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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그것뿐이라니? 어차피 할 말도 없는 사이이지 않은가? 남자를 바라보는 허소원의 눈빛은 무덤덤했고 목소리는 태연했다. “박태진 씨랑 볼일은 끝났다고 생각하는데? 설마 회포를 풀고 싶은 건 아니겠지? 만약 사실이라면 웃기잖아. 이혼한 지 6년이 지난 전남편이 반가울 리는 없을 테고.” 유난히 사무적인 그녀의 말투에 박태진은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헛소리 집어치워! 넌 없을지 몰라도 난 아니야. 본인이 무슨 짓을 저지른 지 벌써 까먹었어? 제멋대로 이혼하고 나중에 복수한답시고 그런 일까지 마다하지 않는다니. 감히 남편과 자식을 내팽개쳐? 이제 와서 뻔뻔스럽게 나타나서는 시치미를 뗀다고?” 느닷없이 누명을 뒤집어쓴 허소원은 어리둥절했다. 이내 어안이 벙벙한 채 그를 바라보았다. “내가 남편과 자식을 버렸다고?” 대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이지? 당시 결혼 상대는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 사람은 분명 본인이었다. 나중에는 시어머니를 보내 이혼 합의서까지 건네주었다. 게다가 자식을 내팽개치다니? 너무 어이가 없었다. 그녀가 낳은 쌍둥이 중에서 한 명은 요절하고 다른 한 명은 애지중지 키우고 있는데 언제 버렸다는 거지? 더욱이 임신한 사실은 모르고 있을 텐데. 이내 곰곰이 생각하다가 무의식중으로 냉소를 지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이혼은 박태진 씨가 원했던 거 아닌가? 어떻게 염치도 없이 나한테 뒤집어씌울 수 있어? 설령 내가 먼저 이혼을 언급했다고 한들 뭐 어때서? 새댁이 몇 달 만에 부부생활을 한 번 하는데, 말이 돼? 독수공방하나 일찍이 남편을 여의거나 거기서 거기지. 그럴 거면 차라리 혼자가 낫지 않겠어? 게다가 상대가 누구든지 상관없다고 말한 사람은 본인이잖아. 그러니까 이혼이 각자 행복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선택이지.” 허소원은 단호하게 말했다. 안 좋은 과거가 떠올라 기분이 상해 두 손을 뻗어 남자의 가슴을 밀어내려 했다. “이만 비켜.” 하지만 박태진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허소원의 말에 화가 난 듯 어둡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냉소를 지었다. “남편을 잃은 거나 다름없다고? 그렇게 외로웠을 줄은 몰랐네. 내가 알기로 꽤 만족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한 번 하고 나면 더 하자고 조르기까지 했잖아.” 비록 이를 바득바득 갈고 말했지만 은근히 야릇하게 들렸다. 생각지도 못한 일을 들먹이는 남자 때문에 허소원은 발끈했다. “입 닥쳐! 만족한 적이 없거든? 너도 그냥 그랬어.” 박태진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뭐라고? 다시 얘기해 봐.” 그리고 살기 어린 눈빛으로 그녀를 응시했다. 허소원은 미처 눈치채지 못하고 비꼬는 말투로 말했다. “그냥 그래서 별로였다고.” 이는 남자에게‘전혀 만족스럽지 않다’라고 대놓고 말하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자존심이 강한 사람일수록 굴욕감을 느끼기 마련이었다. 박태진의 안색이 얼음장처럼 차가웠고 새까만 눈동자에 분노가 활활 타올랐다. 그는 눈앞의 여자를 죽이고 싶은 충동마저 들었다. “그냥 그렇다니? 지금까지 내 실력에 불만이 많았나 보네? 이참에 제대로 증명해줘야겠군.” 말을 마치고 허소원의 손목을 덥석 붙잡더니 비상구 밖으로 끌고 갔다. 그러고 나서 곧장 엘리베이터를 타고 위층으로 올라갔다. 허소원은 비로소 아차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내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려고 했지만 손목이 붙잡혀 옴짝달싹 못했다. 그녀의 표정에 충격과 경악이 고스란히 드러났고 박태진을 응시하며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뭐 하는 거야? 어디 가려고?” 박태진이 냉소를 지었다. “몰라서 물어? 방 잡으러 가는 거지.” 태연한 말투는 마치 날씨를 운운하는 듯싶었다. 허소원은 입이 떡 벌어졌다. 방을 잡다니? 제정신이 맞나? 고작 비하하는 말을 한마디 했다고 전 와이프를 상대로 그런 생각을 하다니? 미쳤나? “싫어!” 허소원은 즉시 몸부림쳤다. “이거 놔! 아니면 도움을 청할 거야!” 워낙 체면을 중요시하는 사람이라 쪽팔리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생각과 달리 박태진은 피식 비웃었다. “어디 한 번 해보시지? 어차피 박미 그룹 산하의 업소라 도움을 청해봤자 아무도 안 올걸?” 말을 마치고 나자 엘리베이터가 방이 있는 층에 멈춰 섰다. 박태진은 발버둥 치는 허소원을 끌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두 사람이 실랑이를 벌이는 와중에 어느덧 스위트룸에 들어섰다. 문이 닫힌 후 두 손으로 문을 짚고 그녀를 품에 가두었다. 허소원은 그제야 당황했다. 설마 진심인가? “일단 진정하고 얘기 좀 하자.” 박태진은 그녀의 손목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 셔츠 단추를 풀더니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이미 이혼한 전처랑 할 얘기가 뭐 있어? 괜히 쓸데없는 소리를 늘어놓을 바에 직접 보여주는 게 낫지 않아?” 그러고 나서 가까이 다가가 고개를 숙여 입술에 진한 키스를 했다. 허소원은 머리가 하얘졌다. 진짜로 키스하다니? 이내 분노의 몸부림을 쳤다. “이거 놔!” 어떻게 그녀에게 이럴 수 있단 말이지? 하지만 남자의 입술 앞에서 거절은 무용지물이었다. 마치 벌이라도 주려는 듯 난폭한 키스는 배려 따위 찾아볼 수 없었다. 허소원은 고통이 밀려오자 점점 더 격하게 발버둥 쳤다. 남자는 그녀의 허리를 꽉 붙잡고 다른 한 손으로 양손을 문에 고정시켰다. 여자의 힘으로 당최 감당하기 힘들었다. 뜨거운 숨결이 그녀를 덮치며 모든 감각을 사로잡았고 말캉한 혀에 유린당했다. 더욱이 몸까지 나른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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