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화
심은지는 미간을 찌푸렸다. 저편에서 유수아가 강우빈의 고함을 들은 듯 하자 심은지는 무의식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강우빈은 그 모습을 보고 기분이 더 나빠졌다.
‘지금 누구와 통화하고 있었던 거지?’
눈앞에 내던져진 이혼 합의서를 바라보며 심은지는 오히려 이상할 정도로 침착했다.
“도장은 찍었어?”
그녀는 마치 밥은 먹었냐고 묻는 듯 평온한 얼굴로 질문을 던졌다.
강우빈은 미간을 찌푸렸다. 화가 나서 웃는 건지 아니면 그녀가 단순히 홧김에 저러는 건지 알 수 없어 되물었다.
“강은우도 필요 없다고? 네가 열 달 동안 품에 안고 낳은 아들마저 필요 없다는 거야?”
“그래.”
심은지는 고개를 들어 그를 똑바로 바라봤다.
그 눈빛은 맑고 밝았다. 깊은 샘처럼 투명하고 깨끗했지만 그 속에는 더 이상 예전 같은 애틋함이 없었다.
“필요 없어. 어차피 은우도 나 같은 엄마 좋아하지도 않는데.”
마지막 말을 내뱉을 때, 그녀의 가슴은 저릿하게 아팠다.
강우빈은 답답한 숨이 막혀 미간을 찌푸렸다.
“은우는 아직 어려. 네가 상처받을 말을 해도 그 의미를 몰라. 그래도 넌 은우 엄마잖아.”
그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강은우를 목숨처럼 아끼던 심은지가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건지.
“모자간의 미움은 하룻밤만 지나면 풀리는 거야. 여섯 살 아이와 옹졸하게 싸울 필요 없어.”
그의 목소리는 품위 있는 냉담함을 풍겼다. 살짝 찌푸린 미간은 더욱 차갑게 보였다.
심은지에게 향한 그의 눈빛에는 짜증과 불만이 가득했다.
엄마가 아이에게 소극적이고 옹졸하다고 탓하는 듯했다.
심은지는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핏기가 사라진 입술은 창백하게 보였다.
“그만해. 이혼 얘기는 다시 꺼내지 마. 두 번 다시 듣고 싶지 않아.”
강우빈은 단호히 말하며 자리를 뜨려 했다. 그러나 심은지가 앞을 막아서며 또렷하게 선언했다.
“이혼하겠다는 말은 진심이야.”
심은지는 이혼 합의서를 강우빈에게 건네며 단호히 말했다.
“도장 찍어줘. 빨리 이혼하고 싶어.”
강우빈의 이마에 핏줄이 불거졌다.
“심은지, 도대체 뭘 하려는 거야? 끝까지 해보겠다는 거야?”
그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합의서를 낚아채더니 그녀 앞에서 산산이 찢어버렸다.
“이혼 안 한다고 했잖아! 앞으로 이 말 두 번 다시 꺼내지 마!”
찢어진 종잇조각이 바닥으로 흩날렸다.
그러나 심은지는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강우빈의 음산한 얼굴을 똑바로 노려보며 강경하게 말했다.
“이혼 안 하면 법원에서 보는 수밖에 없어. 이혼 소송도 난 꺼리지 않아. 온 세상에 소문나게 해주지.”
“지금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기나 해?”
강우빈은 침울하게 눈을 가늘게 뜨더니 차갑게 손을 뻗어 심은지의 손목을 움켜쥐었다.
“나와 이혼하려는 이유, 다른 남자 때문이야? 이혼을 도와준다는 그 변호사 때문이야?”
심은지는 그의 말도 안 되는 소리에 그의 손을 당장 뿌리치려 했다.
그러나 그녀가 몸부림칠수록 강우빈의 손아귀는 더 강하게 조였다.
얼굴이 새하얗게 질리도록 버티던 그녀는 결국 참지 못하고 비명을 터뜨렸다. 그제야 강우빈은 움찔하며 조금 진정했고 천천히 그녀의 손을 놓아주었다.
하얀 손목 위로 붉은 자국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나는...”
강우빈은 눈빛이 어둡게 가라앉으며 그녀에게 손을 뻗었다.
그러나 심은지는 잽싸게 피했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차갑게 내뱉었다.
“꺼져.”
“심은...”
“꺼져!”
심은지는 끝내 몸을 돌려 그의 시선을 완전히 차단해 버렸다.
강우빈은 그녀의 얼굴에서 맑은 눈물이 빠르게 흘러내리는 것을 보았다.
그는 뻗었던 손을 꽉 쥐었다가 풀고 다시 쥐었다. 그는 결국 음울하게 굳은 얼굴로 몸을 돌려 방을 나섰다.
그가 떠나자 심은지는 눈물을 거칠게 닦아내며 강우빈 앞에서 눈물을 보인 자신을 탓했다.
한참 후에야 그녀는 아까 그 짧은 시간 동안 유수아가 수십 통의 전화를 걸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마도 방금 강우빈과의 대화를 엿들은 듯했다.
심은지는 감정을 추스르고 전화를 걸었다.
“은지야, 괜찮아? 강우빈 그 망할 놈이 너한테 무슨 짓한 건 아니지?”
수화기 너머로 유수아의 걱정 어린 목소리가 눈앞에 선하게 그려졌다.
“괜찮아, 강우빈은...”
“지금 어디야? 내가 당장 데리러 갈게!”
유수아는 너무 다급해 그녀의 설명을 끝까지 듣지도 않았다.
아까 들었던 강우빈의 억압적인 질책이 떠올라 혹시 심은지가 폭행을 당하는 건 아닌지 걱정된 것이다.
“수아야, 나 정말 괜찮다니까. 이혼하면 돌아갈게.”
“안 돼!”
유수아는 단호했다.
“걱정돼서 안 되겠어. 강우빈 그 쓰레기 같은 인간이 너한테 손찌검이라도 하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 주소 보내. 지금 갈게!”
“수아야...”
“심은지, 거절하지 마. 빨리! 지금 데리러 갈 거야!”
유수아의 고집스러운 성격을 누구보다 잘 아는 심은지는 결국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조심히 와.”
마침 유수아가 옆 도시에 머물고 있어서 한 시간 정도면 도착할 수 있다고 했다.
...
한 시간이 지나자 유수아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그녀는 곧 별장으로 도착한다는 소식이었다.
심은지는 옷을 갈아입고 서둘러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뜻밖에도 거실 소파에 앉아 있는 강우빈과 마주쳤다.
그는 꼿꼿하게 앉아 있다가 내려오는 심은지를 보자 순간 멈칫했다.
그러고는 곧 그녀가 자신을 달래러 내려온 것이라 착각한 듯 고개를 돌려 외면했다.
심은지는 발걸음을 잠시 멈추었지만 곧장 별장 현관으로 향했다.
“이렇게 늦은 시간에 어디 가는 거야?”
그제야 강우빈은 그녀가 자신을 달래러 내려온 것이 아니라 외출하려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심은지는 잠깐 멈칫했을 뿐 곧장 현관으로 걸음을 옮겼다.
“쾅!”
등 뒤에서 무언가가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강우빈의 비웃음이 따라왔다.
“왜, 이렇게 늦게 내가 알면 안 되는 사람이라도 만나러 가는 거야?”
“맞아. 알면 안 될 사람.”
심은지는 코웃음을 흘리며 돌아보았다.
“강 대표님처럼 불륜녀를 집에 드나들게 하면서도 여전히 당당한 모습까지는 따라 하지 못하겠네요.”
그녀는 그의 표정을 제대로 보지 않고 곧장 별장을 나섰다.
‘모든 사람이 다 자기처럼 바람피울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밖으로 나서는 순간, 유수아의 차가 다가왔다.
“은지야, 타!”
심은지가 조수석에 오르자 유수아는 안전벨트를 풀고 그녀를 끌어안았다. 그녀의 눈에서는 눈물이 터져 나왔다.
“괜찮아, 아무 일도 없잖아.”
심은지는 눈시울이 붉어졌지만 억지로 눈물을 삼켰다. 그렇지 않으면 유수아가 더 크게 울 것 같았다.
한참 울던 유수아는 겨우 진정하고 웃으며 말했다.
“지금부터가 진짜 시작이야. 오늘 밤은 술 마시면서 실컷 즐겨! 내일부터는 그 쓰레기 같은 남자가 감히 넘볼 수 없는 여자가 되는 거야!”
말과 함께 그녀는 클러치를 밟고 기어를 변경하며 단지를 벗어났다.
“술은 됐어.”
“걱정하지 마. 모든 건 내가 책임질게. 오늘은 마음 놓고...”
“나 임신했어. 술 마시면 안 돼.”
“뭐라고?”
“끼익!”
급제동에 타이어가 찢어지는 듯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유수아는 눈을 크게 뜨고 심은지를 노려봤다.
‘이혼하려는 마당에 전남편의 아이를 임신했다고?’
“이 아이, 그 쓰레기는 알아?”
심은지는 강우빈을 ‘쓰레기’라 부르는 말을 듣고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대답하려는 순간, 뒤차 운전자가 경적을 울리며 소리쳤다.
“운전을 어떻게 하는 거야? 비싼 차라고 길 한복판에 막 세워놔도 되는 줄 알아?”
유수아는 백미러를 흘끗 보더니 이를 악물었다.
“일단 호텔로 가자.”
호텔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한밤중이었다. 두 사람은 늦은 시각까지 이야기를 나누다 지쳐 겨우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휴대폰 벨 소리에 심은지가 잠에서 깼다.
손을 뻗어 전화를 받자 창밖은 이미 밝아져 있었다.
전화기 너머로 강우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은지야, 은우가 네가 끓여준 국을 먹고 싶대.”
심은지는 졸음이 가시며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