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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그 말 한마디에 서고은은 코끝이 시큰해졌다. 예전에 서동수와 싸우고 집을 뛰쳐나오면 이시현은 늘 차를 몰고 도시 전체를 뒤지다 결국 서고은을 찾아내 등에 업고 집으로 돌아갔다. “또 왜 이래?” 그때도 이시현은 늘 그렇게 말했다. 서고은은 그의 등에 얼굴을 묻고 차갑고 청량한 시더우드 향을 깊이 들이마시며 그가 어쩌면 자신을 조금은 좋아할지도 모른다고 철없이 믿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시현보다 더 개 같은 사람도 없었다!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계속 서고은과 잠자리하고 잠자리가 끝나면 서재에 들어가 임단비의 사진을 바라보며 다정한 표정을 짓고 임단비의 생각에 빠져있었을 이시현을 서고은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도대체 내가 임단비보다 못한 게 뭐야? 가문, 외모, 몸매, 무엇 하나 뒤처지는 게 없는데. 이시현은 그 많은 여자 중에서 왜 하필 임단비여야 할까?’ “놔!” 눈가가 붉어진 채 서고은은 이시현의 손을 있는 힘껏 깨물었다. 그는 미간을 찌푸렸지만 아무 말 없이 시동을 걸었다. 이시현은 차를 몰아 별장으로 돌아오더니 그녀의 캐리어를 들고 그대로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셔츠를 풀며 담담하게 말했다. “예전처럼 네가 집에 돌아가고 싶어질 때까지 여기서 지내.” 서고은은 현관에 서서 손바닥이 파일 정도로 주먹을 움켜쥐었다. “나는 반달만 있을 거야. 반달이 지나면 여기서 나갈 거고 방값은 낼게. 앞으로 너에게 폐도 안 끼칠 거야.” “폐를 안 끼친다고?” 이시현이 천천히 고개를 들어 서고은을 바라봤다. 금빛 테 안경 너머로 떨어지는 시선은 한없이 깊었다. “그게 네가 할 수 있는 일이야?” 그 한마디는 칼처럼 그녀의 가슴을 찔렀다. 이시현은 이미 눈치채고 있었다. 처음에는 사사건건 부딪치던 관계에서 언제부턴가 서고은은 이시현 없이는 살 수 없는 정도로 변해버렸다는 걸. 서고은이 이시현을 너무 사랑하게 됐다는 걸. ‘그렇다면 이시현은? 가슴속에는 첫사랑을 품고서 내가 무너지는 걸 가만히 지켜보는 걸까.’ “임단비...” 서고은은 갑자기 입을 열었다. “내 계모의 딸이야. 알고 있었어?” 풀던 넥타이를 멈추며 이시현이 대답했다. “오늘 알았어.” 잠시 침묵이 흐르고 결국 그녀는 견디지 못하고 물었다. “너와 임단비는 어떤 사이야?” “내 후배야.” 물을 따라 한 모금 마시고는 이시현이 말을 이었다. “같은 학교 동아리였고 예전에 교통사고 났을 때 나를 구해준 적이 있어. 그 뒤로 단비 건강이 나빠져서 오랫동안 해외에서 요양했어.” 그는 서고은을 바라보며 가볍지만 확실한 경고를 담은 눈빛으로 말했다. “네가 계모를 싫어하는 건 알지만 그건 단비와는 아무 상관없어. 괜히 단비에게 화풀이하지 마.” 서고은은 목구멍이 꽉 막혀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원래는 이시현에게 임단비를 좋아하는지 묻고 싶었지만 지금은 그 물음조차 너무 우스웠다. 이시현의 행동을 보면 굳이 대답을 들을 필요도 없었다. 그녀는 방으로 돌아가 문을 세게 닫았다. 그날 밤, 이시현은 이례적으로 서고은을 찾아오지 않았다. 그녀는 침대에 누워 천장을 멍하니 바라봤다. ‘그래. 첫사랑이 돌아왔는데 나 따위를 신경 쓸 여유가 없겠지.’ 다음 날, 일부러 정오가 될 때까지 자면서 이시현을 피하려고 했다. 문을 열자 이시현은 아직도 거실에 있었다. 그는 소파에 앉아 금테 안경을 코에 걸친 채 경제 잡지를 넘기고 있었다. “깼어?” 그는 고개도 들지 않고 말했다. “회사 안 가?” “주말이야.” “응.” 서고은은 대충 대답하며 냉장고에서 디저트를 꺼내 방으로 돌아가려 했지만 이시현이 갑자기 말을 꺼냈다. “옷 갈아입어. 저녁에 나와 같이 파티에 참석하러 가야 돼.” 원래는 거절하려 했지만 서고은은 이시현과 단둘이 있는 것보단 그게 낫겠다 싶었다. 하지만 도착하고 나서야 이 파티는 임단비의 환영 파티라는 걸 알았다. 서고은은 돌아가려 했지만 임단비가 환하게 웃으며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 “언니, 와줘서 너무 기뻐요. 삼촌이랑 싸우지 마세요. 언니가 집을 나가고 나서 하루 종일 밥도 못 드시고 걱정하셨어요.” 서고은은 냉소를 터뜨렸다. “너도 삼촌이라는 건 알기는 아네? 그럼 내가 집을 나가든 말든 그 집에서 누구와 싸우든 말든 너랑 무슨 상관이야? 오지랖이 왜 이렇게 넓어?” 그녀는 임단비의 손을 뿌리치고 안쪽 룸으로 걸어 들어갔다. 옆눈으로 보니 임단비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로 이시현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시현은 어두운 눈빛으로 서고은을 향해 스치듯 경고하더니 이내 임단비의 머리를 다정하게 쓰다듬으며 임단비에게 뭔가를 속삭였고 임단비는 금세 웃음을 되찾았다. 서고은의 가슴이 또 찢어질 듯 아파졌다. 그녀는 시선을 떨구고 샴페인을 한 번에 들이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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