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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내가... 동생이 하나 있는데 지금 위중한 상태야. 병원에서는 사실상 사망 선고나 다름없는 말을 했어. 길어야 한 달도 힘들 거라더군.” “아...” 할머니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손태하는 상황을 눈치챘다. ‘아, 어르신 본인이 아니라... 동생분을 위해서 결혼 상대를 찾는 거였네.’ “그래서 말인데, 자네 혹시... 내 동생하고 간단하게 결혼식만 올려줄 수 있겠나?” “음... 가능은 한데요.” 손태하는 고개를 살짝 갸웃하며 말을 이었다. “다만 그건 좀 협의가 필요할 것 같아요. 아무래도 단가가...” ‘남자친구 대행도 하루 10만 원인데, 남편 대행이라면...’ 그것도 임종을 앞둔 환자와의 결혼이라면 얘기가 달랐다. ‘이건 아무리 싸게 쳐도 백만 원은 넘겨야지. 아니? 혹시 혼인신고까지 생각하면... 천만 원은 받아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러자 할머니가 조용히 말했다. “돈은 걱정하지 말게. 자네가 동의만 해준다면 결혼식이 끝나는 날 바로 1억 원을 주겠네.” “네... 네? 1억이요?” 손태하의 목소리가 절로 한 옥타브 올라갔다. “그래. 계약서 쓰고 결혼식만 올리면 그날 바로 자네 통장으로 1억 원을 입금해 줄 거야.” 할머니는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말투는 물론 눈빛에서도 농담 같은 기색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냥 결혼식만 올리면 되는 거죠? 다른 건 없는 거고요?” 1억 원이라는 말에 손태하의 심장은 요동쳤다. ‘이건 뭐 거의 인생 역전이 눈앞에 떨어진 거잖아. 몇 시간짜리 결혼식만 올리고 1억이라니...’ “결혼식뿐만 아니라 당연히 혼인신고도 해야지. 간단해. 신분증이랑 가족관계증명서, 그리고 기본증명서만 제공해 주면 돼.” “아... 혼인신고까지요?” 손태하는 순간 굳어버렸다. ‘그렇지... 그냥 웨딩드레스 입고 사진 찍는 걸로 끝날 리가 없지. 혼인신고까지 해야 1억을 준다는 거네.’ 하지만 곧 머릿속에서 계산이 빠르게 정리됐다. ‘그분이 살날이 길어야 한 달 남았다고 했지. 그러면 이 혼인신고도 고작 한 달짜리 계약 문서인 셈이야. 한 달만 버티면 1억. 이건 거의 세금 없는 복권 당첨 수준 아닌가?’ 할머니가 다시 한번 조용히 말했다. “맞아. 형식은 갖춰야 하니까 혼인신고는 필요해. 그리고 내 동생은 정말 얼마 남지 않았어. 자네 인생에 큰 부담이 될 일은 없을 걸세. 어떻게 생각하나?” “...” 할머니의 말을 들은 손태하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1억 원이라는 돈은 지금 그의 형편에서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금액이었다. 그 대가가 한 달짜리 결혼 생활이라면 결코 나쁜 조건이 아니었다. 상대는 병상에 누워 생명이 위태로운 환자이니 결혼 생활이라 해봐야 혼인신고와 형식적인 예식이 전부일 터였다. 결론적으로 시간이 지나면 두 사람의 관계는 자연스럽게 종료될 것이고 남는 건 통장에 꽂힌 1억과 한 줄짜리 혼인 기록뿐이었다. 물론 언젠가 다시 결혼하게 된다면 사별로 인한 이혼이라는 꼬리표가 걸림돌이 될 수도 있겠지만 지금 손태하에게 중요한 건 그런 미래가 아니었다. “어르신, 이 결혼... 혹시 동생분의 병세가 위중해서 마지막으로 기운을 살려보려는... 그런 의식 같은 건가요?” “눈치가 빠르네. 죽어가는 이 아이 앞에서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이제 이런 거밖에 없더군. 그깟 의식일지언정...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할머니의 입가에 허탈하고 씁쓸한 웃음이 번졌다. “근데 만약... 그게 정말 효과가 있어서 병이 호전된다면요? 예정보다 훨씬 더 오래 사시게 된다면요?” “그럴 리 없다고들 하더군. 하지만 만약 그런 기적이 일어난다면... 걱정은 말게.” 할머니는 고개를 끄덕이며 눈빛을 반짝였다. “내 동생은 자네한테 부담 주고 싶어 하는 사람이 아니야. 상태가 나아지면 바로 이혼할 거야. 그리고 만약 석 달 이상 살게 되면 내가 자네한테 4억 원을 더 얹어주지. 이 정도면 충분하겠나?” “4억 원이요?” 손태하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에게 4억 원은 평생 구경도 못 해본 돈이었다. “그래. 4억을 더 얹어줄 거야.” 할머니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 눈빛에는 뭔가 간절하고도 단단한 기대가 서려 있었다. 손태하는 한순간 고민에 잠겼다가 이내 깊은숨을 내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어르신. 그 제안... 제가 받아들이겠습니다.” 지금까지 손태하가 맡은 일 중에 이렇게 ‘억’ 소리 나는 규모는 없었다. 그랬던 만큼 고민할 시간도 없었다. ‘돈만 있으면... 어머니 모시고 큰 병원에도 갈 수 있어. 돈만 있으면... 고향에 내려가서 새장가 드는 것도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겠지. 게다가 만약 결혼 상대가 진짜로 석 달을 넘기기라도 하면... 4억이라니. 그건 말 그대로 횡재잖아.’ 현실적인 계산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 뒤 손태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고 곧바로 할머니와 계약 조건에 합의했다. ... 월요일 아침, 어느덧 약속했던 결혼식 당일이 되었다. 손태하는 신분증이랑 가족관계증명서, 그리고 기본증명서를 챙기고 서둘러 강성 제1병원 중환자실로 향했다. 며칠 전 그 할머니가 말했던 바로 그 병원이었다. 할머니는 동생이 현재 이 병원의 중환자실에 입원 중이라고 했다. 서류만 챙겨 병원으로 오면 모든 절차를 도와줄 사람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했다. 그렇게 혼인신고를 마치면 예복으로 갈아입고 병실에 들어가 간단한 결혼식을 치를 예정이었다. 의식은 병실 안에서 조용히 진행되며 사전에 섭외해 둔 사회자가 간략하게 주례까지 맡는다고 했다. 할머니는 결혼식이 끝나는 대로 1억 원이 그의 통장으로 입금될 것이라고 약속했다. 그날 아침, 손태하는 평소보다 더 철저하게 시간을 지켰다. 원래도 약속에는 꽤 신경 쓰는 편이었지만 오늘만큼은 달랐다. 1억 원이라는 금액이 그의 온 신경을 압도했다. 그는 아침 해가 막 떠오르자마자 집을 나섰고 오전 8시도 채 되지 않은 시간에 병원 중환자실 대기 공간에 도착했다. 병원 특유의 소독약 냄새가 희미하게 감돌았고 형광등 불빛 아래 차가운 플라스틱 의자에 앉은 그는 입술을 꾹 다문 채 비장한 표정으로 휴대전화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며칠 전 할머니에게 받았던 번호로 조심스레 전화를 걸었다. “어르신, 안녕하십니까. 저... 손태하입니다. 약속대로 병원에 도착했습니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 할머니의 목소리는 여전히 부드럽고 정중했다. 하지만 그 안에는 이전과는 다른 아주 미세한 떨림이 섞여 있었다. “약속 지켜줘서 고맙네. 조금만 기다리면 내가 곧 자네 있는 곳으로 내려가겠네.” “네, 알겠습니다. 곧 뵙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뒤, 손태하는 한참을 말없이 앉아 있었다. 손바닥엔 땀이 배어 있었고 등줄기를 따라선 알 수 없는 긴장과 흥분이 교차하며 흘렀다. ‘곧 내 계좌에 1억 원이 꽂히는 거야. 이런 기회는 아마 두 번 다시 없을지도 모르지.’ 그는 무의식적으로 가방을 열고 서류를 몇 번이고 꺼내 정리했다. 다만 결혼 상대가 누구인지, 나이가 많을지 적을지, 얼굴이 어떤지는 전혀 궁금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얼마 안 남은 사람’이라고 들었기에, 이 일을 철저히 ‘업무’라고 생각했다. 그에게 지금 중요한 건 오직 하나, 약속된 돈을 정확히 받고 일을 깔끔하게 끝내는 것이었다. 시간은 유독 느리게 흘렀다. 손태하는 병원 복도 한쪽 대기 의자에 앉아 무심히 시계를 들여다보다가, 어느새 20분 가까이 흘렀다는 걸 깨달았다. 그때 저 멀리서 엘리베이터 도착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더니 대여섯 명이 우르르 내렸다. 그중에서도 익숙한 할머니의 얼굴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어르신, 안녕하세요.” 손태하는 곧장 걸어오는 할머니를 발견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다가갔다. 그러자 할머니 뒤를 따르던 건장한 청년들도 손태하에게 시선을 모았다. “다시 만나니 반갑네. 시간도 딱 맞춰 왔군. 먼 길 오느라 고생했네. 부탁했던 서류들은 잘 챙겨왔을까?” “네, 빠짐없이 챙겨왔습니다.” 손태하는 가방을 열어 신분증과 서류를 꺼내 보였다. 그러자 할머니가 옆으로 고개를 살짝 돌리며 말했다. “장 비서, 혼인신고 관련해서 처리 좀 해줘.” “예, 민 회장님.” 뜻밖에도 할머니는 ‘회장님’으로 불렸다. 할머니의 비서인 장도훈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곧바로 들고 있던 노트북을 꺼내 들었다. 이어 손태하에게 다가가 가족관계증명서 등 필요한 서류를 받았다. 그리고 병원 흰 벽을 배경으로 손태하의 반신 사진을 간단히 촬영한 뒤, 위탁인 서명을 받고 서류를 스캔하는 등 필요한 절차를 빠르게 처리했다. “회장님, 잠시 구청에 다녀오겠습니다.” 장도훈은 서류를 챙겨 들고 서둘러 병원을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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