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화 간통 현장
한경민이 바람을 피우는 것을 유수진은 알고 있었지만 그가 밖에서 어떻게 놀든 전혀 개의치 않고 그냥 내버려 뒀다.
이를 참지 못한 절친 강미나는 유수진을 억지로 끌고 가서 한경민의 내연녀를 혼내주려 했다.
호텔 입구, 강미나가 유수진을 끌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수진아, 내가 알아봤는데 한경민이 오늘 그 여우 같은 년을 데리고 여기서 방을 잡았더라고. 오늘 꼭 그 여우 같은 년의 본모습을 드러내게 할 거야. 그리고 영상을 찍어 인터넷에 올려 네 한을 풀어줄게.”
미리 알아본 방 번호 앞에 도착한 두 사람은 가방에서 준비해 온 리무버도 꺼냈다.
“됐어, 그냥 가자.”
유수진은 강미나의 팔을 잡으며 떠나려 했다.
유수진이 한경민의 사생활을 신경 쓰지 않는 게 아니라 애초에 한경민을 좋아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밖에서 여자와 뭘 하든 유수진과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그들은 단지 계약 결혼이었기에 일을 크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강미나는 종업원인 척하며 문을 두드렸다.
“안녕하세요. 하우스키핑입니다.”
방문이 열린 순간, 유수진이 미처 강미나를 저지하기도 전에 강미나는 손에 있던 리무버를 앞으로 쏟아부었다.
“수진아, 이 개 같은 남녀 좀 봐! 스위트룸을 빌려 이런 짓거리를 하다니!”
그러고는 바로 핸드폰을 꺼내 녹화를 시작했다.
찰칵찰칵.
일련의 조작 후 방 안을 샅샅이 뒤져도 여자 흔적 하나 없는 것을 발견한 강미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눈앞의 남자는 한경민이 아니었고 방 안에는 여자도 없었다.
남자의 잘생긴 얼굴에 뿌려진 리무버 때문에 강렬하고 훤칠한 남자의 오관에 물기가 맺혔다. 이마에 있던 앞머리까지 흠뻑 젖었지만 초라해 보이기는커녕 오히려 더 매혹적이고 섹시하게 보였다.
위험한 눈을 가늘게 뜨고 유수진을 바라보는 남자는 온몸으로 날카로운 기운을 풍겼다.
자리에 얼어붙은 유수진은 이 순간 세상이 멈춘 듯했다.
주이찬.
국내 최고 신유 엔터테인먼트의 대표이사, 국내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절반 이상의 점유율을 거머쥐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해외 여러 나라에도 투자하여 큰 흥행을 이룸으로서 몸값이 조 단위를 넘는 인물이다.
또한 유수진이 차버린 전 남자친구이기도 했다.
4년이 지났지만 남자는 하나도 변한 것 같지 않았지만 또 왠지 많이 변한 것 같기도 했다. 젊었을 때는 온화한 느낌이었다면 지금의 주이찬은 성숙한 남자의 매력과 도도함을 갖추고 있었고 차가운 눈빛에는 알 수 없는 감정들이 숨어 있었다.
강미나가 먼저 정신을 차리고 유수진을 이끌고 사과했다.
“죄, 죄송합니다. 방을 잘못 찾았어요.”
그러고는 재빨리 유수진에게 눈짓하며 그녀를 이끌고 도망치려 했다.
그들이 막 나가려 할 때 주이찬이 직접 호텔 방의 경보 버튼을 눌렀다.
“신고 좀 할게요. 방 번호 1109, 불법 침입 및 고의 상해 시도.”
바로 도착한 보안 요원들은 주이찬의 지시에 강미나만 데려갔다.
강미나는 미처 상황 파악을 하기도 전에 이미 끌려나갔다.
유수진은 순간 당황했다.
‘무슨 뜻이지, 왜 강미나만 데려가는 거지?’
게다가 강미나는 경찰서에 가면 안 되었다. 이제 막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는데...
지난 일 년 동안 강미나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면서 많은 고생을 했다. 그러니 강미나가 이런 일로 인해 인생이 망가지는 것을 절대 볼 수 없었다.
유수진은 앞으로 나아가 사정을 말했다.
“주이찬 씨, 우리는 진짜로 방을 잘못 찾은 거야. 그러니 제발 내 친구 좀 풀어줘.”
주이찬은 유수진을 바라보며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주이찬 씨?’
두 사람이 어쩌다 이렇게까지 낯선 사이가 되었단 말인가.
눈빛에 조소가 스친 주이찬은 이 순간 유수진과 말 한마디 나누는 것조차 싫어 방으로 돌아가 문을 닫았다.
그러자 유수진은 허둥지둥 문틀을 잡고 문을 닫지 못하게 막았다.
“주이찬 씨, 오늘 일은 다 내 잘못이야. 만약 화가 풀리지 않으면 차라리 나를 가둬. 내 친구는 제발 풀어줘.”
날카로운 눈빛으로 유수진을 바라보는 주이찬은 눈빛에 유수진에 대한 거리감이 여지없이 드러났다.
“하... 지금 나에게 비는 거야? 네가 그럴 자격이 있어?”
유수진은 순간 가슴이 이유 모르게 떨렸다. 지금의 주이찬은 더 이상 예전에 그 자상하고 따뜻한 소년이 아니었다.
“그럼 왜 나는 안 잡아가는데?”
주이찬은 회사 일 처리를 하는 것처럼 공식적인 태도로 말했다.
“왜냐하면 방금 나에게 물을 뿌린 건 그 여자지, 네가 아니니까.”
유수진의 목소리는 더욱 떨렸다.
“그럼 어떻게 해야 풀어줄 건데?”
“경찰에게 물어봐, 절차대로 처리할 테니까.”
말을 마친 주이찬은 유수진을 돌려보내려 했다.
“꺼져.”
하지만 유수진은 물러서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어도 강미나를 내버려 둘 수 없었기에 바로 주이찬의 방으로 들어갔다.
유수진을 바라본 주이찬은 비웃듯 입꼬리를 올렸다.
“유수진 씨, 이렇게 끝까지 물고 늘어지며 집착하는 모습, 너무 싸 보이는 거 알아?”
절친을 어떻게 구해야 할지 몰라 막막한 마음에 유수진은 그저 멍하니 주이찬을 바라봤다.
간통 현장을 잡으려다 방을 잘못 찾은 건 그렇다 치더라도 왜 하필 이 사람이었을까.
기억 속 주이찬은 비록 차갑고 도도하긴 했지만 그녀에게는 항상 따뜻했고 심한 말 한마디 함부로 못 하던 사람이었다.
주이찬은 비참하고 궁색한 모습의 유수진을 바라보았다.
‘많이 변했네.’
예전의 유수진은 도도하고 차가운 화려한 장미 같았지만 지금은 모든 것이 조심스러워 보였다. 눈빛은 그저 삶에 지쳐 상처만 가득한 것 같았다.
둘 다 의성 출신으로 유학을 마친 뒤 귀국한 후 언젠가 만날 날이 올 거란 걸 알았지만 이렇게 변해 있을 줄은 몰랐다.
‘하... 간통 현장?’
“유수진 씨, 돈 많은 남자 만나려고 모든 것을 버리고 해외로 갈 때는 언제고, 지금 보니 별로 잘 살지는 못하나 봐?”
유수진은 입술을 깨물며 용기를 내어 주이찬을 바라보았다. 부드럽게 말해도 소용없다면 강경하게 나아가는 수밖에.
“내가 잘사는지 못 사는지, 주이찬 씨 관심이 많나 봐? 아니면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나를 못 잊어서 내 친구를 경찰서에 가두고 일부러 이런 일로 나와 인연을 맺고 싶은 건가?”
쿵!
요란하게 닫히는 문소리와 함께 주이찬이 천천히 유수진에게 다가왔다.
“유수진, 네 말이 맞아. 예전에 네가 내 아래에서 방탕하게 있던 모습이 그리웠어.”
4년이라는 세월이 흘렀기에 유수진은 자신이 그 기억을 잊은 줄 알았다.
남자는 강력한 팔로 유수진의 쇄골을 누른 뒤 그녀가 움직일 수 없게 큰 힘으로 억압했다.
넓은 손바닥이 유수진의 목을 어루만지며 내려왔다.
순간 유수진은 몸이 떨렸고 온몸의 힘이 빠지는 듯했으며 몸에 전류라도 통과한 듯했다.
목, 그것은 그녀의 가장 예민한 부분으로 한 번 스치기만 해도 온몸이 녹아내릴 지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