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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4화

나는 저도 모르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마 박진섭이 나를 이렇게까지 하는 건 사랑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하지만... 그 생각이 막 떠오르자마자 나는 재빨리 부정했다. 마치 이 대답을 확실히 알게 되면, 이유 모를 불안감이 끝없이 밀려올 것 같았고, 그 뒤에 무슨 큰 사건이 벌어질지, 나조차 알 수 없을 것 같았다. 김경애는 그 결과를 확인하고 박진섭을 한참 동안 말없이 바라보았다. “그런 거였구나... 지연이는 정말 착한 아이야. 다만, 내 손자가 사람 보는 눈을 가지지 못해서... 오히려 박 대표가 지연이를 위해 이렇게까지 하다니. 그때의 혼사는 잘못된 게 분명해.” 김경애가 한숨을 내쉬었다. “박 대표가 지연이 때문에 이러는 거라면, 이제 많은 일들을 터놓고 얘기할 수 있겠어. 지연이는 그렇게 비참하게 죽었고, 또 뱃속의 아이까지 그렇게 꺼내져 버렸지. 이 살인자는 정말 죄가 아주 커. 그러니 나는 결코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 그동안은 젊은 사람들에게 일을 맡겼지만, 내가 아무 능력도 없어서 그들에게 맡긴 건 아니거든.” 김경애는 이렇게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었다. “나는 지연이를 위해 반드시 진실을 되찾아 줄 거야. 상대가 강씨 가문이라고 해도 말이야.” 박진섭은 송씨 가문까지 개입했다면 어떻게 하겠냐는 질문을 하지 않았다. 나는 박진섭이 이미 마음속으로 그 답을 알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김경애가 아무리 나를 아껴도, 송시후는 김경애의 혈육인 손자다. 김경애가 20여 년간 정성 들여 키운 후계자다. 송시후에게 실망할 수는 있어도, 나의 일 때문에 실제로 손을 쓰지는 않을 것이다. 박진섭이 김경애와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송시후가 들어왔다. 임준호가 이 사실을 알려주자, 박진섭은 아무 말 없이 김경애의 반응을 기다렸다. 김경애는 잠시 망설이다 송시후를 들이도록 했다. 곧 정장을 차려입은 송시후가 다소 초조한 모습으로 뛰어 들왔다. 송시후는 김경애와 박진섭을 보고 잠시 경계하는 듯하더니 김경애 앞에서 허리를 숙였다. “할머니, 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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