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bfic
Open the Webfic App to read more wonderful content

제2화

도유환은 정하루를 좋아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니 지난 3년 동안 정하루는 바보처럼 그의 연기에 감쪽같이 속아 진심을 다한 것이었다. 정하루는 그 자리에 완전히 얼어붙었다. 그녀는 텅 빈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그의 온기가 남아있는 것 같았지만 이제 그것은 마치 뜨겁게 달궈진 쇠처럼 정하루를 아프게 했다. 다음 순간, 정하루는 테이블 위 비싼 양주를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그뿐만 아니라 자신의 눈에 보이는 컵, 과일이 든 접시, 오브제 등 깨부술 수 있는 것은 전부 깨부쉈다. 그것들 모두 정하루의 화풀이 대상이 되었다. 룸 안의 사람들은 완전히 넋이 나가 감히 그녀를 막지 못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결국 기운이 빠진 정하루는 공허한 눈빛을 해 보이며 나지막하게 웃었다. 그녀의 뺨엔 눈물자국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정하루는 자신이 어떻게 그곳에서 빠져나왔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쌀쌀한 밤바람이 불자 뺨이 서늘해졌다. 정하루는 그제야 눈물을 대충 닦은 뒤 택시에 탔다. “저기 앞에 있는 검은색 차 따라가 주세요.” 정하루는 도유환이 3년 동안 잊지 못한 그 여자가, 자신이 끝내 이기지 못한 그 여자가 대체 어떤 사람인지 직접 확인해 보고 싶었다. 운전기사는 정하루의 상태가 불안정해 보여 감히 질문하지 못하고 그녀가 요구한 대로 앞의 차를 뒤따라갔다. 늘 냉정하고 차분하던, 안전 운전을 하던 도유환이 지금 이 순간만큼은 평소보다 훨씬 빠르게 달리고 있었다. 그렇게 그 여자가 보고 싶은 걸까? 차는 공항 도착 층에 멈춰 섰다. 정하루는 택시비를 건넨 뒤 비틀대며 차에서 내려 기둥 뒤에 숨었다. 그녀는 도유환이 출구 쪽에 서 있고, 곧 흰색 원피스를 입은 온화하고 가냘파 보이는 여자가 캐리어를 끌고 나오는 걸 보았다. 여자의 얼굴을 본 순간 정하루는 큰 충격에 휩싸였다. 도유환은 그 여자가 자신에게로 달려오자 두 팔 벌려 그녀를 안아주더니 고개 숙여 그녀의 머리카락에 입을 맞췄다. 그 모습은 너무도 다정했다. 도유환이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인 것처럼 품에 안고 있는 여자는 바로 다름 아닌 정해은이었다. 정해은은 정하루의 이복 언니이자 정하루가 세상에서 가장 혐오하고, 가장 얽히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정하루의 엄마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지 반년도 되지 않아 정하루의 아빠는 자신의 내연녀를 데리고 집으로 왔다. 심지어 그 여자에게는 정하루보다 세 살 더 많은 딸 정해은이 있었다. 정하루의 아빠는 그 여자가 자신의 첫사랑이고 정해은은 자신의 친딸이라고 하면서, 만약 당시 정하루의 엄마가 강제적인 수단을 쓰지 않았다면 이미 임신한 상태였던 자신의 첫사랑과 헤어질 일은 없었을 거라고 했다. 그의 어처구니없는 말에 정하루는 기가 찼다. 정하루는 진실을 알고 있었다. 당시 정하루의 아빠는 창업 때문에 급전이 필요했고 궁지에 몰린 상황이라 끼니도 제대로 챙겨 먹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정하루의 아빠는 자신을 오랫동안 짝사랑했던 정하루의 엄마를 찾아가 만약 정하루 엄마의 가족들이 자금을 지원해 준다면 그녀와 결혼하겠다고 약속했다. 정하루의 엄마는 그를 위해 창업 자금을 마련해주고 자신의 마음도 내주었다. 심지어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 정하루의 아빠를 살리겠다고 그를 밀어내고 죽었다. 그러나 정하루의 아빠는 정하루의 엄마가 세상을 뜬 지 얼마 되지 않아 기다렸다는 듯이 엄마가 남긴 유산으로 다른 여자와 결혼했다. 다른 여자도 아니고 왜 하필 정해은인 걸까? 정하루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피비린내가 나는데도 그녀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정하루가 넋을 놓고 있는 사이, 도유환이 정해은의 캐리어를 건네받고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은 채 주차장으로 걸어갔다. 정하루는 마치 귀신에 홀린 사람처럼 또 한 번 택시를 잡아 그들을 따라갔다. 꽤 가까이 붙어서 따라갔기에 정하루는 차창 너머로 앞 차 안에서 도유환이 고개를 돌려 정해은에게 뭔가를 다정하게 얘기하더니 심지어 손을 뻗어 자연스럽게 정해은을 대신하여 머리카락을 정리해 주는 모습을 보았다. 그 한없이 다정한 모습은 그와 3년을 만났어도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모습이었다. 누군가 심장을 옥죄는 듯한 기분에 정하루는 숨조차 쉬기 힘들었다. 앞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정하루의 눈에서 눈물이 차오르는 순간, 앞에서 갑자기 사고가 일어났다. 귀청을 찢는 듯한 브레이크 소리와 충격음이 잇달아 들려왔다. 정하루가 타고 있던 택시는 어쩔 틈도 없이 앞 차를 박았고, 곧이어 뒤에 있던 차가 정하루가 타고 있던 택시를 박았다. 쾅! 엄청난 충격에 정하루는 앞 시트에 머리를 심하게 부딪히게 되었고,곧 통증과 함께 뜨거운 피가 흘러내려 시야가 흐려졌다.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비명이 터졌다. 정하루는 부서진 창문을 통해 앞 차 문이 열리는 걸 보았다. 도유환이 차에서 내려 빠르게 조수석 쪽으로 걸어가 조심스럽게 안에 타고 있던 정해은을 안아 들었다. 도유환은 정해은의 상처를 보더니 미간을 찌푸리며 안쓰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정해은을 안고서 사고 현장을 빠져나가려던 도유환은 우연히 심하게 일그러진 택시 안에서 피를 철철 흘리고 있는 정하루와 시선이 마주쳤다. 정하루는 도유환의 파문 하나 일지 않는 평온한 눈빛에서 약간의 놀라움을 보았다. 그러나 그것은 금방 사라졌다. 도유환의 품에 안겨있던 정해은은 도유환이 잠깐 멈춰 선 것을 눈치챈 것인지 힘없이 말했다. “유환 씨, 왜 그래요? 아는 사람이라도 본 거예요? 난 괜찮아요. 그냥 살갗이 살짝 쓸린 것뿐이에요. 만약 지인이 있는 거라면 어서 가 봐요... 택시 하나가 충격 때문에 심하게 일그러졌다던데...” 몇 초간 침묵하던 도유환이 시선을 거두었다. “아는 사람 없어. 다 나랑 상관 없는 사람들이야.” 말을 마친 뒤 그는 정해은을 안고서 고개 한 번 돌리지 않은 채 혼란스러운 교통사고 현장에서 성큼성큼 빠져나갔다. 도유환의 매정한 뒷모습을 본 정하루는 웃음이 터져 나올 것만 같았다. 그러나 웃음 대신 정하루의 눈에서 피와 함께 눈물이 흘러내렸다. ‘상관없는 사람이라고...’ 지난 3년 동안 정하루는 도유환에게 그와 아무 상관 없는 사람이었다.

© Webfic, All rights reserved

DIANZHONG TECHNOLOGY SINGAPORE PTE. LT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