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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우리가 도착했을 때 한 남자가 허둥지둥 도망치는 모습을 목격했다. 옆모습을 보고 진시혁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문득 떠올랐다. 과거 어머니의 기일마다 그와 함께 묘소를 찾았다는 사실을. 그런데 송연아와 불분명한 관계를 맺은 뒤로는 더 이상 나와 함께 오지 않았다. 지상 그룹이 인수된 후 진시혁은 진씨 집안에서 쫓겨났다고 들었다. 며칠 전에도 나를 찾아오려 했지만 문앞에서 제지당했다. 그 후로는 만나지 못했는데 어머니 기일에 진시혁이 찾아와 꽃을 놓고 갈 줄이야. 바닥에 놓인 싱그러운 백합 꽃다발을 차갑게 치워버리고 새로 산 꽃을 올려놓았다. 진시혁 같은 더러운 인간은 어머니 무덤을 더럽힐 자격도 없었다. 사진 속 다정한 여인을 바라보니 눈물이 절로 흘러내렸다. 무릎을 꿇고 묘비를 꼭 껴안은 채 지난 몇 년간의 일을 엄마한테 털어놓았다. 윌리엄은 예나를 안고 조용히 내 곁을 지켰다. 내가 실컷 울고 난 뒤에야 윌리엄은 나를 따라 어머니 무덤 앞에서 몇 번 절을 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앞으로 주희 잘 챙길게요.” 말을 마친 윌리엄이 우는 나를 일으켜 세우고 눈물을 닦아 주며 손을 잡은 채 집으로 데려갔다. 묘지를 떠나기 전 다투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를 따라 돌아보니 한 여자가 아이의 손을 잡은 채 남자를 향해 소리치고 있었다. “진시혁, 그 여자는 결혼까지 했는데 왜 이제 와서 애틋한 척이야? 나와 나경이야말로 당신 아내고 자식이야. 우리를 챙겨야지!” “송연아, 네가 나를 속이지 않았다면 내가 너와 침대에서 뒹굴었겠어? 이런 망할 것 때문에 주희를 놓칠 일도 없었겠지!” 송연아는 비명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우리 딸을 그런 식으로 말해? 진시혁, 넌 인간도 아니야!” 하지만 이내 진시혁이 송연아를 발로 찼다. “너라고 다를 줄 알아? 송연아, 이 애가 내 자식이 맞기는 해? 난 앞으로 여기서 주희 대신 어머님 돌볼 테니까 다시는 오지 마.” 윌리엄이 나를 차에 태웠기에 뒷말은 더 들을 수 없었다. 나는 한숨을 쉬며 묘지 관리인에게 연락해 며칠 뒤 어머니 유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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