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화
그날 밤, 기도훈은 역시나 밤새 돌아오지 않았다.
동이 트기 시작할 무렵, 예하늘은 혼자 차를 몰아 병원으로 향했다. 복잡한 검사를 마치고 난 후 의사는 심각한 표정으로 보고서를 보며 말했다.
“예하늘 씨, 자궁벽이 선천적으로 얇으신 편이라 강제로 낙태 수술을 하면 대출혈이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결과는... 평생 불임이 될 확률이 높아지고요.”
‘평생 불임...’
그녀는 가벼운 검사 결과지를 움켜쥐고 딜레마에 빠졌다.
‘하늘조차 나를 쉽게 놓아주지 않으려는 것인가?’
차 안에서 오랫동안 멍하니 앉아 있던 그녀는 결국 변호사가 작성한 이혼 합의서를 들고 기씨 가문의 옛 저택으로 향했다. 왜 이곳에 왔는지 알 수 없었다. 어쩌면 이 황당한 결혼에 대한 최종적인 답을 얻거나, 혹은 새로운 출구를 찾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옛 저택의 서재 문이 살짝 열려 있었다. 문 앞에 이르자마자 예하늘은 안에서 나는 억눌린 질책 소리를 들었다. 그녀는 홀린 듯 발걸음을 멈추고 문틈으로 그녀의 심장을 멎게 할 장면을 보았다.
기도훈, 늘 침착하고 여유로운, 높은 곳에 있는 그 남자가 지금 차가운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의 맞은편에 있는 기만섭은 무거운 지팡이를 들고, 한 번, 또 한 번, 거침없이 그의 꼿꼿한 등줄기를 내리치고 있었다.
“이런 망할 놈! 그 시절 집안 좋은 아가씨들이 얼마나 많았는데 네가 눈이 멀어 애도 못 낳는 그 여자에게 빠졌어! 그 여자 때문에 어른들을 거역하고 심지어 자살로 협박하는 이 어리석은 짓까지 하지 않았어? 우리가 필사적으로 숨기지 않았더라면 기씨 가문의 체면이 말이 아니었을 거야!”
“우리는 이미 양보했어. 네가 결혼해서 기씨 가문의 대를 잇고, 명맥을 이어나가기만 한다면 그 이후에는 누구와 만나든 상관하지 않고 자유를 줄 거라고! 그런데 지금은 뭐 하는 거야? 예하늘의 배는 아무런 동정이 없는데 너는 그 천박한 여자와 또 어울리고 있는 거야?”
기도훈의 이마에 핏줄이 팽팽하게 섰지만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아이를 낳지 못하는 것은 제 아이를 임신했다가 유산했기 때문이에요. 그러니 제가 책임져야 해요.”
기만섭은 분노에 차 가슴을 부여잡았다.
“그럼 기씨 가문에는 어떻게 책임질 거야! 그 여자를 위해 경주까지 하다니. 네가 죽기라도 해서 우리 기씨 가문이 대가 끊기면 하늘에 계신 조상님들이 노하실 거야!”
한마디 한마디가 마치 천둥처럼 예하늘의 귓가에 울려 퍼졌다. 그녀는 온몸이 얼어붙었다. 마치 수많은 칼날에 찔려 피가 솟구치는 듯했다.
임신... 유산... 자살... 명맥을 잇는 것... 이제야 모든 것이 설명되었다.
왜 그는 그녀의 배란기에만 동침했는지, 왜 그녀를 볼 때 생명 없는 물건처럼 보았는지, 왜 그토록 위험을 무릅쓰고 그녀를 구했는지...
그녀를 좋아서가 아니라, 가장 적합한 출산 도구를 잃을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엄청난 황당함에 그녀는 소리 내어 웃고 싶었지만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오직 눈물만이 무언의 흐름처럼 쏟아질 뿐이었다. 얼마나 우스운가.
그녀는 철저한 광대처럼 아무것도 모른 채 그 여자의 발판이 되어주었다. 그리고는 진심으로 기도훈이라는 얼음 산을 녹일 수 있다고 순진하게 믿었다. 그녀는 굴복하지 않았다.
예하늘은 뒤돌아 도망치듯 그곳을 떠났다.
지금 그녀가 원하는 것은 오직 아버지에게서 위로를 받는 것뿐이었다. 아버지가 그녀를 위해 이혼을 허락해주고, 기도훈 곁에서 완전히 벗어나기를 바랄 뿐이었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그녀는 예태섭이 가정부에게 귀한 보양식을 잔뜩 정리하라고 지시하는 것을 보았다. 그녀를 본 예태섭은 즉시 얼굴에 웃음을 띠며 말했다.
“우리 딸, 돌아왔구나? 잘됐네. 이 음식들은 전부 아빠가 구해온 거야. 여자 몸에 아주 좋고, 임신과 출산하는 데 아주 도움이 된대...”
예하늘이 이혼 이야기를 꺼내려던 순간, 익숙한 실루엣이 침실에서 걸어 나왔다. 그 사람의 얼굴을 알아본 순간, 예하늘은 벼락을 맞은 듯 온몸에 뼛속까지 파고드는 한기를 느꼈다.
바로 그녀였다. 기도훈이 영상 속에서 다정하게 안고 있던 바로 그 여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