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2화
강유진은 결국 발걸음을 멈췄다.
하재호는 정말로 약만 건네주고 아무 말 없이 가 버렸다.
너무나 멀쩡한 모습에 강유진은 그가 낯설게 느껴질 정도였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강유진은 신수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수지는 전화를 받자마자 약은 잘 받았냐고 물었다.
강유진은 방금 받았다고 대답했다.
“그럼 재호가 꽤 오래 기다렸겠네요.”
신수지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강유진이 전화를 건 데에는 속셈이 있었다. 신수지에게 확실히 말해 두어야 했다. 앞으로는 하재호가 약을 가져다주는 일이 없도록 말이다.
그들 사이에는 더 이상 아무런 가능성도 없으니까.
허재열은 강유진이 하재호를 대할 때 아주 평온해 보인다고 말했다.
강유진은 그 점에 대해서는 부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평온한 사람이 되기 위해 얼마나 큰 대가를 치렀는지,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러니 정신줄을 놓지 않고서야 그와 같은 전철을 다시 밟을 리 없었다.
“아주머니, 이제 그 사람 시켜서 약 보내지 말아요. 일 말고는 정말 엮이고 싶지 않으니까.”
신수지는 한참 동안 말이 없다가 한숨을 길게 내쉬며 말했다.
“그래요. 알겠어요.”
“아니면 그 약 처방전을 저한테 주세요. 제가 직접 약국 가서 약 지어서 달여 먹을게요.”
“처방전만 있다고 되는 게 아니에요. 몇 가지 약재는 구하기가 엄청 힘들거든요. 내가 시골에 부탁해서 겨우 구한 것들이에요.”
신수지는 그녀를 달래듯 말했다.
“내가 귀찮아한다고 생각하지 말아요. 유진 씨도 알잖아요. 나 하나도 안 귀찮아 한다는 거. 그리고 내가 약 달이는 데는 더 경험도 많고 더 꼼꼼하잖아요.”
잠시 머뭇거리던 신수지는 다시 한숨을 쉬며 말했다.
“유진 씨, 재호랑 헤어졌다고 나까지 모른 척할 거예요? 그리고 회장님도 겉으로는 말 안 해도 유진 씨 걱정 엄청 하세요. 사업 소식도 늘 챙겨 보시고...”
강유진은 하재호에게 마음 편히 선을 그을 수 있었다. 그에게 할 수 있는 건 다 했으니 이제는 냉정해져도 아무런 죄책감이 없었다.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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