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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박은영은 심장을 쿡 찌르듯 아프고 안색이 새파랗게 질렸다. 집안에 설치한 에어컨은 늘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지만 지금 그녀의 마음은 살얼음장처럼 굳어버렸다. 박은영이 아무 말 없자 유태진도 서서히 그녀의 얼굴에서 시선을 뗐다. “연주 어머님 암 말기라 유일한 소원이 바로 딸아이가 의지할 데가 있는 거야. 연주 곁에 있어 줄 사람이 필요하니까 넌 말썽 피우지 말고 잠자코 내 와이프로 살아. 그럼 나도 더는 안 건드릴게.” 무슨 외도를 이렇게 당당하게 말하는 걸까? 건드리지 않는다고? 박은영은 기가 차서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녀는 너덜너덜해진 심장을 부여잡고 간신히 말했다. “곁에 있어 줄 사람이 필요한데 왜 나한테 왔어요? 얼른 가보세요.” 말을 마친 그녀는 위층에 올라가 매정하게 문을 잠갔다. 몇 분 후 아래층에서 자동차 엔진 소리가 들렸다.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유태진이 서연주 찾으러 간 게 뻔했다. 박은영은 수척해진 몸을 겨누고 욕실에 들어가 찬물에 얼굴을 헹궜다. 차디찬 물이 얼굴에 닿으면 조금이라도 머리가 맑아질 것 같아서... 이어서 노트북을 열고 3년 전에 추가했던 변호사에게 연락해 이혼합의서를 한 부 작성해달라고 부탁을 드렸다. “혹시 뭐 특별한 요구사항 같은 건 있으세요? 집, 차, 재산 분할 등등이요.” 변호사의 물음에 그녀는 한참 고민하다가 담담하게 대답했다. “아무것도 필요 없어요.” 유태진도 단념할 마당에 그딴 것들이 뭐가 중요할까? 또한 인터넷을 검색해봤더니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으면 절차가 더 빨리 진행된다고 한다. 날이 갈수록 쇠약해지는 몸을 이끌고 이 남자와 흥정하고 잴 필요가 없어서 더욱 좋았다. 변호사는 곧장 그녀에게 완전한 합의서를 보내주었다. 박은영은 프린트를 마친 후 핏기없는 손으로 겨우 펜을 들어서 서슴없이 서명했다. 힘이 없어서 손가락이 파르르 떨리지만 그녀는 여느 때보다 단호한 태도였다. 이어서 아픈 몸을 이끌고 대충 옷가지들을 챙겼다. 현관 입구에 다가간 그녀는 3년 동안 손수 가꿔온 이 집을 쭉 둘러보았다. 그윽한 눈길로 한 바퀴 훑어보다가 미련 없이 집 밖을 나섰다. 다음날 박은영은 휴가를 내고 퀵 서비스를 불러서 어제 프린트한 이혼합의서를 로열 그룹 로비 프런트 데스크로 보냈다. 유태진이 이런 사소한 택배를 직접 받을 일이 없기에 그녀는 수신인을 조기현으로 적었다. 사실 박은영은 유태진과 결혼한 뒤로 줄곧 로열 그룹에서 근무했다. 유태진은 그들의 부부 관계를 공개하기 싫었고 또한 회사에서 그녀가 접근하는 걸 원치 않아 홍보팀에 배치하여 회사 이미지 관리를 담당하게 했다. 이 몇 년간 박은영은 뛰어난 실력으로 홍보팀 팀장 자리까지 올랐다. 3년 내내 단 한 번 결근이나 조퇴를 한 적도 없었다. 그녀가 이토록 잘 해낸 것은 매사에 완벽하게 해내려고 노력하는 습관 때문이지 이 일을 좋아해서도, 또 혹은 전공과 관련된 것도 아니다. 어느덧 이혼을 결심했으니 로열 그룹에 계속 남을 필요가 없다. 퀵을 보낸 후 박은영은 시계를 내려다봤는데 10시가 다 돼갔다. 이제 가장 중요한 일만 남았다. 그녀는 주먹을 꽉 쥐었다. 경운시 도성 교도소. 핸들을 잡은 그녀의 손에 이따금 땀이 났다. 3년 만의 만남이라 긴장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녀의 양 오빠 주도영이 오늘 출소한다. 박은영은 한 달 전에 룸을 예약하여 그를 위해 환영회를 열어주기로 했다. 주도영은 박은영의 아빠가 입양한 아이였고 어려서부터 박은영과 함께 지내왔다. 잔혹하고 탐욕스러운 주씨 일가에서 오직 주도영만이 그녀에게 잘해줬다. 십여 년 동안 죽을힘을 다해 그녀를 지켜줬고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그녀에게 단 한 번도 모진 말을 한 적이 없었다. 그는 전에 이렇게 말했었다. “은영아, 이 세상 모두가 너를 실망시키는 한이 있어도 난 절대 아니야!” 박은영은 거울을 들여다봤는데 손바닥만 한 작은 얼굴은 안 그래도 병 때문에 창백하기 그지없었다. 그녀는 일부러 볼 터치를 더 진하게 해서 보통 사람과 별반 다름없어 보이게 했다. 오빠를 걱정시키지 않도록 진통제를 한 알 더 먹고 선글라스와 볼캡까지 썼다. 눈앞에 대문이 서서히 열렸다. 박은영은 차 문을 열고 안에서 내려왔다. 지금 이 순간이 꼭 마치 꿈만 같았다. 훤칠한 키에 검은 옷을 입은 남자가 낡은 배낭을 들고 성큼성큼 걸어 나왔다. 짧고 깔끔한 흑발에 장난기 넘치는 눈매로 차분하게 주위를 둘러보더니 그녀를 발견한 듯했다. 그 순간 박은영은 심장이 멎을 것만 같았다. 목이 바짝 마르고 눈시울이 촉촉이 젖은 그녀, 발걸음은 저절로 주도영을 향했다. “오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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