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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47화

박은영은 마음속으로 여러 번 연습했다. 그에게 이렇게 말할 생각이었다. “지금은 잠시 상황을 맞춰드리겠지만 나중에 이혼을 원하신다면 언제든 동의하겠습니다.” 그 말을 꺼내려던 순간, 유태진이 식탁 위에 무언가를 내려놓았다. 작은 상자였다. 박은영은 단번에 그것이 반지 상자임을 알아챘다. “결혼반지야. 마음에 안 들면 다른 걸로 다시 사.” 그녀는 잠시 말을 잃었다. 그가 이런 준비까지 했다는 사실이 뜻밖이었다. 하지만 그의 말투에서 반지는 ‘의미’가 아니라 ‘절차’에 가까운 물건이라는 걸 느꼈다. ‘그래서 마음에 안 들면 바꾸라는 말을 덧붙였겠지.’ 박은영은 불평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이 결혼 자체가 처음부터 자신의 몫이 아니었으니까. 그의 인생에 ‘끼어든’ 사람은 자신이었다. 그래서 상자를 열어보지도 않고 손에 쥐었다. “괜찮아요. 아무거나 다 좋아요.” 그녀의 대답에 유태진은 주머니 속의 커플 반지를 손끝으로 천천히 굴렸다. “그래.” 짧은 한마디와 함께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침실 쪽으로 걸어갔다. 박은영은 조용히 숨을 내쉬다가 그를 따라 일어섰다. ... 유태진은 방을 둘러보며 눈썹을 찌푸렸다. 방 안에는 그녀의 흔적이 전혀 없었다. 옷도, 화장품도, 스킨케어 제품도 보이지 않았다. 그가 직접 주문해 둔 화장대 역시 새것 그대로였다. 보통 여자들은 새집에 들어오면 가장 먼저 침구 세트를 바꾼다고 들었는데 그의 침대에는 여전히 진회색 실크 커버가 덮여 있었다. 그는 잠시 멈춰 서서 방을 한 바퀴 둘러봤다. 그리고 문을 닫았다가, 다시 열었다. 역시 잘못 본 게 아니었다. 정말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때 맞은편 문이 열리며 박은영이 그곳에서 나왔다. “너 거기서 뭐 해?” 박은영은 순간 당황했지만 곧 고개를 숙였다. “여기 방... 제가 쓰면 안 되는 건가요? 그럼 다른 방으로 옮길게요.” 그는 아무 말 없이 그녀를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왼쪽 방으로 가. 원래 그 방이 네 거야.” 박은영은 그가 불편한 걸까 싶어 망설이다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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