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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신서영이 피식 웃더니 경멸 섞인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생각해볼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랑 서후 결혼식이 이제 한 달 정도밖에 안 남아서 내일 오전에 스카이 가든에서 양가 부모님이랑 같이 만나 결혼에 대해 상의하기로 했어. 들러리 드레스도 준비하기 시작했으니까 답 최대한 빨리 줘.” 아니나 다를까 신서영의 얼굴에 나타났던 조롱이 눈에 띄게 사라졌다. “내일 오전? 스카이 가든?” “응.” “알았어. 생각해보고 알려줄게. 꼭 행복해야 해.” ‘행복하라고? 어이가 없어서 원.’ 하지만 이번 생에서는 진짜 행복하게 살 것이다. 나는 웃으며 그 말을 받아들였다. 다음 날 아침 양가 부모님은 약속대로 스카이 가든에 모였다. 진서후의 엄마 윤성희와 나의 엄마 권혜진은 자매처럼 친한 사이라 못하는 얘기가 없었다. 새로 산 옷 얘기로 한참 동안 떠들더니 이번엔 올해 몇 킬로그램 쪘다는 얘기로 넘어갔다. 분위기가 아주 화기애애했다. 그들과 달리 나의 아빠와 진서후의 아빠 진태현은 별말 없이 조용히 있었다. 진서후는 약속 시간보다 조금 늦게 도착했다. 자리에 앉아서도 계속 핸드폰만 들여다봤다. 내가 앉은 자리에서 그가 신서영과 메시지를 주고받는 게 훤히 보였다. 그러다가 내가 볼까 봐 걱정됐는지 되레 나에게 눈을 부릅떴다. “너도 핸드폰 좀 봐. 나만 쳐다보지 말고.” 그 말에 웃고 있던 윤성희의 표정이 확 굳어졌다. “진서후, 유나한테 왜 그딴 식으로 말해?” 진서후는 입만 삐죽거릴 뿐 더는 뭐라 하지 않고 다시 신서영과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잠시 후 신서영이 화려하게 차려입고 나타났다. 연노랑 원피스에 반짝이는 헤어핀을 꽂은 그녀는 공주처럼 아름다웠다. 그리고 일부러 우리 옆을 지나가더니 나를 보고는 싱긋 웃으며 인사했다. “이런 우연이 다 있네? 여기서 만날 줄은 몰랐어.” 우연? 우연일 리가. 나는 어젯밤에 일부러 장소를 알려줬다. 당황한 진서후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뭐라 말하고 싶었으나 차마 입을 떼지 못했다. “너...” 윤성희가 의아한 듯 눈썹을 찌푸렸다. “아는 사람이야?” 내가 설명했다. “같은 반 친구 신서영이에요. 우리 꽤 친하거든요.” 그 말에 윤성희가 반갑게 웃었다. “같은 반 친구구나. 밥 먹었어? 곧 음식 나오는데 같이 먹자.” 그러자 신서영이 환하게 웃었다. “고맙습니다. 그럼 사양하지 않을게요.” 그러고는 대놓고 진서후의 옆자리에 앉았다. 얼굴엔 달콤한 미소를 띤 채 호기심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유나랑 서후 졸업하면 바로 결혼한다던데 오늘은 결혼에 대해 상의하려고 모이신 거예요?” 윤성희는 무척이나 기뻐하면서 나를 보며 눈을 반짝였다. “맞아. 결혼식 준비는 이미 다 끝났어. 이제 서후랑 유나가 졸업만 하면 돼. 유나야, 앞으로 넌 내 며느리이자 딸이야.”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옆자리의 두 사람을 곁눈질했다. 신서영이 테이블 밑에서 다리로 진서후를 건드리자 진서후의 얼굴에 긴장한 기색이 역력해지더니 이마에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들킬까 봐 꼼짝도 못 하는 모습에 나는 웃음이 터질 뻔했다. 그와 달리 신서영의 표정은 차분하기만 했고 부러운 척하며 말했다. “벌써요? 어젯밤에 유나가 저한테 들러리 해달라고 급하게 부탁한 이유가 있었네요. 두 사람의 행복한 순간을 함께할 수 있다면 들러리 얼마든지 해줄 수 있어요.” “들러리?” 그때 진서후가 갑자기 핸드폰을 탁 내려놓더니 신서영을 놀란 눈으로 쳐다보고는 이내 나를 노려봤다. “어떻게 서영이한테 들러리 해달라고 할 수 있어?” 진서후의 감정이 격앙되어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만 같았다. 나는 의아해하며 눈을 깜빡였다. “왜 그렇게 화를 내? 그럼 서영이를 신부로 세울까?” 진서후는 마음 같아서는 그러고 싶다고 말하고 싶었으나 양가 부모님 앞이라 꾹 참고 고개를 숙였다. 나는 속으로 차갑게 웃었다. 진서후가 용기를 내어 솔직히 말했다면 오히려 남자답다고 인정했을 텐데. 역시 그는 그럴 배짱이 없었다. 윤성희가 화난 듯 눈썹을 찌푸렸다. “유나야, 무슨 그런 터무니없는 소리를 해? 서후 신부는 너밖에 없어. 앞으로는 그런 농담 하지 마.” 나는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장난친 거예요. 서후 마음속에 저밖에 없다는 거 알아요.”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차를 한 모금 마셨다. 그사이 신서영의 얼굴은 이미 굳어있었고 조금 전 당당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바로 그때 음식이 나오자 윤성희가 말했다. “자, 밥 먹자. 유나 친구도 눈치 보지 말고 많이 먹어.” 신서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습니다.” 나는 갈비찜을 제일 좋아했던 터라 오늘도 특별히 주문했다. 내가 갈비 한 점을 집으려던 순간 신서영도 정확히 같은 갈비를 노렸다. 그녀는 미안해하는 척하며 웃었다. “미안. 나도 이거 좋아하거든. 내가 양보해줄게.” 그 말에 나는 망설임 없이 갈비를 내 그릇에 담았다. “서영이 넌 참 착한 애야.” 진서후가 불쾌한 표정으로 나를 쏘아봤다. 가뜩이나 창백하던 얼굴이 더 하얗게 질렸다. “온유나, 서영이한테 양보하면 안 돼? 서영이 지금 손님이야.” 나는 갈비를 씹으며 태연하게 말했다. “서영이가 양보하겠다고 했잖아. 우리 엄마 아빠랑 이모 아저씨한테 물어봐. 넌 못 들었어?” “너...” 진서후의 두 눈에 믿을 수 없다는 기색이 스쳤다. “온유나, 너 예전엔 이러지 않았잖아. 언제부터 이렇게 까칠해졌어?” ‘예전에?’ 그렇다. 예전에는 남들 기분만 신경 쓰느라 나 자신을 돌보지 않았다. 하지만 이젠 그러고 싶지 않았다. 나를 비난하는 게 우스울 뿐이었다. 윤성희가 살짝 화난 목소리로 말했다. “갈비 한 점 가지고 왜들 이렇게 싸워?” 그러면서 신서영의 그릇에 갈비 한 점을 집어줬다. “많으니까 이거 먹어. 부족하면 더 시키면 돼.” 신서영은 웃으며 감사 인사를 전한 뒤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했다. “괜찮아, 서후야. 아주머니가 갈비를 집어주셨으니까 유나랑 싸우지 마. 두 사람 곧 결혼할 사이인데 앞으로 유나한테 많이 양보해야지.” 진서후의 표정이 그제야 조금 누그러졌다. 신서영이 젓가락을 내려놓고 가방을 들었다. “다 제 잘못이에요. 저만 없었어도 유나랑 서후가 싸우지 않았을 텐데. 이만 일어날게요. 아저씨, 아주머니, 대접 감사해요. 다음에 기회 되면 또 만나요.” 그러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갔다. 초조해진 진서후는 신서영의 뒷모습을 계속 빤히 쳐다봤다. 쫓아가고 싶었으나 그럴 배짱이 없었다. 나는 진서후를 살짝 밀었다. “아까는 내가 잘못했으니까 가서 서영이한테 사과해. 안 그러면 나중에 사이가 어색해질 수 있어.”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는 문밖으로 달려나갔다. 윤성희와 진태현, 그리고 우리 부모님은 모두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었다. 잠시 정적이 흐른 뒤 엄마가 입을 열었다. “유나야, 네 친구 되게 예쁘게 생겼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우리 학교 퀸카인데 당연히 예쁘죠.” “서후한테 네 친구랑 너무 가까이 지내지 말라고 해. 서후 좀 이상해 보여.” “엄마, 걱정하지 말아요. 서영이 착한 애예요. 우리랑도 잘 지내고 많이 도와주기도 했고요.” “넌 너무 순진해서 문제야. 나중에 누가 널 팔아도 돈 세주겠다고 하겠어.” 윤성희가 어색하게 헛기침했다. “언니, 애들이 크는 걸 우리가 직접 봤잖아요. 서후는 유나한테 미안한 짓을 할 리가 없어요. 만약 그런다면 내가 제일 먼저 저 녀석 다리를 부러뜨릴게요.” 엄마는 그 말을 듣고서야 더는 뭐라 하지 않았다. 식사가 거의 끝나가는데도 진서후는 돌아오지 않았다. 윤성희가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 “서후 이 녀석 대체 뭘 하러 간 거야?” ‘생각할 것도 없이 신서영과 데이트하러 갔겠지.’ 속으로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겉으로는 웃으며 말했다. “아빠, 엄마, 아저씨, 이모, 제가 깜빡하고 말 안 했는데 서후가 학교에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겨서 먼저 간다고 저한테 문자 왔었어요.” 윤성희가 생각에 잠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다 같이 사진 찍기로 했는데 어쩌지?” “괜찮아요. 우리끼리 먼저 찍고 서후가 시간 날 때 또 찍죠, 뭐. 급할 것도 없는데.” 엄마가 살짝 샘내며 말했다. “유나 너 서후만 감싸는구나. 결혼하면 나랑 네 아빠 쳐다보지도 않는 건 아니겠지?” “그럴 리가요. 엄마 아빠는 영원히 제 부모님이에요.” ‘진서후가 뭐라고.’ 지난 생에서 신서영이 계단에서 나를 밀어버린 바람에 심하게 다쳤었다. 진서후는 내가 깨어나지 못할 거라 생각하고 우리 부모님에게 내가 죽었다고 거짓말했다. 그러다가 급하게 병원으로 달려가던 부모님은 교통사고로 모두 목숨을 잃었다. 그 생각에 나는 가슴속에서 분노가 불타올라 주먹을 꽉 쥐었다. ‘두 사람 꼭 대기를 치르게 할 거야.’ 식사를 마친 후 양가 가족은 학교로 사진을 찍으러 갔다. 마침 학교 정문에서 진서후를 만났는데 양손에 쇼핑백을 잔뜩 들고 있었다. 아무래도 방금 쇼핑을 다녀온 듯했다. 윤성희가 차에서 고개를 내밀며 물었다. “유나한테 학교에 급한 일 있다고 했다며? 그런데 쇼핑은 왜 간 거야?” 진서후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저...” “뭘 산 거야?” “그게...” 진서후는 머뭇거리다가 결국 내게 시선을 고정했다. “이거 다 유나 주려고 산 거예요. 이따가 사진 찍을 때 옷 여러 벌 갈아입고 예쁜 사진 남겨주려고요.” 그 말에 나는 하마터면 웃음이 터질 뻔했다. 하지만 귀찮아서 그의 거짓말을 까발리지 않고 일부러 엄청 감동한 척했다. “진짜? 서후야, 역시 너밖에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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