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25화
김시아는 옆에서 지세원과 공주희 사이의 익숙한 분위기를 지켜보고 있었다.
지세원은 아무 말 없이 공주희에게 우유를 건네기 전, 먼저 뚜껑을 열어줬다.
공주희도 너무 자연스럽게 받아 들고는 한 모금씩 마셨다.
그의 사무실 냉장고에는 언제든 공주희를 위해 신선한 우유가 몇 병씩 비치돼 있었다.
뚜껑을 몇 번이나 대신 열어줬으면 두 사람 사이가 이렇게까지 익숙해진 걸까.
같은 방에 셋이 있었는데 김시아는 단 한 번도 그 틈에 끼어들 수가 없었다.
김시아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형식적으로라도 한 번쯤 마실 거냐고 물어봐 줄 법도 한데 지세원은 공주희에게만 우유를 챙겼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김시아는 깨달았다.
정작 지세원 본인도 공주희를 얼마나 아끼고 있는지 모를 것이다.
지세원에게 한 소리 들은 공주희는 금세 움츠러들어 고개를 푹 숙인 채 자신의 존재를 최대한 줄이려는 듯 조용히 우유만 마시고 있었다.
지세원이 우유를 건네고 돌아선 뒤 김시아를 보고는 물었다.
“더 할 얘기가 있으신가요?”
김시아는 최대한 태연한 표정으로 입꼬리를 올렸다.
승부를 내려놓은 사람처럼 체면을 유지하려 했지만 지세원의 모습을 본 순간 마음 한구석이 묘하게 저릿했다.
오늘 지세원은 땀 때문에 머리까지 헝클어져 늘 단정했던 모습과는 전혀 달랐다.
그동안 자신에게 보여준 공손하고 거리 두는 태도는 어쩌면 진짜 지세원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다.
김시아가 조심스레 말했다.
“곧 점심시간이잖아요. 혹시 같이 식사하실래요?”
지세원은 재킷 단추를 풀며 바로 고개를 저었다.
“오늘은 시간이 없습니다. 다음에 식사하죠.”
“네. 그럼 연락드릴게요. 저는 이만 가볼게요.”
이 정도로 선을 그었는데 더 머무르는 것도 민망했다.
김시아는 소파에서 고개 숙여 우유를 마시는 공주희를 잠시 바라보다가 아쉬움 섞인 눈길로 자리를 떠났다.
사실 김시아도 알고 있었다. 지세원이 자신에게 감정이 없다는 걸.
애초에 두 사람이 연락하게 된 것도 양쪽 부모의 결혼 압박을 피하고자 연인인 척 연기했을 뿐이었다.

Locked chapters
Download the Webfic App to unlock even more exciting content
Turn on the phone camera to scan directly, or copy the link and open it in your mobile browser
Click to copy lin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