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화
기만섭의 눈동자가 순간적으로 수축했다. 그는 그 병을 가리키며 입술을 떨더니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고 그대로 기절해버렸다. 현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기만섭은 응급 처치를 받고 깨어나자마자 예하늘과 접촉했던 모든 의료진을 병실로 불러 모았다.
그는 지팡이를 짚고 침대에 앉아 물이 떨어질 정도로 음침한 표정을 지었다.
“예하늘은 어디 갔어?”
기도훈은 입을 열어 설명하려 했다.
“아마 토라져서 며칠 숨어 있을...”
“누가 너더러 대답하라고 했어?”
무거운 지팡이로 바닥을 쿵 내리치며 그는 기도훈의 말을 날카롭게 끊었다. 겁먹은 간호사가 몸을 움츠리며 작게 대답했다.
“아침에 병실 점검할 때는 계셨는데 그다음... 사라졌어요.”
기만섭은 깊게 숨을 들이쉬고 나서 예하늘의 산부인과 검진을 했던 의사를 향해 물었다.
“예하늘이 언제 임신 검사한 거야?”
의사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약 일주일 전입니다. 예하늘 씨가 검사하러 왔을 때, 임신 9주 차임을 확인했습니다. 그때는... 꽤 즐거워 보였는데 나중에 다시 전화해서 유산 수술 예약을 했습니다.”
기만섭은 즉시 모든 것을 깨달았다. 그는 칼날 같은 눈빛으로 기도훈을 노려보며 분노했다. 그는 기도훈을 질책하는 대신, 기도훈 뒤에 숨은 정유리를 향해 얼음장처럼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하늘이가 유산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
정유리는 겁에 질려 몸을 떨며 기도훈의 옷자락을 꽉 붙잡았다. 기도훈은 차분한 목소리로 설명했다.
“정유리와는 상관없어요. 그건 사고였어요.”
“사고?”
기만섭은 분노에 휩싸여 아무런 예고도 없이 지팡이를 들어 정유리에게 휘둘렀다.
기도훈이 앞으로 나아가 그녀의 앞을 막아 나섰다. 묵직한 원목 지팡이가 그의 등 뒤를 내리치자 그는 끙 소리를 내며 반쯤 무릎을 꿇었다.
“불효자식!”
기만섭은 심장을 부여잡고 통탄했다.
“우리 기씨 가문에 아이가 얼마나 어려운 줄 알아? 대가 끊어지기 일보 직전이야. 나와 네 엄마가 마흔에 너를 낳았어. 너 때문에 우리 기씨 가문이 대가 끊기게 생겼어!”
이 순간, 기도훈의 마음속 또한 후회로 가득 차 있었다. 그는 예하늘이 임신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고, 이 아이를 잃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하지만 일이 이렇게 된 이상, 그는 정유리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었다.
“정유리와는 상관없어요.”
그는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고집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아들이 여전히 그 여자를 보호하는 것을 본 기만석은 극도의 실망감을 느꼈다. 그는 화를 내며 한마디를 내뱉었다.
“일 년. 딱 맞을 년만 주겠다. 어떤 수단을 쓰던 여자에게 아이를 임신시켜 기씨 가문의 후대를 이어야 해. 그렇지 않으면...”
그의 차가운 시선이 정유리를 훑었다.
“네 곁에 있는 이 여자는 황금강에 던져져 물고기 밥이 될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기만석이 떠난 후 기도훈은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얻어맞은 등은 아파서 걸음걸이가 비틀거렸다.
귀에는 여전히 정유리의 울음소리가 들려왔지만 그는 침착하게 휴대폰을 꺼내 예하늘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전화기에서는 차가운 여성 음성만 들려왔다.
“고객님께서 전화를 받지 않아...”
그는 포기하지 않고 다시 메시지를 보냈지만 여전히 묵묵부답이었다. 그는 깊게 숨을 들이쉬며 가슴속에서 끓어오를 듯한 감정을 억누르려 했다.
처음에는 예하늘은 그저 그의 인생 계획 속의 한 도구일 뿐이라고, 마치 그가 지금까지 걸어오면서 밟았던 수많은 디딤돌 중 하나일 뿐이라고 자신을 설득했다.
‘떠났다면 그냥 보내주면 돼. 정유리에게 자리를 만들어 줄 수 있으니 오히려 잘된 일이야.’
그는 여전히 계획대로 생활하며 원래의 생활 궤도로 돌아가려 애썼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는 아침 조깅을 하던 익숙한 코스에서, 나무 그늘이 드리워진 곳에서, 자신도 모르게 화려한 요가복을 입고 어색하고 서툴게 손을 흔들던 여자를 떠올렸다.
“와, 정말 우연이네요. 여기서 만나다니.”
정원을 바라보며 책을 읽을 때, 새로 심은 나무를 볼 때, 그는 온통 붉은색 레이싱 슈트를 입고 페라리를 몰던 당찬 그림자가 눈앞에 아른거렸다.
집에 돌아와 문을 열 때마다, 더는 이상한 옷을 입고 스스로 도발적이라고 생각하는 자세로 그의 시선을 끌려고 애쓰는 그림자도 없었다. 집 안은 너무나 조용해 불안할 지경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가정부가 잡동사니 창고에서 먼지 쌓인 선물 상자를 찾아 건네주었다. “대표님, 이것 좀 보세요. 대표님 건지, 아니면 사모님께서 두고 가신 건지 모르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