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69화
공주희는 김성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동시에 머릿속에서 기억을 더듬기 시작했다. 외할머니 댁에서 보냈던 그 여름방학은 아마 8, 9살 무렵이었을 것이다. 엄마의 얘기를 들어보니 흐릿하게나마 떠오르는 장면들이 있었다.
외할머니 댁 옆에 살던 할머니의 손자는 그때 4, 5살쯤 되었는데 아직 초등학교도 입학 전이었다. 삐쩍 마른 데다가 얼굴도 하얗고 다른 애들처럼 들판에서 뛰어다니며 흙투성이가 되는 걸 싫어했다. 괜히 혼자 따로 노는 것처럼 보였던 아이였다.
한 번은 동네 남자애들 몇이 장난을 치겠다며 그 아이에게 흙을 던졌다. 옷이 더러워지자 아이는 참지 않고 맞서 싸웠다. 덩치 큰 애들에게 엎어 눌려 흙투성이가 된 모습이 안쓰러워서 공주희가 그쪽으로 뛰어가 어른들한테 일러바칠 거라며 호통치자 그 남자애들은 잽싸게 도망갔었다. 그날 이후부터 그 아이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공주희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공주희는 여름방학 숙제도 챙겨갔는데 외할머니 댁 마당에서 정해진 시간마다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그때마다 그 아이는 꼭 작은 의자를 끌고 와 옆에 붙어 앉았다. 책에 적힌 글자를 가리키며 어떻게 읽는 거냐고 묻기도 했다.
어렴풋한 장면들이 이어지다가 공주희는 두 번째 해에 외할머니가 병으로 돌아가셨다는 사실도 떠올렸다. 고향집을 돌봐줄 사람이 없어지자 엄마는 청소해 줄 사람을 따로 구했고, 그 뒤 공주희도 더는 방학을 그곳에서 보내지 않았다.
엄마가 갑자기 왜 이 이야기를 꺼낸 건지 알 수 없어 공주희는 휴대폰을 귀에 댄 채 조심스럽게 물었다.
“갑자기 그 얘기는 왜? 기억은 좀 나.”
김성미의 목소리는 한껏 들떠 있었다.
“아이고, 그 할머니 딸이랑 엄마가 어릴 때 얼마나 붙어 다닌 줄 아니? 학교도 같이 다녔어. 그때 그 친구가 옆 반 반장 좋아해서 맨날 나 끌고 화장실 가는 척하면서 그쪽 복도 지나가곤 했어. 그러다 서로 결혼하고 바빠지고 네 외할머니 돌아가신 뒤로는 고향 갈 일도 거의 없어서 연락이 다 끊겼지....”
옛 기억을 줄줄이 꺼내던 김성미는 오랜만에

Locked chapters
Download the Webfic App to unlock even more exciting content
Turn on the phone camera to scan directly, or copy the link and open it in your mobile browser
Click to copy lin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