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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경매장의 룸들은 이동이 가능한 가림막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경매에 참여한 사람들 중 대부분이 신분이 높거나 지위가 높은 자들이었고, 그 외에 약간의 돈을 들여 이곳에 기회를 잡으러 온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주최 측도 그런 사람들에게 기꺼이 기회를 제공했다. 그렇기 때문에 만약 양측 모두 원한다면 가림막을 없앨 수도 있었다. 잠깐의 적막 이후 옆 방에서 가림막을 두르렸지만 최지은은 그냥 무시해 버렸다. 그러나 배아현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가림막의 자물쇠를 열어 살짝 틈을 냈다. 최지은은 눈썹을 올리며 옆 방을 바라보았고 마침 그 틈 사이로 한수혁과 눈이 마주쳤다. 한수혁은 언짢은 듯이 굳은 표정을 하고 있었고 최지은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평온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마치 낯선 사람을 본 것처럼 덤덤히 시선을 옮겨 배아현에게 말했다. “아현아, 얼른 와서 앉아. 경매품 봐야지.” 배아현은 입꼬리를 씩 올리며 기분 좋은 얼굴로 말했다. “어떤 똥이길래 그 똥까지 빼앗아 먹으려고 하는 사람이 있는지 조금 궁금했을 뿐이야.” 최지은의 소꿉친구 배아현은 몇 년 전 최지은이 남자 한 명을 위해 도성으로 돌아가는 걸 포기했다는 걸 알고는 홧김에 그녀와 연락을 끊었었다. 그 뒤로 두 사람은 화해했으나 배아현은 한수혁을 만나보고 싶은 생각 따위는 전혀 없었다. 즉 오늘 배아현은 한수혁과 처음 만났다. “...” 배아현의 말을 들으니 어쩐지 그녀까지 같이 욕하는 것만 같았다. 한수혁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는 음침한 눈빛으로 최지은을 바라보다가 그녀에게 다가가려고 했다. 그러나 배아현이 차갑게 코웃음 치면서 손을 뻗어 그를 가로막았고 룸 안의 어두운 곳에 서 있던 경호원이 배아현을 보호하려고 나섰다. “이룸은 내가 예약했어요. 역겨운 것들이 마음대로 들어올 수 있는 곳이 아니에요.” 한수혁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는 소파 위에 앉아 있는 최지은을 응시했다. “최지은, 이리 와.” 최지은이 입꼬리를 올리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내가 거기에 가면 네 그 예쁜 애인이 속상해할 텐데? 나는 너희 둘 방해할 생각 없으니까 그냥 여기 있을게.” 진서연은 얼굴이 창백해지면서 몸이 굳었다. 한수혁 또한 안색이 좋지 않았다. 그는 어두워진 얼굴로 최지은을 빤히 바라보았다. 배아현은 경호원에게 가림막을 닫으라고 했고 한수혁이 차가운 얼굴로 손을 들어 경호원을 막았다. 분위기가 한층 더 험악해졌다. 한수혁은 최지은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말했다. “정말 안 올 거야?” 그것은 화를 내기 전의 징조였다. 최지은은 고개를 끄덕였다. “응.” 예전에 최지은은 한수혁이 화를 낼 것 같으면 늘 그를 달래주었다. 괜히 싸워봤자 둘 다 감정 소모만 하고 힘들 테니 말이다. 그러나 이젠 한수혁이 그녀의 앞에서 화가 나서 죽는다고 해도 최지은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을 것이다. “사모님, 저희 아까 농담한 거예요. 한 대표님께서는 곧 사모님과 결혼하실 텐데 그럴 리가...” 조금 전까지 진심으로 한수혁에게 어떻게 두 명의 여자와 평화롭게 지내는지를 묻던 남자가 한수혁을 대신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남자가 입을 열자마자 배아현이 그의 말을 잘랐다. “그 악취 나는 입 좀 다물래요? 개소리 좀 하지 말아요. 그리고 우리 지은이는 아직 결혼하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저런 인간 말종이랑 엮지 말아요.” 배아현의 목소리는 작지 않았고 그녀의 말에 다른 룸들까지 전부 조용해졌다. 남자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러나 그는 배아현 곁에 있는 경호원 때문에 감히 뭐라고 할 수가 없었다. 남자는 경호원들이 입고 있는 유니폼의 로고를 보았다. 그 경호원들 모두 국내 최고 경호 업체 사람들이었다. 그들을 고용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수억 원이 필요했다. 대단한 집안의 사람이 아니라면 그 정도 액수를 들여 경호원을 고용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최지은은 한수혁과 함께 창업하여 자수성가한 평범한 집안의 딸 아닌가? 어떻게 저렇게 대단한 가문의 딸을 알고 있는 것일까? 심지어 두 사람은 사이가 매우 절친한 듯했다. 옆에서 도우려던 사람들 모두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진서연은 마치 엄청난 모욕을 당한 사람처럼 눈시울이 빨개진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표님, 저 때문에 지은 언니랑 싸우지 마세요. 괜히 다른 사람들에게 웃음거리만 될 거예요. 전부 제 잘못이에요. 제가 이곳에 오지 말았어야 해요. 저 지금 당장 떠날게요.” 한수혁은 미간을 찌푸렸고 가림막을 쥔 그의 손에 살짝 힘이 풀렸다. 최지은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수혁의 살짝 흔들렸던 표정이 순식간에 달라졌다. 그는 최지은이 사람들 앞에서 자신에게 망신을 주지 않을 거라고 믿었다. 그리고 그는 최지은이 슬퍼하지 않도록 진서연을 이곳에서 내보낼 것이다. 그러나 그의 앞에 도착한 최지은은 한수혁의 앞에서 손을 들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가림막을 닫은 뒤 자물쇠까지 잠가 그의 시선을 완전히 차단했다. “최지은!” 옆 방에서 한수혁의 화가 난 목소리가 들려왔다. 최지은은 덤덤한 표정으로 다시 자리에 앉았고, 배아현은 속 시원한 표정으로 최지은의 옆으로 걸어가서 앉았다. “나는 네가 저 사람한테 가는 줄 알았어.” 최지은은 무심한 얼굴로 경매장 쪽을 바라보았다. “내가 그렇게 미친 사람 같아?” 배아현은 최지은의 기분이 살짝 다운된 것 같자 곁으로 다가가서 최지은의 팔을 안고 그녀의 뺨에 자기 뺨을 가져다 댔다. “아니. 넌 그냥 몇 년 동안 눈이 멀었던 것뿐이지.” “...” 최지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경매는 몇 분 뒤 시작할 텐데 옆 룸은 여전히 조용해지지 않았다. 진서연이 작은 목소리로 훌쩍댔다. “전부 제 잘못이에요. 저 때문에 자꾸 대표님과 지은 언니가 싸우는 것 같아요. 제가 직접 지은 언니를 찾아가서 사과할게요. 그리고 저랑 대표님이 아무 사이 아니라고 해명할게요.” 다른 사람들은 감히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한수혁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럴 필요 없어.” 경매 예고가 시작되었고 진서연이 훌쩍거리는 소리는 계속해 들려왔다. 결국 참지 못한 주최 측에서 사람을 보내 한수혁이 있는 룸의 문을 두드렸다. “한 대표님, 고객님들께서 이룸에서 들리는 소리가 너무 크다고 컴플레인을 거셨습니다. 그러니 조금만 조용히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부디 오늘 마음에 드는 물품을 얻고 가시길 바랍니다.” 한수혁의 안색이 좋지 않았다. 진서연은 그대로 얼어붙었다. 조금 전에는 최지은에게 모욕을 당해서 감히 찍소리도 못했는데 이제는 별 볼 일 없는 직원까지 찾아와 조용히 하라고 경고하니 화가 났다. “우리 룸만 소리를 내는 건 아니잖아요!” 누군가 맞장구를 쳤다. “혹시 그 사람 이 기회에 우리 한 대표님과 연을 맺으려고 일부러 그러는 거 아닌가요? 그렇다면 그 사람에게 기회를 주겠다고 하세요. 그쪽 룸 비용은 우리 한 대표님께서 낼 테니 직접 사과하러 오면 이 일 그냥 넘어갈 거라고 전해주세요.” 그 소리를 최지은도 들었다. 최지은은 자기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한수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혁운이 상장한 뒤로 한수혁의 주변에는 늘 알랑거리는 사람들이 존재했다. 건방이 하늘을 찌르는 사람들이니 언젠가는 화를 입게 될 것이다. 주최 측 직원은 그들을 조금 더 설득한 뒤 자리를 떴다. 한수혁은 그나마 이성적이었기에 그 뒤로 그의 룸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다. 대신 한수혁은 방법을 바꿨다. 그는 일부러 최지은과 배아현을 겨냥해 두 사람이 패들을 들 때마다 따라서 패들을 들어 가격을 높였다. 최지은이 몇 번이나 패들을 들었던 경매품들 모두 한수혁이 낙찰받았다. 한수혁은 꽤 즐거웠던 것인지 최지은에게 메시지를 보내서 그녀를 도발했다. [더 마음에 드는 거 있어? 내가 낙찰받아서 줄게.] 최지은이 답장을 보냈다. [네가 아까 낙찰받은 쓰레기 중에 마음에 드는 건 없어서 말이야.] 한수혁이 말했다. [일부러 그런 거야?] 최지은은 답장을 보내지 않고 또다시 패들을 들었다. 이번에 한수혁은 패들을 들지 않았고 최지은은 마음에 드는 걸 낙찰받았다. 언니에게 굉장히 잘 어울릴 것 같은 팔찌였다. 최지은은 도성으로 돌아갈 때 그것을 선물로 챙겨갈 생각이었다. 한수혁이 말했다. [내가 또 패들을 들 줄 알았지?] 최지은이 답장을 보냈다. [안 들어줘서 고마워. 덕분에 싼 가격에 마음에 드는 걸 낙찰받았어.] 한수혁은 이번에 답장을 보내지 않았다. 최지은은 화가 나서 차가운 얼굴로 씩씩대고 있을 한수혁의 모습이 상상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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