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7화
김준이 낮게 읊조리듯 말했다.
“마마,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그때 제가 마마의 제의를 거절한 것은, 이미 팔천 냥을 다른 데에 써 버렸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천 냥조차 내기가 어려운 형편입니다.”
“자네... 아주 좋아!”
주석호의 얼굴이 싸늘히 굳어졌다.
그는 이어 사방을 향해 호통쳤다.
“뭘 그리들 구경이냐! 썩 물러가지 못할까!”
순식간에 둘러서 있던 백성들은 허겁지겁 흩어졌다.
하권승, 사정남, 김준 세 가주도 이 틈을 타 하나둘 자리를 빠져나갔다.
하권승은 남보다 한발 앞서 달아나 이미 자취조차 사라졌고, 사정남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그의 뒤를 따랐다.
김준은 맨 마지막에야 천천히 물러났는데, 마차에 올라탄 뒤에는 바깥에서 보이던 노쇠한 기색이 감쪽같이 사라지고 눈빛마저 서늘하게 변하였다.
사람들이 모두 물러가고 도씨 집안 사람들만 남자, 주석호는 굳은 얼굴로 도진유를 향해 말했다.
“도 가주,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안으로 들어오게.”
“마마, 무슨 단서라도 잡으셨습니까?”
도진유가 긴장한 기색으로 묻자, 주석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가격을 낮출 수 있다고 했을 때, 하 가주와 사 가주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리며 거부의 뜻을 보였네. 이는 그들이 마음속 깊이 나와 더 얽히는 것을 꺼린다는 증거지. 그러나 김 가주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네.”
“김 가주...”
도진유의 얼굴에 분노가 스쳤다.
“마마, 도씨 가문과 김씨 가문은 예전부터 세력 다툼으로 충돌이 있었습니다.”
주석호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김씨 일문이 도혁을 노렸다는 것도 납득할 만했다.
“허나 아직은 추측일 뿐,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가 남아 있네.”
주석호의 눈빛이 깊어졌다.
“그자들이 어찌하여 굳이 내게 누명을 씌우려 하는지, 또한 그 군영의 화살을 어디서 얻었는지. 설마 안정후가 뒤에서 사주한 것이란 말인가...”
그 생각이 든 순간, 주석호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나 혹시 줄곧 주강현의 감시 아래 있었던 거야? 숙주의 세력과 가까이하지 말라는 경고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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