신도운의 코트 안주머니를 확인해 보세요.]
상대는 이미 결과를 알고 있다는 듯 확신에 차 있었고 원시아의 심장은 점점 공포심에 쥐어짜이듯 조여 왔다.
그렇게 망설이다가 결국 조심스레 손가락을 코트 안으로 밀어 넣었다.
그러자 여러 개로 쌓여있는 무언가가 손끝에 잡혔고 원시아는 감전된 듯 손을 놓아버렸다.
민트 향이 나는 콘돔들이 바닥에 흩어졌다. 그 브랜드는 원시아에게 너무도 익숙했다.
바로 임신 전, 신도운이 그녀와 함께할 때 매일같이 그것을 사용했으니 말이다.
한 묶음에 열두 개나 하는 것이었는데 그중 아홉 개가 비어 있었다.
그 순간, 원시아의 온몸에 흐르던 피가 얼어붙었다.
‘말도 안 돼.’
그녀와 신도운은 십수 년을 함께한 소꿉친구였다.
오랫동안 알고 지내다 서로 사랑하게 됐고 연애부터 결혼까지 모든 과정이 너무도 자연스러워 사람들의 부러움을 샀었다.
결혼 후에도 신도운은 매일같이 그녀를 손바닥 위에 올려두듯 아꼈으며 모든 일을 직접 챙겼고 누구에게도 맡기지 않았다.
아이를 낳는 일처럼 대부분의 남자들이 피하는 순간에도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했고 감격에 겨워 눈물까지 흘렸다.
그래서 원시아는 믿었다. 그녀의 인생에서 최대로 행운스러운 일은 신도운을 만난 거라고.
하지만 바닥에 떨어진 아홉 개의 빈 콘돔을 보자 무언가에 머리를 세게 맞은 듯한 충격이 몰려왔다.
눈앞이 어지러워졌고 세계가 무너져 내리는 것만 같았다.
손을 쥐었다 폈다를 몇 번이고 반복한 끝에 그녀는 결국 친구 요청을 수락했다.
그리고 상대는 별말 없이 달랑 주소 하나만을 보내왔다.
[진실이 알고 싶으면 여기로 와요.]
원시아는 곧바로 그 위치로 향했다. 프라이빗 멤버십 클럽에 있는 한 룸이었다.
문틈 사이로, 중요한 계약 때문에 외출한다던 신도운의 모습이 보였는데 그는 막 승진한 부대표 고현지를 끌어안고 거리낌 없이 입을 맞추고 있었다.
아주 집요하고도 깊게, 마치 그녀를 자신의 몸 안에 집어삼킬 듯이 말이다.
한참 뒤, 오랜 키스가 끝나자 주변에 있던 공통 지인들이 휘파람을 불며 떠들었다.
누군가는 웃으며 말했다.
“형 엄청 몰입한다? 현지 씨가 형수님보다 더 좋은가 봐?”
신도운은 고현지의 흐트러진 옷깃을 다정하게 정리해 주며 잔인할 만큼 담담하게 말했다.
“비교가 안 되지. 예전의 원시아는 누구도 따라올 수 없었어. 하지만 지금의 원시아는... 솔직히 말해 거의 1년 가까이 손도 안 댔어.”
사람들이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물었다.
“형 예전에는 그렇게 공개적으로 쫓아다녔잖아. 결혼한 지 겨우 3년밖에 안 됐는데 벌써 질린 거야?”
이번에는 신도운이 오래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
“아니. 난 여전히 원시아를 사랑해. 하지만... 가까이 가기만 하면 임신 후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아. 그날 분만실에서 봤던 모습도 그렇고.”
그는 미간을 깊게 찌푸렸다.
“너희는 못 봤을 거야. 기형적으로 불룩한 배, 온통 퍼진 튼살, 힘주다가 실수까지... 너무 역겨웠어. 극복하려고 했는데 안 되더라. 한동안은 평생 여자를 못 건드릴 줄 알았어.”
그러다 그는 고현지를 다시 끌어안으며 눈빛이 순식간에 부드러워졌다.
“그런데 현지가 날 다시 나답게 만들어줬지. 만난 지 사흘 만에 잠자리를 가졌고 오늘이 스물여덟째 날인데 이미 아흔아홉 번이나 했어. 현지는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약속했거든.”
달콤한 말투로 가장 잔인한 말을 내뱉으며 그는 원시아의 세계를 완전히 부숴버렸다.
“현지는 평생 깨끗하고 예쁠 거야... 시아처럼 나를 역겹게 만들지 않고.”
...
원시아는 자신이 어떻게 그곳을 떠났는지도 기억나지 않았다.
그저 정신을 차렸을 때, 아기 침대 앞에 무릎을 꿇은 채 떨고 있을 뿐이었다.
신씨 가문은 대를 이을 후손이 하나뿐이었다.
사실 그녀도 이렇게 빨리 아이를 가질 생각이 없었으나 신도운이 석 달 내내 간청했고 결국 마음이 약해져 받아들인 것이었다.
임신 테스트기에 두 줄이 뜬 날, 원시아는 막막했지만 신도운은 기쁨에 겨워 울 듯 말 듯 한 얼굴로 그녀를 끌어안고 계속해서 입을 맞췄다.
“나 아빠 되는 거야?! 시아야, 나 너무 행복해!”
그 눈물은 진짜였고 그동안 그녀와 아이에게 보여준 사랑도 분명 진짜였다.
그런데 뒤에서는 원시아를 추하다고 생각했다니...
‘못생겼다’, ‘역겹다’, 이런 단어 하나하나가 원시아를 무너뜨리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그녀가 이렇게 변한 게 과연 누구 때문이었을까?
신도운은 원시아가 분만실에서 나온 바로 그 날 고현지를 만났고 사흘 만에 그녀와 잠자리를 가졌다.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에 몸이 떨렸지만 원시아는 이를 악물고 휴대폰을 들어 그 친절한 제보자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너지? 고현지.]
[원하는 대로 해. 신도운, 너한테 넘길게.]
신도운은 원시아가 더럽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 원시아에게 있어 그보다 더 더러운 건 신도운이었다.
‘그딴 남자, 이제 필요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