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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박씨 가문 사람들은 모두 하얗고 피부가 좋은 편인데 유독 임지효만 검고 통통했다. 그럼에도 다들 아무런 의심 없이 늘 임지효를 예뻐했다. 이제 박아윤을 보고 나서야 비로소 친혈육의 의미를 깨달았다. 박아윤은 하얗고 뽀얀 피부에 정교한 이목구비를 지녔다. 표정은 큰오빠 박정우와 똑같이 차분했고 대충 포니테일을 묶은 채 낡은 자전거를 타고 있지만 우아한 분위기가 차 넘쳤다. “임지효가 널 어떻게 욕했는지 다 잊었어? 변태 같아서 털 달린 동물만 보면 꼼짝 못 한다고, 토끼 키우는 것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다고 저격해대는데 쟤라고 다를 것 같아?” 박동하는 거침없이 찬물을 끼얹었고 다른 두 사람도 침묵했다. 모두가 애지중지 키워온 여동생인데 떠날 때 갖은 험한 말로 비수를 꽂은 임지효, 그들의 마음속에 평생 잊지 못할 깊은 상처로 남았다. 그렇다면 누가 감히 박아윤은 착할 거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 그때 가서 또다시 엄마 유선영을 몸져눕게 하는 건 아닐까? “일단 며칠만 지켜보자.” 박정우가 명령했다. 한편 박아윤은 뒤에서 벌어진 일을 전혀 알지 못했다. 별장 구역에는 버스 정류장이 하나뿐이라 놓치면 두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그녀는 오후 표를 사서 한 치라도 늦을 수 없다. 하지만 서두를수록 일은 꼬이는 법. 모퉁이를 돌던 순간, 갑자기 맞은편에서 검은색 마이바흐가 질주해왔다. 박아윤은 당황하여 급정거했고 그대로 땅에 넘어졌다. 마이바흐는 끼익 소리를 내며 멈췄다. 운전사가 황급히 차에서 내려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이봐! 어린 나이에 목숨 걸고 사기 칠 속셈이야?” 날씨가 더워 박아윤은 얇은 면바지를 입고 있었는데 넘어지면서 무릎이 까이고 하얀 피부 위에 넓게 찰과상이 생겼다. 그녀는 대충 입김을 불고 자전거를 일으켜 세우며 운전사를 노려보았다. 곧이어 옆에 놓인 속도 제한 표시판을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 시속 40km 구간인데 그쪽은 방금 105km까지 올렸어요. 대체 누가 누구한테 사기 친다고 하는 거죠?” 운전사는 그녀가 자신의 차 속도까지 정확하게 말할 줄은 몰랐던지 잠시 말문이 막혔다. 그는 본능적으로 차 안을 흘끗 보았다. 과속 운전은 팩트였다. 차 안의 사람이 임씨 가문에 혼사에 관해 얘기 나누러 가는 길이라 당연히 과속 운전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때 차창이 내려지고 뒷좌석의 남자가 세상 모두를 홀릴 듯한 완벽한 얼굴을 드러냈다. 남자의 피부는 그다지 하얀 편은 아니지만 뚜렷한 이목구비와 날카로운 턱선 덕분에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또한 눈썹 가까이 작은 흉터가 차갑고 냉철한 이미지를 선사했다. ‘혹시 귀요미?' 그는 조금 초라해 보이는 소녀를 바라보며 왠지 모를 친근감이 느껴졌지만 이내 그 생각을 떨쳐버렸다. 지금 그가 찾고 있는 건 임씨 가문의 따님이자 여기 사는 사람이니 아무리 보잘것없어도 공유자전거를 타고 다닐 신세는 아닐 테니까. 이 소녀는 아무래도 여느 집 어린 가정부일 터였다. 강민건은 지갑에서 돈뭉치를 꺼내 그녀에게 건네며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 “미안한데 우리가 지금 시간이 얼마 없거든. 이 돈으로 근처 병원에 가서 상처 치료받아.” 치료비라곤 했으나 백만 원에 달하는 돈뭉치는 오히려 입막음용 같았다. 박아윤은 눈을 깜빡이며 진지하게 말했다. “이 돈은 벌금 내는 데나 쓰세요. 정신 차리고 착하게 살아요 아저씨!” 말을 마친 그녀가 자전거를 타고 떠나갔다. “...” 강민건은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방금 나 뭐라고 불렀지?” 기사는 헛기침하며 감히 대답하지 못했다. 강씨 가문은 경운시에서 베일에 싸인 재벌가 박씨 가문을 제외하고 사실상 일인자였다. 눈앞의 이 젊은 남자는 겨우 26살이고 강씨 가문의 공인된 후계자이자 미래의 경운시 갑부이다. 그에게 아부하려는 사람들은 이곳에서 유스까지 줄을 설 지경이다. 그런 그에게 아저씨라니? 그토록 늙어 보이는 걸까? 강민건은 돈뭉치를 좌석에 내던지고 실소를 터트렸다. ‘얌전한 줄 알았는데 애가 참 거침이 없네.’ 한편 그는 스치는 인연이라고 좀 전의 ‘어린 가정부’를 마음에 두지 않았다. 기사더러 얼른 임씨 가문으로 출발하라고 지시하며 초조하게 손에 낀 반지를 돌렸다. ‘시간이 꽤 오래 흘렀는데 귀요미가 아직도 날 기억할 수 있을까?’ 기사가 백미러를 힐긋 쳐다봤는데 뒷좌석의 강민건이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번졌다. ‘강씨 가문 사람들 죄다 순정파인 건 인정해줘야 한다니까.’ 수년 동안 강민건 곁에는 여자가 없었다. 그는 11년 전 자신을 구해준 은인을 계속해서 찾아다녔다. 얼마 전, 마침내 소식이 들려왔는데 당시의 어린 소녀가 임씨 가문의 따님이라고 했다. 강씨 가문은 거금을 들여서 철저하게 준비한 끝에 ‘예비 신부’를 맞이할 일만 남았다. 완벽남 강민건 역시 어린 시절 자신을 구해준 소녀가, 이렇게 오랫동안 기다려온 소녀가 과연 어떤 모습일지 기대하기 시작했다. 문득 마이바흐와 거의 형태를 알아볼 수 없는 차가 스쳐 지나갔다. 차 안에서 박씨 가문의 세 형제는 무전기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박서준이 먼저 입을 열었다. “봐봐, 내가 뭐랬어? 우리 동생 돈만 밝히는 애가 아니라니까. 아까 그 기세 좀 봐. 외제 차에 돈다발까지 내밀었는데 거들떠보지도 않잖아. 딱 나네 뭐. 부귀영화에 흔들리지 않고 기세에 굽히지 않는 태도 말이야.” 박정우도 박아윤의 태도에 매우 만족했지만 그보다 걱정이 앞섰다. “무릎이 다 까지고도 치료 안 받네? 나중에 감염되면 어떡하지? 동하야, 네가 가서 약 좀 사 와.” 박동하는 콧방귀를 뀌었지만 결국 순순히 방향을 틀었다. “왜 내가 가야 하는데?” 박정우가 답했다. “나랑 서준이는 아윤이 쫓아가야지.” “...” 박아윤은 서둘러 정류장에 도착하여 마지막 순간에 버스에 올라탔다. 자리에 앉자마자 차창 밖에서 자동차 경적이 울렸는데 고개를 숙여 보니 낡아빠진 소형 세단 두 대가 버스로 계속해서 달려오고 있었다. 운전석의 사람들은 고개를 내밀어 무언가 외치는 듯했다. 바람 소리가 너무 커서 제대로 들리지 않았고 박아윤은 그저 시끄럽다고 느끼며 거침없이 창문을 닫았다. 그러고는 배낭에서 의학 서적을 꺼내 집중해서 읽기 시작했다. 그 시각. 강민건도 임씨 저택에 도착했다. 임진석과 김하정은 황급히 나와 그를 맞이했다. 임씨 가문은 작고 보잘것없는 집안이다. 강씨 가문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더군다나 강민건은 차기 후계자로서 친히 임씨 저택에 찾아왔다. 뒤따른 비서가 양손에 물건들을 가득 들고 있었다. 임진석은 최근 자신의 행동을 빠르게 되짚어보았는데 강씨 가문의 심기를 건드린 적도 없고 불법적인 일을 저지른 적도 없었다. 그가 마침내 질문을 건넸다. “강 대표가 여긴 어쩐 일로?” 강민건은 임진석을 바라보며 매우 공손하게 말했다. “11년 전, 여주에서 이 집 따님이 제 목숨을 구해줬습니다. 하여 오늘 청혼하러 왔어요. 따님께서 저랑 결혼해주실 수 있을는지...” “???” 임진석과 김하정의 시선이 임지효에게 쏠렸다. 임지효도 비싼 양복을 입은 남자 앞에서 충격에 휩싸였다. 그녀는 하늘 높이 날아갈 것만 같았다. 이제 막 임씨 가문으로 돌아왔는데 이런 횡재라니! 박씨 가문 사람들은 인물이 출중하긴 하나 찢어질 듯 가난하니 무슨 소용이 있을까? 다만 눈앞의 이 남자는 달랐다. 재벌가의 우아한 분위기가 차 넘치고 TV에 나오는 아이돌보다 백 배는 더 잘생겨 보였다. 그녀는 반드시 이 기회를 거머쥐어야 한다. 임진석이 말하기도 전에 임지효가 선뜻 나섰다. “민건 오빠, 그때 그 일은 수고라 할 것도 없는데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을 줄은 몰랐어요.” 강민건은 임진석과 김하정의 뒤에 서 있는 임지효를 바라보았는데 어린 시절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그는 떠보듯이 조심스럽게 불러 보았다. “귀요미?” 이에 임지효가 손가락을 꽉 쥐고 수줍은 듯 몸을 비틀었다. “저 이제 다 컸는데 아직도 그렇게 부르면 어떡해요!” 강민건의 눈빛이 조금 누그러졌지만 마음속에는 여전히 무언가 걸리는 듯했다. 어린 시절의 귀요미는 이렇지 않았다. 가련해 보이는 외모와 달리 에너지가 타고났고 매사에 거침없었으며 그 당시 15살이던 강민건을 아무렇지도 않게 창문 밖으로 내던졌다. 마치... 문득 뇌리에 오늘 길에서 만났던 그 소녀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오빠, 무슨 생각 해요?” 임지효가 곁으로 다가오더니 제법 친한 척하며 그의 팔짱을 꼈다. 강민건은 누군가 너무 가까이 다가오는 것이 불편했다. 그는 본능적으로 피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네 어린 시절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어.” 임지효는 손이 허공을 가르자 눈빛이 흔들렸지만 이내 웃음을 터트리며 애교 조로 말했다. “어릴 때 일은 너무 오래전이라 기억나지도 않아요.” 박씨 가문에서 네 명의 오빠들 모두 이 말에 넘어갔다. 그녀는 남자들의 마음을 어떻게 사로잡아야 하는지 누구보다 잘 안다. 하지만 강민건은 눈살을 찌푸렸다. “오늘 좀 갑작스러웠던 것 같아. 나중에 부모님더러 직접 인사드리러 오라고 할게.” 말을 마친 그는 곧장 차에 올랐다. 손에 쥔 상자를 만지작거리며 눈빛이 서서히 어두워졌다. 곧이어 비서에게 지시했다. “가서 임씨 가문 조사해봐.” 뒤에 있던 임지효가 쫓아오려 했지만 임진석이 말렸다. 그녀는 살짝 짜증이 났다. “왜 그래요, 아빠! 이렇게 좋은 기회를 놓치면 나중에 언제 다시 차려질지 모른다고요! 무려 강씨 가문인데...” 임진석이 미간을 찌푸렸다. “강씨 가문이라서 서두르지 말라는 거야. 부모님더러 직접 오시라고 하겠다는데 네가 이렇게 조급해하면 뭐가 돼? 민건이 네가 구한 건 맞니? 설마 아윤이가...”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임지효가 표정이 돌변했다. “아윤이, 아윤이! 아빠는 맨날 아윤이 타령이에요? 좋은 일은 죄다 박아윤한테 돌리는 거냐고요? 내가 그렇게 싫으면 애초에 낳지를 말았어야죠!” 임지효는 제 방으로 뛰쳐 갔고 김하정도 임진석을 째려봤다. “다 떠난 마당에 꼭 그 재수 없는 년을 언급해서 제 딸 얼굴에 먹칠해야겠어요? 지효야말로 우리 친딸이라니까. 대체 왜 이렇게 아윤이 편만 들어요 당신은?” 임진석은 정신을 차리고 약간 후회가 밀려왔다. 여주시는 박씨 가문이 사는 곳이자 임지효가 전에 살던 곳이니 그녀가 임씨 가문으로 찾아오기 전에 강민건을 구한 거겠지. 이제 드디어 임씨 가문에 보답이 돌아왔다. 강씨 가문과의 정략결혼은 박아윤이 학교에서 받은 여러 개 상장보다 훨씬 더 명예로운 일이다. 그러니 임진석은 당연히 자신의 친딸을 아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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