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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

“유빈아, 우리 삼촌... 여자친구 생겼다?” 홍유빈이 눈을 떴을 때 코끝에는 소독약 냄새가 진하게 감돌고 있었다. 막 맹장 수술을 마친 직후였다. 수술실 들어가기 전에 남자친구인 계민호에게 보냈던 메시지는 여전히 답장이 없었다. 이때 절친인 계하린에게서 전화가 걸려 온 것이다. 홍유빈은 핸드폰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가며 괜히 찔린 듯한 목소리로 물었다. “너... 알고 있었어?” “응? 뭐야, 너도 알고 있었어?” 계하린은 잠시 멈칫하더니 곧 이해했다는 듯 말했다. “아아, 그렇구나. 넌 우리 삼촌 비서니까 알고 있어도 이상할 건 없겠네. 그런데 진짜 놀랐다? 그렇게 오랫동안 솔로로 살던 사람이 사실은 한 여자만 바라보고 있었던 거라니...” ‘한 여자...?” 홍유빈의 숨이 순간 턱 막혔다. “그런데 난 진짜 강다혜가 너무 싫어.” 계하린은 투덜대는 목소리로 말했다. “유난 떨고, 허세 가득하고, 말할 때마다 애교 떠는 완전 짜증이야. 우리 삼촌은 그런 여자가 대체 뭐가 좋다는 건지 난 하나도 모르겠어.” 조금 전까지만 해도 정체가 들킨 건 아닐지 조마조마했지만 이 말을 듣는 순간 깨달았다. 계하린이 말한 그 여자친구는 자신이 아니라는 것을. 막 수술한 오른쪽 아랫배의 상처가 당겨오듯 아파 홍유빈은 입술을 틀어 물며 꾹 참고 말했다. “하린아, 혹시... 혹시 네가 잘못 본 건 아니야?” 출국하기 전까지만 해도 계민호는 매일 밤 그녀를 끌어안고 잠들었는데 어떻게 그렇게 쉽게 다른 사람을 좋아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자 계하린은 혀를 차더니 말했다. “아니야. 확실해. 내가 전화 끊고 영상 통화로 다시 걸어줄게.” 통화가 끊기자마자 바로 화면이 영상 통화로 전환되었다. “유빈아, 봐봐. 이 핑크색 스키복을 입은 애가 강다혜고, 여기 검은색이 우리 삼촌이야. 완전 닭살 돋지 않아? 봐, 우리 삼촌이 강다혜 손도 녹여주고 내 앞에서 뽀뽀까지 했다니까. 우웩, 지금 생각해도 토 나와.” 화면은 멀리 있었지만 홍유빈은 단번에 계민호를 알아보았다. 계민호는 말했다. 그녀가 스물다섯 번째 생일을 맞이하게 되는 날이면 두 사람의 관계를 모두에게 공개하겠다고. 그리고 현재 그녀의 생일까지 단 닷새밖에 남지 않았다. 그가 자신을 사람들에게 소개해 줄 날만 기다리던 그녀는 가장 힘든 순간에 그가 소원을 이룬 모습을 직접 보게 되었다. 그것도 다른 여자와 말이다. 간호사가 병실로 들어와 진료 차트를 보며 말했다. “홍유빈 님, 드레싱 교체할게요.” “응? 유빈아, 너 지금 병원이야?” 홍유빈은 목이 메는 걸 억지로 눌러 삼키며 말했다. “아니야. 아는 사람 병문안 온 거야. 하린아, 이만 끊을게. 나중에 다시 연락해.” “응, 알았어. 그럼 내가 카톡으로 말할게!” 지잉, 지잉. 전화가 끊기자마자 바로 핸드폰이 짧게 몇 번 진동했다. 홍유빈은 반사적으로 핸드폰을 꽉 쥐고 화면을 켰지만 역시나 계하린의 메시지였다. [유빈아, 난 진짜 우리 삼촌이 남자 좋아하는 줄 알았어. 그런데 저런 가식덩어리를 좋아할 줄이야.] [그런데 저 가식덩어리 말이야... 너랑 좀 닮은 것 같지 않아?] 이 말은 홍유빈이 수없이 들어온 말이었다. 그녀와 강다혜 사이에는 혈연관계가 없었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 어머니는 강씨 가문으로 들어가 재혼했고 강다혜는 그녀의 이복동생이 되었다. 홍유빈은 눈을 감았다가 메시지 창을 닫았다. 그러다가 알림창에 새로 뜬 인스타 소식을 하나 보게 되었다. 강다혜가 게시글을 올렸다는 소식이었다. [헤헤, 내 전담 코치.] 사진은 조금 전에 찍은 듯한 두 사람의 투샷이었다. 홍유빈은 계민호와 3년 동안 비밀 연애를 해왔다. 그녀가 아무리 부탁해도 계민호는 그녀와 찍은 사진 공개를 한반도 허락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야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가 싫어한 건 사진이 아니라 그녀를 사람들에게 드러내는 일이었다. 계민호는 카메라를 바라보지 않았다. 대신 고개를 숙여 애정이 담긴 눈빛으로 강다혜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두 눈동자에는 강다혜의 모습만이 가득 담겨 있었다. 곧바로 새로운 댓글 하나가 올라왔다. [ㄱㅁㅎ: 우리 다혜 공주님.] 홍유빈은 손바닥에 손톱이 파고들 만큼 주먹을 꽉 쥔 채 믿을 수 없다는 듯 그 익숙한 프로필을 눌렀다. 역시나 계민호의 계정이었다. 밸런타인데이, 크리스마스, 새해 첫날... 그가 말하던 모든 야근과 출장, 접대는 전부 강다혜와 함께였다. 화면 속에 박힌 글자들이 날카로운 바늘이 되어 그녀의 가슴을 쿡쿡 찌르는 것 같았다. 차가운 기운이 뼛속까지 깊게 스며들어 홍유빈은 숨 쉬는 것조차 힘들었다. 입안에서는 쇠 비린내 같은 피 맛이 맴돌았다. 왜 하필이면 그 상대가 강다혜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그녀와 이복동생 강다혜는 단 한 번도 사이가 좋았던 적이 없었다. 그리고 그 모든 일을 계민호는 전부 다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나랑 사귀었던 건 내가 강다혜의 대타였다는 거야? 그런 거지?' ‘하, 됐어. 이제 그만하자. 무슨 의미가 있겠어.' 홍유빈은 핸드폰을 들어 어머니인 안서화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엄마, 저 선 볼게요.] 늘 그녀에게 무심하던 안서화는 거의 바로 답장을 보내왔다. [생각이 바뀌었다니 다행이구나. 장소는 이미 보냈어. 1012호 룸이야. 너 그 쓸데없는 자존심은 좀 내려놔. 알겠어?] 홍유빈의 입가에 비웃음이 스쳤다. 정말이지 하루라도 빨리 그녀를 내다 팔아 좋은 값을 받고 싶은 모양이었다. 수액을 다 맞은 뒤 그녀는 밖으로 나와 택시를 세우고 안서화가 알려준 곳으로 향했다. ... 안서화가 홍유빈에게 좋은 상대를 붙여줄 리가 없었다. 그녀와 맞선을 볼 상대는 악명 높은 난봉꾼 금쪽이로 여자를 갈아치우는 속도가 옷을 갈아입는 속도보다 빠른 사람이었다. 안서화가 재혼한 뒤로 잘해주는 건 오직 강다혜뿐이었다. 홍유빈은 이미 그녀의 그런 편애에 익숙해져 있었다. 홍유빈은 깊게 숨을 들이마신 귀 룸의 문을 열었고 또렷한 눈매가 바로 가늘게 좁혀졌다. 남자는 요란한 와인빛의 슈트를 입고 있었고 사람들 사이에서도 단번에 눈에 띄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한 손에는 와인잔을 들고, 다른 한 손은 주머니에 찔러 넣은 채 한없이 느긋한 태도였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자 남자는 고개를 들었다. 그 눈웃음 가득한 눈매는 묘하게 사람을 끌어당겼다. “오늘 맞선 보러 오셨죠?” 솔직히 말해서 이 심씨 가문의 금쪽이는 흠잡을 데 없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여자들 사이에서 유유히 떠돌 자격이 충분한 얼굴이었고 실제로도 그는 그렇게 살고 있었다. 룸 안에는 남자도 여자도 섞여 있었고 가릴 것 없이 난잡했다. 남자는 눈썹을 치켜세웠다. “그게 무슨...” “얘기 좀 할까요??' 남자는 잔을 내려놓고 다른 사람들에게 나가라는 손짓을 했다. 그러자 룸 안은 조용해졌다. 홍유빈은 입술을 살짝 앙다문 채 남자 앞에 우뚝 멈춰 섰다. “제 이름은 홍유빈이에요. 오늘 선 보러 왔어요. 마음에 들면 바로 결혼해도 되고요.” 계민호의 무정함은 홍유빈에게 남자라는 존재의 본질을 똑똑히 보여주었다. 어차피 결혼은 누구와 하든 마찬가지였다. 그저 같이 살며 형식만 맞추는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남자는 입꼬리를 올리며 무심하고 여유가 넘치는 목소리로 되물었다. “결혼?” 홍유빈은 마음을 가다듬고 말했다. “네. 두 집안이 연을 맺는 이상 이 자리의 목적은 결혼이죠. 밖에서 어떻게 놀든 신경 쓰지는 않겠지만 심지훈 씨의 사생아까지 책임질 생각은 없어요. 그냥 심지훈 씨가 뭘 하든 간섭하지 않겠다는 정도예요.” “가능하다면 결혼 기간은 1년이 가장 좋을 것 같네요. 그 1년 동안은 아내 역할 충실히 할거고요. 1년 후에는 우리 서로 부부 관계를 정리하는 거예요. 아, 걱정하지 마세요. 명목뿐인 결혼인 만큼 심씨 가문의 재산에는 손대지 않을 거니까요. 불안하면 결혼 전에 변호사 불러서 공증해도 되고요.” “괜찮다고 생각하면 계약서를 써도 돼요. 그리도 서류로 남겨야 마음이 편하지 않겠어요? 어때요?” 홍유빈은 자신의 태도가 충분히 성의 있다고 생각했다. 난봉꾼에게는 그녀 같은 얌전한 아내가 방패막이가 되는 게 손해일 리가 없었다. 그러나 남자의 시선은 추운 겨울밤의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다 같았고 자신을 탐색하는 눈빛에 홍유빈의 심장이 순간 조여 왔다. “좋아요.” 여유가 가득한 목소리에는 옅은 한숨이 섞여 있었다. 그러더니 이내 말을 바꾸었다. “시간도 꽤 남았는데, 그럼 바로 혼인신고 하러 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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