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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파출소를 나오자 밖에는 눈이 흩날리고 있었다. 강릉시에 내리는 올겨울의 첫눈이었다. 하늘은 얇은 베일로 덮인 듯 잿빛이었고 눈송이는 하늘에서 뿌려진 고운 설탕 가루처럼 가볍게 흩날렸다. 송찬미는 신승우의 뒤를 따랐다. 두 사람 사이에는 두세 걸음 정도의 거리가 있었다. 그녀는 코를 훌쩍이며 잔뜩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승우 오빠, 오늘 정말 죄송했어요. 폐를 끼쳐서...” 신승우가 담담하게 말했다. “신경 쓸 것 없어.” 칼날 같은 찬바람이 눈송이를 몰고 옷깃 사이로 파고들자 송찬미는 추위에 목을 움츠렸다. 그녀는 패딩 지퍼를 끝까지 올리고 턱을 옷깃에 파묻었다. “그 보석금은 어떻게든 꼭 갚을게요.” “어.” 남자는 긴 다리를 뻗어 문 앞에 세워진 마이바흐로 향했다. 송찬미는 얌전히 그의 뒤를 따랐다. “오늘 정말 일부러 사람을 다치게 하려던 건 아니었어요. 그 사람이 술에 취해서 저를 희롱하려고 했거든요.” 송찬미는 설명하기 시작했다. “알아.” 신승우는 조수석 문을 열어주었다. “타.” 남자는 검은색 코트에 금테 안경을 쓰고 있었고 표정 변화가 거의 없어 차갑고 다가가기 어려웠다. 송찬미는 조심스럽게 차에 올라탔다. “고마워요, 승우 오빠.” 신승우는 반대편으로 차에 올라탔다. 오늘은 그가 직접 운전해서 온 것이었다. 송찬미는 그에게 폐를 끼친 것 같아 너무 미안해서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정말 죄송해요. 이렇게 늦은 시간에 번거롭게 해드려서.” 신승우의 목소리는 여전히 차가웠다. “괜찮아. 학교까지 데려다줄게.” “고마워요, 오빠.” 가는 길에 신승우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앞으로 그 알바는 하지 마.” “네.” 송찬미는 고개를 숙이고 나직이 대답했다. 이 알바를 그만둬도 다른 곳에서 또 알바를 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엄마의 병원비를 댈 방법이 없으니까. 하지만 이런 말은 신승우에게 하지 않았다. 곧 학교에 도착했다. 송찬미는 신승우에게 차를 ‘개구멍'이 있는 곳으로 몰아달라고 했다. “여기에 세워주세요. 고마워요, 승우 오빠.” “왜 정문으로 안 들어가?” 신승우가 의아한 듯 그녀를 쳐다봤다. “통금 시간이 있어서요. 열한 시가 넘으면 출입이 안 돼요.” 송찬미는 조금 부끄러운 듯 말했다. “여기에 구멍이 하나 있어서 평소에 알바 끝나면 여기로 들어가요.” 신승우는 고개를 끄덕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송찬미는 차에서 내려 신승우에게 손을 흔들었다. “잘 가요, 오빠. 오늘 저 꺼내주시고 학교까지 데려다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차 안에 앉은 남자는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며 평온한 눈빛으로 대답했다. “어.” 송찬미는 몸을 돌려 울타리 쪽으로 걸어갔다. 그러나 그곳에 가까워질수록 그녀의 입에서 의아한 소리가 새어 나왔다. “어라?” ‘개구멍이 어디 갔지? 어떻게 된 거지?’ 그녀는 몇 번이고 앞뒤로 왔다 갔다 하며 확인했지만 그 개구멍은 확실히 사라지고 없었다. 희미한 가로등 불빛에 비춰보니 이쪽 구간의 울타리가 새것으로 바뀌어 있었다. 학교 측에서 손을 쓴 모양이었다. ‘그럼 나 오늘 밤 어디서 자야 하지?’ 송찬미는 그 자리에 우뚝 서서 완전히 얼어붙었다. 신승우는 차 안에서 고개를 돌려 소녀가 몇 번이고 앞뒤로 서성이다가 결국 그 자리에 멈춰 멍하니 서 있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는 잠시 멈칫하더니 차 문을 열고 내렸다. “왜 그래?” 신승우가 그녀의 뒤로 걸어와 담담하게 물었다. “개구멍이 없어졌어요.” 송찬미는 그를 돌아보며 원래 개구멍이 있던 자리를 손으로 가리켰다. “전에는 여기에 비집고 들어갈 수 있는 구멍이 있었거든요.” 차가운 바람이 불어오자 송찬미는 몸을 움츠렸다. 눈은 점점 더 거세게 내렸고 바깥 기온은 이미 영하로 떨어져 있었다. “타.” 신승우는 그 한마디를 툭 던지고는 차로 돌아갔다. 송찬미는 그 자리에서 잠시 머뭇거렸다. 하지만 결국 돌아서서 신승우를 따라 차에 올랐다. 그녀는 이제 갈 곳이 없었다. 신승우는 한 5성급 호텔 앞에서 차를 세웠고 송찬미는 그를 따라 차에서 내렸다. 호텔 직원이 마중 나와 깍듯하게 인사했다. “신 대표님.” 신승우는 들고 있던 차 키를 직원에게 무심하게 던져주고 계단을 올랐다. 직원은 키를 들고 발렛파킹을 하러 갔다. 송찬미는 그림자처럼 조용히 신승우의 뒤를 따랐다. 로비에 들어서자 좌우의 도어맨들이 일제히 허리를 굽히며 외쳤다. “신 대표님, 안녕하십니까!” 시간은 벌써 6시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이 시간에 호텔 방을 잡는 건 누가 봐도 이상했지만, 도어맨들은 딴생각 없이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프런트 아가씨도 상냥하게 인사했다. 신승우는 프런트를 쌩 지나쳐 엘리베이터로 직행했다. 송찬미는 착하게 그의 뒤를 따르면서도 왜 체크인을 안 하는지 의아했다. 하지만 의아할 뿐, 묻지는 않았다. 엘리베이터에 오르자 신승우는 최상층 버튼을 눌렀다. 송찬미는 깜빡이며 변하는 붉은 숫자를 쳐다보며 심장이 점점 빠르게 뛰는 것을 느꼈다. 남자와 단둘이 호텔에 방을 잡으러 온 것은 처음이었다. 그녀는 신승우가 절대적으로 점잖은 신사이며 오늘 밤 자신에게 아무 짓도 하지 않을 거라고 굳게 믿었지만, 그래도 긴장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신승우와 단둘이 있어 본 것도 처음이었다. 좁은 공간 안에서 송찬미는 숨쉬기조차 힘들어지는 것 같았다. 마침내 띵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다시 신선한 공기를 마시자 송찬미는 마음을 가다듬고 신승우의 뒤를 따라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이 층 전체에는 방이 하나뿐이었다. 신승우가 익숙하게 카드를 대고 문을 열었다. “내 방이야. 방 3개짜리니까, 내 침실 빼고 둘 중 아무 데나 써.” 송찬미는 아직도 상황 파악이 잘 안 된 채, 더듬거리며 대답했다. “아, 네.” 그녀가 정말로 신승우와 함께 호텔에 오다니. 너무나 꿈만 같았다. 안으로 들어서자 신승우는 새 슬리퍼 한 켤레를 꺼내 그녀의 발치에 조용히 놓아주었다. “고마워요.” 송찬미는 허리를 숙여 신발을 갈아 신었다. 그녀와 신승우는 알고 지낸 지 5년이 넘었지만, 둘이 나눈 대화는 손에 꼽을 정도였고 단둘이 있어 본 적은 더더욱 없었다. 신승우와 신지영은 이복남매였다. “우리 오빠 그 사람 있잖아, 누구한테나 완전 차가워. 가끔은 아빠 체면도 안 세워준다니까.” 신지영은 신승우를 그렇게 평가했다. “오빠네 학교에 오빠 좋아하는 애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아? 오빠 친구한테 들었는데, 거의 매일 러브레터를 받는대. 과장 아니고, 진짜로 매일.” “내가 중학교 막 들어갔을 때, 우리 오빠는 옆 고등학교에서 이미 수많은 팬을 거느리고 있었어. 중학교 3년 내내, 얼마나 많은 선배들이 나 찾아와서 선물이나 편지 좀 전해달라고 했는지 셀 수도 없었다니까.” “찬미야, 너 우리 오빠 얼굴 어떻게 생각해? 만화 찢고 나온 거 같지 않냐?” 신지영이 이 말을 했을 때, 송찬미는 수학 문제를 풀고 있었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똑똑하고 머리 회전이 빨라서 시험에서 전교 3등 밖으로 밀려난 적이 없었다. 이 수학 문제는 그녀에게는 식은 죽 먹기였다. 문제를 쓱 훑어보자마자 머릿속에 풀이법이 떠올랐다. 하지만 막 ‘풀이'라고 두 글자를 썼을 때, 신지영이 신승우 이야기를 꺼내는 바람에 생각이 다른 곳으로 새어버렸다. 머릿속에 신승우를 처음 봤던 그 날의 장면이 떠올랐다. 지나치게 완벽한 이목구비, 선명하게 갈라진 복근... 그것이 바로 송찬미가 처음으로 ‘섹슈얼 텐션'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낀 순간이었다. “응, 엄청 잘생겼지.” 송찬미는 애써 태연한 척 말했다. “그치?” 신지영은 옆에서 감자 칩을 우걱거리며 말했다. “난 매일 오빠의 그 완벽한 얼굴을 보다 보니 눈이 너무 높아졌어. 웬만한 남자들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아.” “그래.” 송찬미는 덤덤하게 대답했다. 시선은 수학 문제에 고정되어 있었지만 처음 떠올렸던 풀이법이 도무지 생각나지 않았다. 한참 뒤, 그녀는 자신이 아무렇지 않은 척 묻는 소리를 들었다. “그렇게 여자들이 꼬이는데, 사귀는 사람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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