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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3화

나는 한 걸음 물러서서 가슴께를 누르며 창백한 얼굴로 애써 침착함을 유지했다. 그건 스물다섯 살 송지연의 감정이었다. 나는 더 이상 이전의 비참했던 나에게 휘둘리고 싶지 않았다. 깊게 숨을 들이쉰 후 나는 고인우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당연히 되지. 딱히 못 할 이유는 없어. 하지만 박 회장님은 나이도 많고 하니까 괜한 충격이나 위험은 없었으면 좋겠어.” 박씨 가문 사람들에 대한 반감은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런 식으로 문제를 키우고 싶진 않았다. “박 회장님한테 진짜로 뭔가 하라는 건 아니야. 그저 병세를 좀 과장해서 말해서 그쪽 사람들 시선을 끌면 돼.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할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러면 네 말대로 하자.” 핸드폰은 여전히 고인우 손에 있었다. 나는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박윤성을 차단했으면 이제 돌려줘도 되지 않아?” “당연하지.” 고인우는 그제야 핸드폰을 돌려주었다. “앞으로는 그러지 마. 나도 박윤성을 차단하고 싶었던 건 맞지만 다른 사람이 내 일에 끼어드는 건 원치 않아.” 고인우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지만 그는 아무 말 없이 돌아서 나갔다. 조씨 가문. 나는 머뭇거릴 이유 없이 곧장 박영훈의 방으로 향했다. 내 정체를 아는 그 사람들은 나를 대접해 주지는 않아도 별다른 제지 없이 들여보내줬다. 아마도 그들 눈에는 내가 여전히 예전 그 송지연으로 언제나 박영훈에게 해가 되지 않을 사람으로 보였을 것이다. “왔느냐?” 박영훈은 정교하게 가공된 홍목 가구에 앉아 있었고 곁의 찻상 위에는 하얀 도자기로 만든 찻잔이 놓여 있었다. 그는 찻잔을 들어 조심스레 한 모금 마셨다. 여름인데도 그 몸을 단단히 감싼 당의는 구김 하나 없이 반듯했고 여전히 위엄을 풍기고 있었다. 하지만 그 순간 나는 박영훈이 정말로 세월의 끝에 선 노인이라는 것을 문득 깨달았다. 늘 보이던 냉철함과 단호함이 어쩌면 모두 허상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의 앞에 다가가 단호하게 말했다. “전 절대 조민서를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그가 미간을 찌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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