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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3화

한참 동안 침묵을 지키고 있던 차건우는 병색이 짙게 드리운 서아라의 얼굴을 바라보며 목소리를 부드럽게 낮추어 말했다. “난 그냥 천아연이 그런 사소한 일로 날 귀찮게 구는 게 싫었을 뿐이야. 네가 신경 쓰인다면 앞으로 그런 일은 없을 거야.” 서아라는 그의 잘생긴 얼굴을 똑바로 응시하며 맞받았다. “어떤 일들은 한번 발생하고 나면 없었던 일이 될 수 없어. 이번 납치 사건도 마찬가지고.” 남자의 어둡고 깊은 눈동자가 서아라를 꿰뚫는 듯이 응시했다. 순간 서아라는 자신의 모든 속마음이 그 앞에 트여 보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라야.” 차건우가 조용히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입을 열었다. “다른 일은 다 네가 하라는 대로 할게. 하지만 이번 납치 사건은 아직은 확실한 증거가 없잖아.” “넌 나를 믿기나 해?” 서아라의 물음에 차건우는 담담한 어조로 답했다. “내가 너를 믿지 않았다면 심은우 사건을 계속 조사하지도 않았겠지. 하지만 내가 믿는다고 해서 달라지는 게 뭐가 있겠어?” 그 말이 맞았다. 차건우의 믿음만으로는 서아라의 억울함을 풀어줄 수도 천아연이나 대통령 측에 책임을 물을 수도 없었다. 서아라는 현명한 여자였기에 그 도리를 모를 리 없었다. 서아라는 희미하게 입꼬리를 올리며 물었다. “그럼 증거를 찾지 못하면 나는 계속 이렇게 억울하게 당해야만 하는 거야?” 차건우는 얇은 입술을 꽉 깨물며 말을 이었다. “이미 귀국할 준비는 끝났어. 네 몸이 조금만 회복되면 바로 떠나자.” 서아라는 잠시 멈칫하며 몸을 뒤로 살짝 기대었다. “조사도 다 끝나지 않았는데 돌아간다고?” 차건우의 목소리는 여전히 차분했지만 그 속에는 흔들림 없는 결의가 담겨 있었다. “내가 직접 심은우를 심문하겠어. 지금으로선 심은우가 네가 납치당했다는 사실을 증명해 줄 유일한 사람이야. 만약 그에게서도 아무것도 캐내지 못한다면 그때 가는 게 좋지 않을까?” 서아라는 잘 알고 있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차건우는 당황한 적이 없고 태산이 무너져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냉철한 이성과 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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