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화
“알았어, 알았어. 원래 그냥 하루만 체험해보는 거였어. 너희가 싫다니까 그만두면 되지. 난 그냥 너희 도움 안 받으려고 그랬지.”
두 사람에게 둘러싸인 문유정은 일부러 수줍은 척 고개를 숙였다. 속으로는 우쭐함이 그대로인데도, 표정은 완벽하게 감춰져 있었다.
심유찬의 굳었던 미간이 풀리더니 눈에 미소가 어렸다.
“내 마음도, 인생도 다 네 건데. 돈이 뭐가 중요해?”
“맞아, 유정아. 그런 말 하지 마.”
임세윤의 목소리도, 표정도 문유정 앞에서는 한층 부드러워졌다.
세 사람 사이 분위기는 다른 누구도 끼어들 수 없을 만큼 단단하게 닫혀 있었다.
전생까지 겪었으니 이제는 아무렇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그 모습을 마주하자, 소이정의 가슴은 여전히 날카로운 칼끝에 찍힌 듯 저릿하게 아려왔다.
십여 년을 함께하며 평생 소이정 편이라고 말하던 심유찬과 임세윤은 문유정을 위해서라면 소이정의 생사조차 가볍게 밀어낼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녀는 애써 웃었지만, 웃는 사이 눈가가 금세 젖어들었다.
잠시 후, 소이정은 손등으로 눈물을 닦고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돌아서려 했다.
하지만 그 작은 움직임이 주변 몇몇의 시선을 끌었다.
피 묻은 그녀의 몰골을 본 사람들은 크게 놀라 급히 다가왔다.
“이정아, 너 왜 그래? 무슨 일 있었어?”
그녀가 말을 꺼내려던 순간, 뒤따라오던 문유정이 갑자기 끼어들었다.
“나... 좀 많이 취했나 봐. 머리가 너무 어지러워. 너희 중 아무나... 나 좀 병원까지 데려다줄 수 있어?”
살짝 늘어지는 부드러운 말투가 들리자마자 심유찬과 임세윤의 표정이 단번에 바뀌었다.
둘은 순식간에 문유정 곁으로 몰려들어 동시에 말했다.
“내가 데려갈게!”
“내가 데려갈게!”
양보는 없었다.
둘은 서로 기싸움을 하듯 그녀를 데리고 자리를 떠났다.
그렇게 소이정의 곁은 다시 텅 비었고, 이번에도 그녀 혼자만 남았다.
다음 날 아침, 그녀는 씻고 난 뒤 전날 화장실에서 몰래 녹음한 파일을 챙겨 경찰서로 향했다.
경찰은 녹음 내용을 확인하자 문유정에게 즉시 출석 요청을 넣었다.
하지만 몇 분 뒤 도착한 건 문유정이 아니라 심유찬과 임세윤이었다.
두 사람은 묻지도 않았고, 걱정하는 기색도 없었다.
경찰 앞에 서자마자 모든 상황을 단호하게 오해라고 못 박았다.
그리고 소이정이 뿌리치는 것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억지로 끌고 나갔다.
경찰서를 벗어난 뒤에서야 두 사람은 굳은 얼굴로 그녀를 향해 말했다.
“이정아, 너 왜 유정이한테 누명 씌워?”
그녀는 예상했던 반응이라 더 이상 설명할 생각도 없었다.
대신 휴대폰만 꺼내 녹음 내용을 다시 재생했다.
“오늘 운 진짜 좋네. 어떤 여학생이 돈 주면서 학생이랑 자라고 했어. 돈도 받고 여학생이랑 잘 수도 있는데, 누가 싫겠어.”
남성의 거친 목소리가 두 사람의 귀에 또렷하게 박혔다.
심유찬과 임세윤이 잠시 멈칫했지만, 결국 다시 차갑게 말했다.
“유정이가 그렇게 순한데, 어떻게 그런 짓을 하겠어? 이정아, 너... 이제 녹음까지 조작해?”
그들의 확신 섞인 말에 소이정은 헛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눈가는 붉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지금 그들의 마음속에는 문유정밖에 없었다.
그녀가 무슨 말을 하든, 어떤 증거를 내밀든 그들은 믿지 않을 것이다.
“그래. 여기서는 안 되겠네. 그럼 난 다른 데 갈게.”
소이정은 시선을 바닥에 둔 채 돌아섰다.
두 사람은 따라오지 않았다.
대신 심유찬이 냉담하게 말했다.
“이미 말해놨어. 남강시 안에서는 네 신고 어디서도 안 받아줄 거야.”
믿기 어려운 말이었다.
소이정은 돌아서 그들의 새까맣게 가라앉은 얼굴을 바라봤다.
전신이 굳어버릴 만큼 충격이 밀려오며 다리가 휘청였다.
어릴 때부터 함께 지낸 정 때문일까. 무너져가는 소이정을 보자 임세윤은 조금 누그러진 말투로 말했다.
“이정아, 그만 좀 하자. 애초에 유정이가 한 것도 아니고... 설령 했다 해도 같은 반 친구잖아. 곧 개강인데 굳이 사람 앞길 막을 필요는 없잖아...”
그 말이 이어지는 순간, 그녀는 이 둘이 평생 함께한 적도 없는 사람들처럼 너무나 낯설게 느껴졌다
자신이 그런 일을 당할 뻔했는데도, 그들은 오히려 문유정의 앞길 망치지 말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