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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1화

해 질 무렵, 하루 종일 집에서 쉬던 심은지는 가방을 집어 들고 잠시 산책이라도 나가 볼까 하며 문을 열었다. “왜 여기에 있어?” 문 앞에 서 있는 부자를 본 순간, 심은지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었다. “엄마... ” 강은우가 조심스럽게 그녀를 불렀다. 그 아이 눈 속에 비치는 불안과 망설임을 본 심은지는 잠깐 마음이 흔들렸지만 이내 모든 감정을 억눌렀다. “너희 우리 부모님을 찾아간 거야?” 차가운 목소리로 그녀가 물었다. 강우빈을 바라보는 눈빛에는 숨김없는 분노가 어려 있었다. “미안해, 은지야. 요즘 계속 나를 피하니까 너무 걱정됐어.” 강우빈은 변명하지 않았다. “나를 걱정했다고? 아니면 아이가 걱정된 거야?” 비웃는 목소리로 심은지가 물었다. 강우빈은 주저 없이 대답했다. “당연히 너를 걱정한 거야, 은지야. 내가 너의 눈에 그렇게 한심하게 보여?” 그의 눈빛에는 감추지 못한 슬픔이 번졌다. 마치 그녀가 ‘그래, 한심해’라고 말하면 금세 눈물이라도 흘릴 것 같았다. 심은지는 고개를 저었다. 잠깐 정신이 아찔했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이 사람은 강우빈이야. 나 때문에 눈물을 흘릴 리가 없잖아.’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어. 어쨌든 여기는 당신이 올 곳이 아니니 돌아가. 그리고 제발 우리 부모님께 다시는 폐 끼치지 말아 줘.” 심은지는 이미 부모님께 너무 많은 걱정을 끼쳤다. 강우빈 때문에 또다시 번거롭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의 노골적인 거절에 강우빈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때 강은우가 조심스레 한발 다가섰다. “엄마, 나는 여기 있어도 돼요?” 그의 눈에는 작은 기대가 어려 있었다. ‘엄마가 나를 내쫓지 않았으니 나한테는 화가 별로 안 나셨을 거야.’ 심은지는 강은우의 눈을 피하며 감정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너는 당연히 아빠랑 같이 가야지.” 순간 강은우의 눈빛이 시들해졌지만 이내 애써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알겠어요, 엄마 말 잘 들을게요. 그런데 엄마, 이번 주 금요일에 내 졸업식이에요. 엄마도 같이 와줄 수 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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