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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

우르르 쾅! 번개가 번쩍이면서 천둥소리가 울리자 임수아는 공포에 질려 덜덜 떨면서 가방을 뒤적여 남편 윤시혁에게 간신히 전화를 걸었다. 어릴 적 트라우마로 천둥을 극도로 무서워하는 그녀에게 지금은 남편에게 거는 전화만이 유일한 희망이었다. 수화기 너머로 신호음이 길게 이어졌다. “무슨 일이야!” 마침내 연결된 전화 속 남편의 목소리는 차갑고 메마르기 그지없었다. 심지어 짜증까지 묻어났다. “시혁 씨, 나 지금 오성로에 있는데 비가 너무 많이 와서 택시 잡기가 힘들어요. 혹시 시간 괜찮으면 데리러 와 줄래요?” 그녀의 목소리는 평소처럼 부드럽고 나긋나긋했지만 지금은 어딘가 간절한 기색이 묻어 있었다. 조금 전 집에 연락해봤지만 운전기사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부재중이었기에 결국 남편에게 도움을 요청하게 된 것이다. “바빠.” 하지만 윤시혁의 목소리는 여전히 냉담했다. 전화가 끊기기도 전에 수화기 너머에서 부드러운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혁아, 이거 좀 봐줘...” 여자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윤시혁은 전화를 끊어버렸다. 빗물이 땅에 떨어져 둔탁한 소리를 냈고 광풍이 몰아치며 번개가 칠흑 같은 밤하늘을 갈랐다. 차가운 화면만이 남은 휴대폰을 바라보는 임수아의 심장은 얼어붙는 듯했다. ‘방금 그 여자 목소리... 왜 이렇게 낯익지? 설마...? 아니, 아닐 거야. 그 사람은 이미 미국으로 갔고 2년 동안 한 번도 돌아온 적 없어. 절대 그 사람일 리 없어.’ 임수아는 겨우 정신을 가다듬었다. 마냥 이렇게 기다릴 수만은 없으니 가까운 지하철역으로 가는 수밖에 없었다. 숨을 깊게 들이쉬고 가방을 머리 위로 든 채, 그녀는 빗속으로 뛰어들었다.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 때문에 앞은 보이지 않았고 귓가에는 빗소리와 천둥소리 외에도 다급한 외침이 들려오는 듯했다... “비켜요! 비켜!” 그 소리에 임수아는 본능적으로 뒤를 돌아봤다. 그 순간, 그녀를 향해 달려오는 전동 킥보드가 눈에 들어왔다. 임수아는 깜짝 놀라 몸을 피하려 했지만 쏟아지는 빗줄기와 미끄러운 노면 탓에 킥보드는 멈추지 못하고 그대로 그녀를 덮쳤다. 쾅! 둔탁한 소리와 함께 임수아는 땅바닥에 쓰러졌다. ... 세렌빌. 별장 문이 열리고 검은색 양복바지를 입은 긴 다리가 먼저 들어왔다. 반짝이던 가죽 구두와 빳빳하게 다려진 바지에는 빗물이 튄 흔적이 역력했다. “도련님.” 가정부 엄소희는 반가움과 동시에 감탄을 감추지 못하며 그를 맞이했다. 그는 마치 정교하게 빚어진 조각상 같았다. 또렷한 이목구비와 날렵한 턱선은 그의 강한 남성미를 한층 돋보이게 했고 그 주변엔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기품 어린 분위기가 감돌았다. 윤시혁은 차가운 표정으로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왔다. 그러다 무언가 떠오른 듯 고개를 돌려 엄소희에게 물었다. “수아는?” 낮고 묵직한 그의 목소리는 마치 깊은 울림을 가진 첼로 선율처럼 듣는 이를 사로잡았다. 엄소희는 윤시혁이 먼저 임수아를 찾을 거라고는 생각 못 했는지 잠시 멈칫했다가 이내 정중하게 대답했다. “아직 안 들어오셨습니다.” 윤시혁은 다시 한번 물었다. “기사한테 데리러 오라는 연락은 없었어?” “아니요.” 엄소희는 순간 망설이며 눈빛이 흔들렸지만 이내 답했다. 윤시혁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지만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 바로 그 순간, 덜컥하는 소리와 함께 현관문이 열렸다. 임수아가 돌아온 것이다. 그녀는 온몸이 비에 푹 젖은 채 물방울을 뚝뚝 흘리며 들어섰다. 이마에는 반창고가 붙어 있었고 다리를 절뚝거리는 데다 몸에는 남자 코트까지 걸치고 있어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그때 주방에서 달려온 집사 이경애는 임수아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 소리쳤다. “아이고, 사모님! 무슨 일이세요? 어디 크게 다치신 건 아니죠?” 임수아는 괜찮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돌아오는 길에 전동 킥보드랑 살짝 부딪혔어요. 괜찮아요.” 하지만 그녀의 얼굴은 핏기없이 창백했고 목소리는 심하게 갈라져 있었다. 임수아의 말에 윤시혁은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 그는 위압적인 자세로 임수아를 내려다보며 비꼬듯 말했다. “뭐야. 내가 데리러 안 가서 삐친 거야? 그래서 일부러 차에 치인 척하고 돌아와서 나한테 따지려고?” 임수아는 깜짝 놀라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윤시혁을 올려다봤다. 그가 자신을 이토록 냉정하게 의심할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 핏기없이 창백한 입술은 떨려왔고 목구멍에는 억울함이 꽉 막혀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윤시혁은 그녀의 침묵을 긍정으로 받아들였다. 잘생긴 얼굴에는 더욱 경멸스러운 표정이 떠올랐다. “게다가 일부러 남자 외투까지 걸치고 돌아왔네. 왜? 질투라도 유발하고 싶은 거야?” “아니야!” 임수아는 목소리를 높여 반박했다. 그녀는 정말로 차에 치였고 외투는 그녀를 친 남자가 온몸이 젖은 그녀를 보고 안쓰러워 빌려준 것일 뿐이었다. 하지만 윤시혁은 믿지 않는 눈치였다. 그는 귀찮다는 듯 그녀를 흘끗 보며 말했다. “수아야, 똑같은 수법은 여러 번 쓰면 재미없어.” 그의 목소리는 차갑기 그지없었고 심지어 혐오감마저 느껴졌다. 그의 말에 임수아는 굳어 버렸고 안색은 더욱 창백해졌다. 그녀는 과거 윤시혁의 동정을 사기 위해 다친 척한 적이 있었다. 임수아는 눈을 내리깔고 다리 옆에 둔 손을 꽉 쥐었다. “믿기 싫다면 어쩔 수 없지만 이번에는 거짓말 아니에요.” 윤시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임수아를 더 이상 쳐다보지도 않고 바로 몸을 돌려 위층으로 올라갔다. 이경애는 윤시혁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임수아에게 다가가 걱정스럽게 말했다. “사모님, 다치시고 비도 맞으셨으니 빨리 올라가서 쉬세요.” “네.” 임수아는 고개를 끄덕이고 위층으로 올라갔다. 방에 들어서자 그녀를 맞이하는 것은 고요한 침묵뿐이었다. 윤시혁은 침실로 돌아가지 않았던 것이다. 임수아는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휴대폰에서 카톡 알림이 울렸다. 확인해 보니 친구에게서 온 메시지였다. [수아야, 빨리 고태현의 인스타 봐 봐!] 임수아는 인스타에 들어가 몇 번 스크롤 하지 않아 고태현이 올린 글을 발견했다. [복귀 축하해! (사진)] 사진을 본 임수아의 동공이 순간 확장되었다. 단체 사진이었다. 7~8명 정도 되는 사람들 대부분은 익숙한 얼굴이었다. 제일 눈에 띄는 건 윤시혁 옆, 센터 자리에 앉아있는 여자... 서은채였다. 임수아는 휘청거렸다. 역시, 그때 잘못 들은 게 아니었다... 정말 서은채의 목소리였다. 윤시혁의 첫사랑 서은채... 그녀가 진짜 돌아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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