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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5화 조건

구재이의 일 이후에야 민지환은 비로소 깨달았다. 구재이는 정말로 단 한 푼도 가진 게 없었다. 그것이 결혼할 때든, 결혼한 후에든... 설령 이혼할 때조차도 돈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집안에서 위자료 문제로 한바탕 소동이 일어날 뻔했을 뿐이다. 심지어 그의 어머니는 구재이가 집안에서 받은 것들을 전부 돌려줘야 한다고 했지만 구재이는 아무것도 가지지 않았고 오히려 완전히 빈손으로 집을 나갔다. 그 때문에 그의 가족들은 한동안 통쾌해했다. 이렇게 비교해 보니 그들의 집안이야말로 우스꽝스러웠다. 민지환은 더 이상 무슨 표정을 지어야 할지조차 몰랐다. 구재이는 정말로 잘못한 게 없는 듯했으니까. “봐, 너도 말 못 하잖아. 그러면서 나한테 이런 소리 할 자격이 있어? 됐어, 그냥 그 길로 조용히 집에나 가. 우리 둘은 이미 끝난 사이니까. 그렇게 한가하면 네 일이나 제대로 처리하는 게 낫지 않겠어?” 구재이는 차갑게 픽 웃었다. “여기서 나한테 시비 걸 시간에 차라리 이세희 씨나 좀 도와주지 그래? 듣자 하니 이세희 씨가 요즘 죽기 살기로 구한별 콘서트 무대에 오르려고 한다던데. 그 여자가 널 위해 그렇게 많은 걸 했는데, 왜 애꿎은 나한테 와서 지랄인데? 이세희 씨가 알면 엄청 상처받겠네.” 구재이의 말에 민지환은 그대로 얼어붙었다. 구한별의 콘서트라니. 그 일은 알고 있었지만 설마 구재이까지 알고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민지환은 김대영을 알지 못했고 김대영과 구한별의 관계도 몰랐다. 그래서 이 소식도 구재이가 이세희에게서 들은 것이라 착각했다. 이 몇 년 동안 이세희가 계속 구재이에게 문자를 보냈다는 사실을 민지환은 최근에 우연히 알게 되었다. 그 사실을 알았을 때 충격을 받기도 했다. 이세희가 왜 구재이에게 끊임없이 문자를 보낸 건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게다가 그가 본 사진들은 하나같이 수상했다. 분명 이세희와 아무 관계도 아닌데 사진만 보면 둘은 연인처럼 보였고 심지어 진짜 커플이라고 해도 믿길 정도였다. 민지환은 더는 버티지 못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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