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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정명진은 곧바로 도유환의 의도를 눈치채고 경호원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들었지? 일단 30대 때려. 그리고 사당으로 끌고 가서 무릎 꿇려. 내가 허락하기 전까지 절대 일어나지 못하게 해!” “이거 놔! 정명진 당신은 내 아빠가 아니야! 당신은 그냥 짐승 새끼야!” 정하루는 필사적으로 저항했지만 경호원이 그녀를 완전히 제압했다. 억지로 다른 방으로 끌려간 정하루의 앞에 단단한 채찍을 쥔 임선경이 통쾌함과 악랄함이 어우러진 표정으로 서 있었다. “이 천박한 년은 자기 죽은 엄마랑 똑같이 제 주제 파악을 못 하네. 내가 오늘 네 아빠 대신 아주 혼쭐을 내주겠어!” 임선경은 그렇게 말하면서 채찍을 들어 정하루의 등을 후려쳤다. 짝! 살갗이 찢기는 고통에 정하루는 눈앞이 아찔했지만 이를 악물고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 한 번, 두 번, 세 번... 임선경은 마치 오랫동안 쌓아왔던 분노와 한을 전부 풀어내려는 듯이, 정하루의 뼈에서 살을 발라내려고 그러는 건 아닐지 의심될 정도로 힘껏 채찍을 휘둘렀다. 정하루는 극심한 통증으로 인해 온몸이 덜덜 떨렸고 식은땀이 옷을 다 적신 데다가 의식도 점차 흐려졌다. 정하루는 문득 예전에 도유환이 그녀와 계모 사이가 좋지 않다는 걸 알고 미간을 찌푸리며 필요하다면 자신이 도와주겠다고 했던 걸 떠올렸다. 기분이 좋지 않아 밤에 몰래 엄마의 묘지로 찾아갔을 때, 도유환이 그녀를 찾아와 빗속에서 자신의 겉옷을 벗어 정하루에게 입혀준 뒤 차에 태워 그녀를 집까지 데려다줬던 때도 있었다. 정하루는 아주 가끔 도유환이 보여준 그런 다정한 모습들이, 도유환이 자신을 좋아할지도 모른다고 착각했던 그런 순간들이 떠올랐다. 그때의 도유환은 언젠가 자신이 직접 그녀를 벼랑 끝으로 내몰게 될 거라는 걸 알고 있었을까? 콜록... 피비린내와 함께 피를 토하게 됐지만 정하루는 그럼에도 작게 웃었다. 임선경은 그녀의 웃음에 모골이 송연해져 더욱 성을 냈다. “뭘 처 웃어? 이 빌어먹을 년이!” 정하루는 피와 땀으로 엉망이 된 얼굴을 들며 마치 늑대처럼 매서운 눈빛으로 임선경을 노려보면서 말했다. “당신들... 당신이랑 당신 딸이 우스워서요. 평생 남이 버린 쓰레기들만 줍고 살아요... 당신들한테 그게 어울리니까.” “너!” 임선경은 화가 나서 몸을 부들부들 떨더니 채찍을 내려놓고 옆에 있던 가사도우미를 향해 고함을 질렀다. “가서 전기 몽둥이 가져와!” “사모님, 그건 안 됩니다! 그러다가 아가씨 죽어요!” 한 나이 많은 가사도우미가 참다못해 그녀를 말렸다. “꺼져! 네가 뭔데 끼어들고 난리야?” 임선경은 가사도우미를 밀친 뒤 경호원이 내민 전기 몽둥이로 정하루를 폭행하기 시작했다. “으악!” 전류와 함께 몽둥이에 맞을 때의 통증이 온몸을 휩쓸었다. 정하루는 자신의 갈비뼈가 부서지는 소리를 똑똑히 들었다. 그녀는 피를 왈칵 토한 뒤 완전히 의식을 잃었다. ... 의식이 돌아왔을 때 정하루는 자신의 방 침대 위에 누워있었다. 온몸이 탈골된 것처럼 성한 곳이 한 군데도 없었다. 가사도우미인 장문희가 몰래 정하루의 상처에 연고를 발라주면서 눈물을 훔치며 그녀를 작은 목소리로 설득했다. “아가씨... 그냥 회장님 말씀에 고분고분 따르세요... 이렇게 고생할 필요 없잖아요...” 정하루는 힘없이 고개를 저으며 거칠어진 목소리로 말했다. “고분고분 따르라고요? 이 집에서는 그러면 결국 잡아먹혀 버릴 거예요.” 정하루는 잠깐 뜸을 들이다가 차라리 우는 게 나을 것 같은 처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냥 한 번 맞은 것뿐이에요. 정해은도 이마가 찢어졌으니 손해는 아니에요. 저는... 견딜 수 있어요.” 말을 마친 뒤 정하루는 힘겹게 베개 아래서 카드 하나를 꺼내 장문희의 손에 쥐여 주었다. “아주머니... 이거 받으세요...” 장문희는 화들짝 놀라며 서둘러 거절했다. “아가씨, 이건 안 돼요! 제가 어떻게 감히 아가씨께 돈을 받겠어요?” “그냥 받으세요.” 정하루는 고집스럽게 말했다. “이건 제가... 예전부터 준비했던 거예요... 저 곧 출국할 거예요... 아마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거예요... 아주머니는 우리 엄마랑 같이 여기로 오신 분이니까 여기 남아 있어봤자 눈치만 보게 될 거예요... 이 돈이면 노후 걱정은 안 하셔도 될 거예요... 그러니까... 제 말대로 이제 일 그만두고 여기를 떠나세요...” 장문희는 손에 들린 얇은 카드 한 장과 침대 위 만신창이가 되어서도 여전히 자신을 걱정해 주는 정하루를 바라보다가 끝내 눈물을 참지 못하고 무릎을 꿇으려고 했다. 정하루가 그녀를 다급히 말리며 기운 없는 목소리로 애교를 부리듯 말했다. “아주머니... 저 아주머니가 해주신 소고기뭇국 먹고 싶어요...” “네, 네! 지금 바로 가서 끓일게요!” 장문희는 빠르게 눈물을 닦은 뒤 자리에서 일어나 부랴부랴 주방으로 향했다. 방 안이 다시금 조용해졌다. 정하루는 화려하지만 차가운 천장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눈을 감으며 모든 절망과 슬픔이 덮쳐오는 걸 느꼈다. 그 뒤로 정하루는 며칠 동안 방 안에서 상처를 치료했다. 그 사이 그녀는 극심한 통증을 참으며 천천히 짐을 다 싼 뒤 도유환이 선물해 줬던 것들을 전부 정리해서 꺼냈다. 도유환은 그녀를 사랑하지 않았지만 통은 커서 그가 준 선물을 다 더하면 수백억은 되었다. 정하루는 처음에 그냥 버릴 생각이었으나 생각을 바꿔 자주 가던 호텔의 사장님에게 연락했다. 최근 들어 그곳에서는 자선 경매를 했는데 정하루는 자신에게 경매에 부칠 물건들이 아주 많다고 했다. 사장은 이내 답장을 보내왔다. 그는 오늘 저녁 경매가 열리니 한번 와보라고 했다. 저녁때쯤 정하루는 캐리어들을 끌고 그곳으로 향했다. 그녀는 팔아버릴 것들을 전부 경매 담당자에게 넘긴 뒤 몸을 돌렸다가 운 나쁘게도 그곳에 온 도유환, 정해은과 마주쳤다. 정해은은 도유환에게 기댄 채 의기양양한 얼굴로 도발하듯 정하루를 바라보았다. 정하루는 자기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지만 이내 손에 힘을 풀었다. 오늘 그녀는 따로 해야 할 일이 있었기에 그들에게 감정을 낭비할 필요가 없었다. 도유환의 시선이 지나칠 정도로 창백한 정하루의 얼굴에 잠깐 머물렀으나 이내 그의 시선은 다른 곳으로 옮겨졌다. 자리에 앉자마자 갑자기 조명이 어두워졌다. 진행자가 단상 위로 올라가 들뜬 목소리로 경매 시작 전 3분 동안 키스 타임을 가질 테니 그 자리에 있는 연인들에게 실컷 즐기라고 했다. 정하루는 당황했다. 스포트라이트는 어두운 현장을 쭉 비추다가 서로 끌어안고 키스하는 연인들의 모습을 하나둘 비췄다. 자기도 모르게 몸을 돌린 정하루는 마침 멀지 않은 곳에서 정해은이 웃으며 도유환의 목에 팔을 두르고, 도유환이 고개를 숙이며 입꼬리를 살짝 올린 뒤 허리를 숙이면서 정해은에게 입을 맞추는 걸 보았다. 그 순간 정하루는 누군가 심장을 옥죄는 듯이 괴로워졌다. 그리고 도유환과 키스했던 기억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격정적인 것, 강압적인 것, 욕망이 담긴 것... 그러나 그중 소중히 여기듯 부드럽게 입을 맞춘 적은 없었다. 이때 술에 취한 남자가 갑자기 정하루에게 다가와 말했다. “정하루 씨, 혼자면 너무 외롭지 않아요? 나랑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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