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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화

“온나연에게 회향 알레르기가 있는 건 온 가족이 다 아는 일인 줄 알았는데요.” 여경민이 담담하게 말했다. 기분을 드러내지 않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정말? 그런 일이 있었어? 난 온나연이 알코올에만 알레르기가 있는 줄 알았는데. 휴... 저녁에 안 먹어서 다행이야. 안 그랬으면 큰일 날 뻔했어.” 소연수는 다행인 척 말했다. 사실 그녀는 온나연이 알코올뿐만 아니라 회향에도 알레르기가 있다는 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온나연을 망신시키기 위해 일부러 치킨에 회향 가루를 잔뜩 넣은 것이다. 그런데 매번 온나연이 치킨을 먹으려 할 때마다 여경민이 제지했다. 그때는 김희숙과 여소정을 위해 남겨두라고 했지만 지금 보니 온나연이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킬까 봐 걱정한 모양이었다. “이제 작은어머니께서도 아셨으니 앞으로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길 바라요. 안 그러면 이 조카가 정말로 화가 날 것 같아서요.” 말을 마친 여경민이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온화한 미소 같지만 실상은 악마의 경고나 다름없었다. “...” 소연수는 숨을 죽이고 감히 더 말하지 못했다. 여경민이 뒤돌아 방으로 들어가자 그녀는 비로소 숨을 헐떡이며 내쉬었다. 남자의 침실 문을 바라보며 온통 혼란스러운 마음에 어쩔 줄 몰랐다. 처음에는 여경민과 온나연이 따로 자는 걸 보고 분명히 사이가 틀어진 거라 이혼하는 게 아닐지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여경민이 온나연을 이렇게까지 감싸는 모습을 보니 둘 사이에 문제가 있는 것 같지도 않았고, 설령 이혼 얘기가 오간다고 해도 정말로 이혼하진 않을 것 같았다. 남자 측이 원하지 않으면 이혼할 수가 없으니까. 여경민은 방으로 돌아와 텅 빈 침대를 바라보자 마음속의 쓸쓸함이 다시금 밀려왔다. 신혼 때는 자주 온나연과 함께 여준상과 김희숙을 보러 본가에 내려왔고 그 덕분에 두 어르신은 온나연을 특히 좋아했다. 본가의 침실에는 온나연이 좋아하는 나비 표본, 곤충 표본, 새의 깃털 같은 것들이 많이 배치되어 있었다. 그들의 침대 머리맡에는 거대한 나비 표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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