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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이혼 서류를 준비해 줘

서아린은 몸부림치며 말했다. “이러지 마, 오늘은 정말 하기 싫어.” 주민우는 코웃음을 치더니 억지로 그녀를 일으켜 침대 위에 엎드리게 했다. 굴욕스러운 자세에 서아린은 덜컥 겁이 났다. 이내 밀쳐내려는 순간, 갑작스럽게 울린 휴대폰 벨 소리에 그는 동작을 멈췄다. 주민우는 힐끗 쳐다보더니 침대에서 내려와 휴대폰을 집어 들고 쌩하니 안방을 나갔다. 발신자 표시를 보지 못했지만 누가 전화했는지는 짐작할 수 있었다. 바로 심유라였다. 매달 이날 밤이면 꼭 연락이 왔다. 주민우는 그때마다 서재로 가서 전화를 받았고, 통화는 늘 30분 이상 이어지곤 했다. 그동안 두 사람의 관계를 의심하지 않았던 이유는 심유라의 전화를 받고 나면 주민우가 서둘러 자리를 뜨기 바빴지만 오직 이날만은 달랐기 때문이다. 서아린은 문득 궁금증이 들었다. 도대체 30분 동안 무슨 이야기를 나누길래 심유라가 흔쾌히 그녀와 잠자리를 갖는 걸 허락했을지. 주민우가 서재로 들어가자 서아린은 소리 없이 뒤를 따라갔다. 그녀가 엿들을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듯, 주민우는 문을 살짝만 닫았다. 덕분에 서아린은 문틈 사이로 안쪽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서재 안에는 불이 꺼져 어둠 속에서 어렴풋이 움직이는 형체만 눈에 들어왔을 뿐,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그는 영상 통화를 하고 있었고, 휴대폰 화면에 심유라의 얼굴이 나타났다. “또 서아린이랑 했어?” 휴대폰 너머로 심유라가 상처받은 목소리로 푸념했다. “오늘 몸이 안 좋다고 해서 못 했어.” “그래도 결국엔 할 거잖아. 할머니가 빨리 애 가지라고 재촉한다면서? 어차피 언젠간 잠자리를 가질 텐데!” 스피커를 타고 여자의 낮은 흐느낌이 이어졌고, 그 소리는 유난히 애처로웠다. “서아린의 위에 올라타는 네 모습만 떠올려도 질투 나서 미쳐버릴 것 같아.” 주민우는 미안한 듯 그녀를 달래주기 급급했다. “유라야, 내 아이를 낳을 사람은 너뿐이야. 서아린이 임신하는 일은 절대 없어. 걔 매일 먹는 비타민 있지? 내가 진작에 피임약으로 바꿔놨어.” 그의 목소리는 차분하다 못해 섬뜩할 정도로 냉정했다. “그동안은 가족들한테 보여주려고 연기한 거야. 내가 진짜로 원하는 사람은 언제나 너였어. 울지 마, 자기야. 서아린이 잠들면 바로 갈게.” 문밖에 서 있는 서아린은 온몸의 피가 얼어붙은 듯 굳어버렸다. 방금 들은 말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비타민이 피임약이었다니? 즉 매번 거사를 마치고 건네주었던 ‘비타민’과 그동안 배려라고 생각했던 행동들이 사실은 철저히 계획된 사기였다는 것이다. 서아린은 냉소를 지었다. 아이 얘기가 나올 때마다 ‘운명에 맡기자’라는 핑계를 댄 이유가 이제야 이해가 되었다. 주민우는 애초에 그녀와 아이를 가질 생각이 없었다. 더군다나 임신하지 못한다면 집에서 받게 될 비난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러고 나서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는 이제 무관심했다. 서아린은 침실로 돌아가서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이혼합의서 하나 작성해줘. 주민우랑 이혼할 거야.” 그 뒤로 주민우는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서아린은 밤새 잠을 자지 못했고, 다음 날 아침 일찍 친구가 보낸 이혼합의서를 받았다. 프린트해서 서명하고, 회사에 가서 주민우를 찾으려고 했는데 고개를 돌리자마자 그가 밖에서 들어오는 게 보였다. 손에 든 커다란 빨간 장미 한 다발은 족히 99송이는 되어 보였다. 하지만 꽃잎은 이미 시들시들했고, 한동안 방치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서아린은 피식 웃었다. 다행히 아침 일찍 심유라가 인스타그램에 올린 사진을 보고 알게 되었다. 그녀는 중요한 사람한테서 무려 몇억짜리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선물 받고 겸사겸사 꽃다발까지 가졌다고 했다. 만약 이 게시물을 보지 못했더라면 주민우가 진짜 양심을 되찾았다고 믿었을지도 모른다. 서아린은 이혼합의서를 건네주며 말했다. “우리 이혼...” 말을 마치기도 전에 주민우가 갑자기 손에 들고 있던 꽃다발을 그녀의 품에 밀어 넣었다. “어제 못 했으니까 대신 이거 줄게.” 서아린은 어리둥절했다. 넋을 잃은 와중에 남자는 그녀의 손에 들고 있던 서류를 빼앗아 갔다. 이내 비아냥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왜? 서씨 가문 또 자금난이야?” 말이 끝나자 주민우의 주머니에 있던 휴대폰이 울렸다. 그는 이혼합의서 내용을 확인하지도 않고, 바로 마지막 페이지에 서명하고는 서류를 다시 건네주며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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