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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메시지가 전송된 순간, 화면 상단에 바로 뜨는 문구. [상대방이 입력 중...] 마치 상대는 오래전부터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답장을 보냈다. [네 뜻대로 아을리 해안에서 기다릴게. 날 실망시키지 마.] 간결하고도 단호한 답장을 본 성나정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지만 마음은 끝없이 메말라 허무했다. 참 우스웠다. 사람들에게 버림받고 바닥까지 추락한 순간 그녀에게 손을 내밀어준 유일한 사람은 어린 시절 내내 원수처럼 싸웠던 그 남자였다. 코앞에서 ‘음흉하고 교활한 놈’이라고 욕하던 남자를 지금은 복수 계획의 유일한 공범으로 삼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윽고 휴대폰을 끄자 거대한 피로가 물처럼 밀려와 온몸을 덮쳤다. 특히 유하준이 거칠게 들어온 자리가 뜨겁게 쑤셨다. 그날 밤, 성나정은 내내 뒤척이며 제대로 잠들지 못했다. 기괴하고 뒤섞인 꿈속에선 결혼식 날의 소란이 끊임없이 들려왔다. 눈을 뜨니 창밖은 잿빛으로 흐려 있었다. 그녀는 눈가의 말라붙은 눈물을 닦고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몸을 일으켜 간단히 잠자리를 정리한 뒤, 목덜미와 쇄골에 남은 지난밤의 흔적을 가리기 위해 목이 긴 스웨터를 입고 하얗게 질린 얼굴로 문을 나섰다. 오늘은 어머니, 김나희의 기일이었다. 묘지는 늘 걷히지 않는 냉기가 감돌았다. 성나정은 순백의 백합 한 다발을 어머니 묘 앞에 내려놓았다. 백합은 생전 어머니가 가장 좋아하던 꽃이었다. 그녀는 쪼그려 앉아 묘비 사진 속 온화한 어머니의 얼굴을 손으로 가만히 쓰다듬었다. “엄마, 저 왔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전 잘 지내요. 정말. 그리고 아빠 일은 제가 꼭 진실을 밝혀서 떳떳하게 나오게 할 거예요. 성씨 가문에 빚진 사람들은 절대 그냥 안 넘길 거예요. 그러니까 하늘나라에서 잘 보고 계세요.” 말을 마친 찰나, 뒤에서 누군가의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돌아보니 유하준이 아직 검찰청 근무복을 갈아입지도 못한 채 서 있었고 그 옆에는 똑같이 제복을 입은 임수아가 있었다. 그 둘이 함께 있는 모습에 성나정은 속이 울렁거렸다. “당장 꺼져.” 유하준은 잠시 멈칫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묘비를 향해 조용히 고개를 숙여 절했다. 그가 몸을 굽히는 순간 성나정은 벌떡 일어나 손을 세차게 휘둘렀다. 팍! 그러자 정갈하게 포장된 꽃다발이 허공으로 날아가 땅바닥에 흩어졌다. “유하준, 대체 무슨 뜻이야? 우리 엄마 기일에 엄마가 제일 싫어하던 꽃 들고 엄마가 제일 증오하던 인간까지 데려오겠다고? 땅속에서도 편안하지 쉬지 않게 하고 싶어서 일부러 그러는 거야?” 유하준은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낮게 대답했다. “꽃은 수아가 산 거야. 수아도 신경 써서 준비한 꽃이니까 그냥 넘어가. 꽃 한 다발 가지고 화내지 말고.” “꽃 한 다발?” 성나정은 비웃듯 입꼬리를 올렸다. 그리고 기억이 밀려들었다. 한때, 유하준은 그녀 집안 식구들의 취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어머니가 꽃가루 알레르기가 있어 백합만 괜찮다는 것도, 집에 올 때마다 꼭 그걸 기억해서 꽃집에 미리 부탁하던 것도. 그럴 때마다 김나희는 웃으며 이렇게 말하곤 했다. “하준이 같은 애한테 시집가면 우리 나정이가 얼마나 사랑받을까?” 사실 성나정도 그럴 줄 알았다. 유하준의 사랑을 한껏 받을 줄로만.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였다. 그는 그녀의 집안을 박살냈고 이제는 꽃 한 다발일 뿐이라는 말까지 아무렇지 않게 내뱉었다. 임수아는 기쁨을 숨기지 못하면서도 겉으로는 조심스레 말했다. “성나정 씨, 죄송해요. 저는 그냥 진심으로 어머님께 인사드리고 싶어서...” 그 가식적인 모습에 성나정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내 법정에서 선보이던 임수아의 가식적인 연기가 떠오른 그녀는 천천히 일어나며 말했다. “그래요?” 그러더니 임수아의 어깨를 확 잡더니 그녀의 비명도 무시한 채 단숨에 바닥으로 강하게 무릎을 꿇게 만들었다. 빠르고, 정확하고, 무자비하게. “그만해!” 그 모습을 본 유하준은 표정이 확 굳어버렸다. 그는 서둘러 임수아를 붙잡아 일으키며 다친 곳을 확인했다. 그리고 성나정을 향해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수아는 그냥 사과하려고 온 거야. 제발 이러지 좀 마!” 유하준에게 밀린 성나정은 비틀거리며 겨우 몸을 세웠고 헝클어진 머리를 쓸어 넘기며 느긋하게 말했다. “유 검사, 못 들었어? 무릎 꿇고 사과하겠다는 건 임수아 씨가 먼저 말한 거야. 그래서 나는 그냥 조금 도와준 것뿐이고. 이러면 더 진심 같아 보이잖아. 왜 그것도 문제야?” “성나정...” 유하준은 말문이 턱 막혀 관자놀이가 파르르 뛰었다. 그는 겁에 질린 임수아를 번쩍 안아 들고 짧은 경고만 남긴 채 걸음을 재촉했다. “성나정. 더 이상 잘못된 길로 가지 마.” 성나정은 뒤돌아보지 않고 천천히 쪼그려 앉아 옅은 미소를 지으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엄마, 보셨죠? 이건 시작일 뿐이에요. 저희한테 빚진 놈들 단 한 명도 그냥 두지 않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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