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화
크리스마스이브, 남편과 그의 마흔아홉 번째 애인이 공식 발표를 했다.
[나의 영원한 사랑, @유지아.]
[나의 영원한 사랑, @김성준.]
그는 고개를 돌려 나를 위로하듯 말했다.
“유지아가 게임에서 져서 벌칙으로 올린 거야. 신경 쓰지 마.”
사람들은 나를 비웃었지만 나는 그들을 향해 따지거나 화내지 않았다.
그들은 내가 시스템과 거래를 했다는 사실을 모를 것이다.
김성준이 바람을 피울 때마다 그의 수명이 1년씩 나에게 넘어오는 거래였다.
계산해 보니 김성준의 80년 수명은 이제 1년밖에 남지 않았다.
새해만 넘기면 그는 수명을 다해 죽을 것이고 나는 세 아이와 함께 강진 그룹의 막대한 재산을 상속받게 된다.
...
언론은 마비되었다.
김성준과 유지아의 공식 발표 기사는 모두 폭발적인 조회수를 기록했다.
10분도 채 지나지 않아 SNS 댓글은 10만 개를 넘어섰다.
[김 대표님 정말 로맨틱하시다. 이게 진짜 사랑이지!]
[유지아는 전생에 은하계를 구했나 봐.]
[@임연아, 사모님 어서 보세요. 남편 애인 또 바뀌었어요!]
나는 휴대폰을 내려놓고 평온한 마음으로 테이블 위의 홍차를 음미했다.
초인종이 울렸고 김성준의 부모님이 분노에 찬 얼굴로 들어왔다.
김성준의 아버지 김정호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채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연아야, 성준이가 또 망나니짓을 했구나. 내가 요트 한 척 보내줄 테니 기분 전환이라도 하렴.”
김성준의 어머니 신윤희는 내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연아야, 걱정하지 마. 우리 김씨 가문 며느리는 너뿐이야. 저 요망한 여우 같은 것들은 절대 넘보지 못해!”
나는 고개를 숙여 차를 따르며 이해한다는 표정을 지었다.
“감사합니다, 어머님, 아버님. 이해해요.”
화를 낼 이유가 없었다.
김성준의 벌써 마흔아홉 번째 애인이었다.
정말 다행히도 이제 7일만 지나면 모든 것이 끝날 것이다.
다음 날, 강진 그룹 홍보팀 실장이 직접 찾아왔다.
“사모님, 준비된 입장문입니다. 한번 보시겠습니까?”
자세히 살펴보니 여전히 똑같은 레퍼토리였다.
“단순히 게임일 뿐 저는 신경 쓰지 않습니다... 저희는 사이가 좋고... 불필요한 관심은 사양합니다...”
지난 10년간 나는 수많은 입장문을 발표해 왔다.
하지만 이번 입장문은 특히 중요했다.
김성준이 처음 공개적으로 한 발표인 만큼 그 파급력이 엄청났기 때문이다.
나는 그 여자를 본 적이 있었는데 이전의 애인들과는 조금 달랐다.
더 솔직했고 더 똑똑했으며 김성준이 죽도록 사랑했던 첫사랑과 많이 닮았다.
입장문이 발표된 후 친구들 사이에서 또다시 난리가 났다.
사모님들 단톡방에서 누군가가 나를 직접 언급했다.
[연아 언니는 마음도 넓어요. 우리 남편이 저랬으면 다리를 부러뜨렸을 거예요.]
[역시 괜히 김씨 가문 안주인이 아니라니까. 우리는 따라갈 수가 없어.]
빈정거림에 질릴 대로 질린 나는 단톡방을 닫고 서재로 들어갔다.
서랍 맨 아래 칸에는 가죽 커버의 작은 수첩이 놓여 있었다.
첫 페이지에는 10년 전 날짜가 적혀 있었다.
[진하영, 23세, 무용학과 학생. 3개월 교제, 아파트 한 채 선물.]
이어 두 번째 페이지.
[이우정, 25세, 인터넷 방송 진행자. 4개월 교제, 옷 가게 개업.]
...
마흔여덟 번째 페이지.
[서지안, 22세, 음대 재학. 2개월 교제, 스포츠카 한 대 선물.]
나는 마흔아홉 번째 페이지를 쓰기 시작했다.
[유지아, 24세, 연극영화과 졸업.]
그녀가 마지막으로 무엇을 얻게 될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왠지 모르게 그녀의 목표가 단순하지 않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수첩을 덮자 창밖으로 보슬보슬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정원의 크리스마스트리에는 전등이 켜져 있었고 세 아이는 눈사람을 만들고 있었다.
웃음소리가 유리창 너머까지 들려왔다.
나는 문지수다.
이곳으로 넘어왔던 날, 이 몸의 주인은 막 숨을 거두었다.
침대 머리맡에는 수면제 병이 흩어져 있었고 휴대폰 화면에는 김성준과 진하영이 침대에서 뒹굴고 있는 사진이 떠 있었다.
그녀에게는 깊은 집념이 있었다.
“김성준은 바람둥이가 아니야. 저 여자가 잘못한 거야... 나 대신 성준이 보살펴줘...”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거절하고 싶었다.
사랑에 눈먼 사람들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불륜녀 때문에 죽어가면서도 오히려 남편을 걱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시스템이 나를 설득했다.
“어차피 돌아갈 수도 없잖아. 임무를 수행하면 네 소원 하나를 들어줄게.”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임연아는 김성준이 나쁜 남자가 아니라고 굳게 믿고 있어. 그럼 거래하자. 김성준이 바람을 피울 때마다 김성준의 수명이 1년씩 나에게 넘어오는 거야. 김성준의 수명이 모두 나에게 넘어왔을 때 내 임무도 완료되는 거지.”
시스템은 3초간 침묵했다.
“그 거래, 받아들일게.”
마흔아홉 번의 바람과 함께 49년의 수명이 줄어든 것이다.
김성준은 원래 80까지 살아야 했다.
하지만 이제 1년밖에 남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올해만 지나면 남아 있는 시간은 끝난 셈이다.
나는 깊은 해방감을 느꼈다.
그때 휴대폰이 울렸고 김성준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저녁은 밖에서 먹을 거야. 너도 알다시피 유지아가 게임하다가 져서 벌칙으로 올린 거니까 온라인에서 떠들고 있는 말들 너무 신경 쓰지 마.]
나는 답장하지 않았고 그도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이미 우리에겐 익숙한 방식이었다.
“연아야, 넌 이해심이 많잖아. 나는 그냥 재미로 스트레스 해소하는 것뿐이야. 걱정하지 마. 내 아내는 너 하나뿐이니까.”
나는 코웃음을 치며 아이들을 불러 저녁을 먹였다.
크리스마스 종소리가 희미하게 울려 퍼졌다.
이제 7일 남았다.
7일 후, 새해를 맞아 화려한 불꽃이 하늘 가득 피어날 것이고 동시에 나의 장부도 마침내 마지막 페이지로 넘어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