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화
강태리의 동공이 살짝 커졌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아랫배에 손을 얹었다.
배는 여전히 평평했지만 그 안에는 이미 작은 생명이 자라고 있었다.
강태리는 손끝이 떨렸고 머릿속은 혼란스러웠다.
육지헌이 몸을 숙여 그녀에게 다가왔다. 그의 목소리에는 진심 어린 사과가 담겨 있었다.
“그동안 너와 다투는 바람에 널 너무 힘들게 했어. 이제 하늘이 우리에게 이 아이를 주셨으니 지난 일은 다 잊고 다시 시작하는 건 어떨까? 우리 행복하게 잘 살자.”
그의 손가락이 그녀의 긴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쓸어내렸다. 마치 그들이 가장 사랑했던 시간으로 돌아간 듯 그의 행동은 더할 나위 없이 다정했다.
“내가 너와 아이를 잘 돌볼게. 우리 셋이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응?”
강태리는 입술이 파르르 떨렸지만 어떤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언젠가부터 그녀는 육지헌과의 아이를 간절히 바랐다.
유아용품 가게 앞을 지나칠 때마다 한참을 멈춰 서서 바라보곤 했고 세 식구가 다정하게 지내는 모습을 볼 때마다 부러움을 느꼈었다.
그런데 그토록 바라던 아이가 가장 절망적인 순간에 찾아온 것이다.
그녀가 혼란스러워할 때 병실 문이 가볍게 열렸다.
소민희가 하얀 백합 한 다발을 들고 들어섰다. 그녀의 얼굴에는 적절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강태리 씨가 깨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제가 직접 꽃집에 가서 제일 신선한 백합으로 골라왔어요.”
그녀는 우아하게 꽃다발을 침대 옆 테이블에 놓았다. 강태리의 아랫배에 시선이 닿았을 때 그녀의 눈빛이 순간적으로 차갑게 변했다. 비록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뱀처럼 오싹한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정말 좋은 소식이네요.”
소민희가 육지헌 옆에 앉아 걱정하는 듯한 표정으로 그에게 물었다.
“그런데 지헌 오빠, 지난달에 강태리 씨가 이웃 도시로 출장 갔었지? 그때 많이 힘들다고 매일 밤새워 일한다고 하더니, 갑자기 임신이라니...”
그녀는 말을 흐리며 의도적으로 의미심장한 여운을 남겼다. 그녀의 모든 말은 치밀하게 계산된 듯했다.
육지헌의 미소가 옅어졌다.
“민희야, 그게 무슨 뜻이야?”
“그냥 강태리 씨 건강이 걱정돼서 그래.”
소민희는 강태리를 향해 부드럽지만 날카로운 기색이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강태리 씨, 마지막 생리가 언제였죠? 정확한 임신 시기를 확인하기 위해 좀 더 세밀한 검사를 받아보는 건 어때요? 아무래도 지난번에 힘든 일을 많이 겪으셨으니 혹시라도 날짜를 착각하면 태아에게 안 좋을까 봐요.”
강태리는 눈을 감았다. 쳐다보는 것조차 귀찮았다.
병실 안에 퍼지는 백합 향기가 그녀를 속이 메스껍게 만들었다. 소독약 냄새와 뒤섞인 그 향기가 마치 그녀의 처지를 비웃는 것 같았다.
육지헌이 눈썹을 찌푸렸다.
“태리야, 민희 말이 맞아. 다시 한번 검사를 받아보는 게 좋겠어. 너와 아이의 건강을 위해서라도.”
소민희는 이 상황을 놓치지 않고 쐐기를 박았다.
“강태리 씨, 왜 아무 말도 안 해요? 몸이 안 좋은 건가요? 아니면...”
그녀는 적절하게 말을 멈췄는데 그녀의 췄는데 무언가를 암시하는 것 같았다.
“혹시... 말 못 할 사정이 있는 건가요?”
강태리는 마침내 눈을 떴다. 그리고 차갑게 소민희를 노려보았다.
“다 말했어?”
“태리야, 민희도 널 걱정하는 거야.”
육지헌의 목소리에는 이미 의심이 담겨 있었다. 그는 심문하는 눈빛으로 강태리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소민희는 바로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육지헌의 소매를 가볍게 잡았다.
“지헌 오빠, 강태리 씨한테 그렇게 말하지 마. 태리 씨도 너무 놀라서 그럴 거야. 아무래도...”
그녀는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강태리를 힐끗 보았다.
“이 아이가 갑자기 찾아온 거라... 그때 강태리 씨 집에 늦게 들어오는 날이 많았고 정신 상태도 안 좋았다고 하던데...”
강태리는 육지헌의 두 눈에 배인 점점 짙어지는 의심의 기운을 보며 마음이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그녀는 여전히 평평한 아랫배를 쓰다듬었다. 그녀가 꿈꿔왔던 아이 그러나 이제는 의심의 근원이 되었다니.
그녀가 가족의 지원이 필요한 지금,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의심의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육지헌은 오랫동안 침묵하더니 마침내 말을 꺼냈다. 그의 목소리는 쉰 것처럼 불편하게 들렸다.
“강태리, 솔직하게 말해줘. 이 아이가...”
그는 말을 끝까지 마치지 않았지만 그 속에 담긴 의심은 명백했다.
이 순간 강태리는 자신의 마음이 산산조각 나는 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내가 당신 마음에서 이렇게 추잡한 여자였어? 우리 사이에 마지막 남은 믿음까지 이젠 사라졌네.”
“피곤해.”
그녀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목소리에는 피로한 기색이 역력했다.
“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