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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진시후는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주영석은 진시후가 동의하자 감격한 얼굴로 그를 이끌고 꼭대기 층에 있는 병실로 향했다. 그곳으로 가는 길에 주영석은 진시후의 기본 정보를 물어봤는데 진시후가 의대를 다닌 것도 아니고, 한의학을 배운 적도 없다고 하자 굉장히 당황스러워했다. 이내 두 사람은 최고급 VIP 병실에 도착했다. 병실 안에는 열 명이 넘는 전문의들이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고 첨단 의료기기들이 요란하게 소리를 내고 있었다. “잠시만 지나갈게요. 제가 실력이 아주 대단한 선생님을 모셔 왔습니다. 이분은 조금 전 3년 동안 식물인간 상태였던 환자를 깨어나게 하셨어요. 그러니까 진 선생님께서 환자의 상태를 살펴볼 수 있게 자리를 내어주세요.” 주영석은 그렇게 설명하면서 진시후를 데리고 병상 앞으로 갔다. 병상 위에는 백발이 성성한 양준성이 기운 없는 얼굴로 누워 있었다. 양준성은 얼굴에 검붉은 빛이 감돌았고 눈알은 불룩하게 튀어나왔으며 얇은 혈관들이 흰자 위로 선명히 드러나 있었다. 주영석이 빠르게 설명했다. “진 선생님, 환자분께서는 아주 심각한 심부전을 앓고 있어요. 저희가 여러 가지 방법을 다 시도했음에도 심근세포의 괴사를 막을 방법은 없었어요. 진 선생님께서는 혹시 다른 방법이 있으실까요?” 진시후는 손을 뻗어 양준성의 가슴께를 만져봤다. 영기가 양준성의 심장을 따라 퍼지기 시작했고 이내 진시후는 병의 근원을 알아냈다. 진시후가 말했다. “병의 근원은 심장이 아니라 폐에 있습니다.” “네? 환자분은 폐가 멀쩡한데요.” 주영석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진성에서 온 교수 조승안은 옆에서 진시후의 말을 듣고는 코웃음을 치면서 말했다. “영석 씨, 영석 씨 명문대 졸업한 뒤 꽤 오랫동안 경험을 쌓은 걸로 알고 있는데 설마 아직도 한의학을 믿는 거예요?” 주영석이 황급히 설명했다. “조 교수님, 진시후 씨는 진짜 실력이 대단하신 분입니다. 조금 전에 식물인간을 단번에 깨우셨다니까요. 진짜 엄청난 분이세요. 전 예전에는 한의학을 믿지 않았지만 지금은 그 누구보다도 굳게 믿습니다.” 조승안은 그 말을 듣더니 눈을 흘겼다. 진시후는 쓸데없는 말은 하지 않고 곧장 양준성의 폐가 있는 쪽을 손바닥으로 때렸다. “지금 뭐 하는 거예요?” 조승안이 호통을 쳤다. “그러다가 환자분이 죽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래요?” 주영석이 곧바로 말했다. “조 교수님, 전 진 선생님을 믿습니다. 이제 곧 기적이 일어날 테니 지켜보세요.” 이때 병상 위에 누워있던 양준성이 갑자기 심하게 몸을 떨기 시작했고 곧이어 병상 옆에 있던 심전도 모니터의 선이 일직선으로 바뀌었다. 양준성이 죽었다. “심정지가 왔어요. 어서, 어서 아드레날린 준비하세요.” “수술실 준비하세요. 1분 뒤부터 응급 처치 시작하겠습니다.” “개흉술 준비하세요. 기도 확보하고 인공심폐기 연결하세요.” 병실 안의 의료진들이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조승안은 안색이 어두워진 채 큰 목소리로 말했다. “괜히 힘 빼지 마세요. 환자분은 가망이 없습니다. 그러니 그냥 편히 보내줍시다. 휴, 저는 양준성 씨와 오랫동안 친분을 유지했는데 오늘 이렇게 허망하게 떠나보내게 될 줄은 몰랐어요.” 주영석은 입을 떡 벌린 채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그의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그는 진시후가 아주 대단한 의사인 줄 알았다. 그런데 진시후는 단번에 양준성을 죽여버렸다. 조승안은 고개를 돌려 주영석을 바라보더니 이를 악물며 말했다. “주영석 씨, 주영석 씨는 이 병원의 의사면서 한의학을 맹목적으로 믿어서 의료 사고를 초래했어요. 두 사람만 아니었어도 양준성 씨는 최소 3일은 더 살았을 거예요. 하지만 이젠... 흥! 양씨 가문 사람들이 가만있지 않을 테니까 각오하고 있어요.” 주영석은 그 말을 듣고 겁을 먹어서 몸을 덜덜 떨었다. 그는 진시후의 옷자락을 잡고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진 선생님, 먼... 먼저 가세요. 진 선생님은 면허가 없으니 환자 보호자들이 추궁한다면 징역형을 면치 못할 거예요.” 진시후는 피식 웃으며 주영석의 어깨를 툭툭 쳤다. “걱정하지 마세요. 전 양준성 씨를 구할 수 있거든요.” “네? 구한다고요? 조금 전에 진 선생님이 양준성 씨를 죽였잖아요!” 조승안은 씩씩대면서 진시후를 나무랐다. 진시후는 더 설명하지 않고 침대 옆으로 걸어가 손바닥으로 양준성의 이마를 탁 때렸다. 그러자 심장 박동이 멈췄던 양준성이 갑자기 격렬히 기침하기 시작했다. “콜록콜록... 콜록콜록... 웩!” 양준성이 갑자기 피가 섞인 가래를 뱉어냈다. 그리고 그 뒤로 양준성은 눈을 뜨고 멍한 얼굴로 주위를 둘러봤다. 이때 심전도 모니터 수치가 다시 회복되었다. 그의 심장은 멀쩡했다. “휴, 다행이에요. 정말 다행이에요!” 주영석은 기쁜 얼굴로 외쳤다. “환자분께서 살아나셨을 뿐만 아니라 심장도 괜찮아졌어요! 심부전이 씻은 듯이 나았어요!” “이건 기적이 분명해요!” “세상에, 저게 정말 한의학이라고요? 한의학이 저렇게 대단했나요?” “사람이 죽었다가 살아나다니. 사십 년 넘게 의사로 일했지만 이런 일은 처음이에요!” 조승안은 큰 충격을 받은 듯이 진시후와 양준성을 번갈아 보았다. 그는 앞으로 나서며 주영석을 옆으로 밀어낸 뒤 감격한 얼굴로 진시후의 팔을 잡고 말했다. “진짜로 명의시네요! 제가 안목이 없었습니다. 전 정말 우물 안 개구리였네요. 진 선생님, 저를 제자로 받아주시겠어요? 전 앞으로 양의학을 버리고 진 선생님과 함께 한의학을 배우고 싶습니다!” 그러나 진시후는 손을 저으며 말했다. “사실 이건 순수한 한의학이 아니에요. 그리고 제 의술을 배우는 것도 불가능하고요. 그리고 저는 죽은 사람을 살려낼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제가 앞서 말했다시피 양준성 어르신은 폐에 문제가 생겨서 병을 앓게 된 겁니다. 폐에 혈전이 있어서 심부전 증상이 나타난 거죠. 제가 제일 처음 때렸을 때 어르신은 가사 상태에 빠졌는데 그것은 사실 몸이 힘을 모으는 과정이었습니다. 그래서 성공적으로 혈전을 뱉어낼 수 있었던 거죠.” 사람들은 그 말을 듣고 그제야 깨달았다. 진시후가 몸을 돌려 자리를 뜨려는데 병상 위 양준성이 진시후의 손을 잡았다. 양준성이 말했다. “진 선생, 진 선생이 내 목숨을 구해줬으니 내게 보답할 기회를 줬으면 좋겠어. 잠시만 기다려주겠나? 내 손녀가 곧 올 거거든. 내 손녀가 진 선생이 바라는 건 뭐든 들어줄 거야.” 진시후가 거절하려고 했지만 양준성은 절대 그의 손을 놓아주지 않았다. 잠시 뒤 병실 문이 열리고 보라색 원피스를 입은 아름다운 여자가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할아버지, 저희 할아버지 괜찮으신 건가요? 갑자기 위독하시다니 대체 어떻게 된 일이에요?” 여자가 다급한 얼굴로 물었다. 고개를 돌린 진시후는 여자를 본 순간 당황했다. “양나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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