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화
새벽이 된 후에야 신지은은 잠에 들었지만 곧바로 익숙한 악몽에 다시 빠져들었다.
또다시 그날, 연습실이 폭발하던 순간으로 돌아갔다.
눈을 찌르는 백색의 섬광과 귀를 찢는 굉음, 그리고 세상이 한순간에 조용해진 듯한 숨 막히는 정적.
신지은은 톱밥이 가득한 바닥에 웅크린 채 귀에서 흘러나오는 따뜻한 액체에 움찔했다.
곧, 강재민이 가장 먼저 뛰어 들어와 그녀를 끌어안았다.
그는 분명 무언가를 외치고 있었지만 신지은은 아무 소리도 들을 수 없었다.
그저 그의 하얀 셔츠 위로 빠르게 번져 가는 자신의 피만 보일 뿐.
신지은은 너무 놀라 숨을 들이마시며 눈을 번쩍 떴다.
심장은 마치 엄청 빠른 달리기를 한 듯 빠르게 뛰었고 등에는 식은땀이 줄줄 흘러 옷까지 젖어있었다.
원룸 안은 깜깜했고 강재민은 안이서와 함께 외출한 듯 어떤 기척도 없었다.
신지은은 몸을 일으켜 침대 옆 스탠드를 켰다.
희미한 노란 불빛은 가슴 깊숙이 스며든 냉기를 조금도 몰아내지 못했는지 기억은 통제할 수 없이 밀려왔다.
사고 이후 나온 진단 결과는 영구적인 신경 손상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병상 앞에서 오래도록 말이 없었고 어머니는 눈가가 붉어진 채 짧은 메모를 남겼다.
[지은아, 집에서는 더 이상 치료비가 감당이 안 돼.]
그들은 마지막으로 남은 돈을 두고 한숨과 함께 떠났다.
강재민은 어마어마한 수술비와 수입 약값을 대신 내주면서도 단 한 번도 내역을 보여 준 적이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호적등본을 들고 와 결혼하자고 수어로 말했다.
그날, 신지은은 당황한 나머지 다급하게 강재민을 말렸었다.
[너 미쳤어? 나랑 결혼하면 네 집에서 널 가만두지 않을 거야!]
그러자 강재민은 그녀의 손을 잡아 자신의 가슴에 갖다 댔다.
[난 너만 있으면 돼. 앞으로 평생 네 옆에서 널 지킬 거야.]
그 순간, 신지은의 마음속에 있던 모든 의심과 불안은 사랑이라는 ‘파도’에 완전히 잠겨 버렸다.
사실 신지은도 그날의 사고를 의심하지 않았던 건 아니다.
회복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재검진 결과를 마주할 때마다 분노와 절망감이 물밀듯 밀려왔다.
그녀는 강재민의 손을 움켜쥐고 그의 손바닥에 힘껏 글자를 썼다.
[꼭 조사해야 해. 누군가 고의로 나를 해친 게 분명해!]
그럴 때마다 강재민은 바로 신지은을 끌어안고 등을 토닥이며 휴대폰에 글자를 써 보여 주었다.
[범인은 당연히 찾을 거야. 하지만 지금은 네 몸이 제일 중요해. 이런 생각은 하지 말고 다 나한테 맡겨. 알겠지?]
그때의 신지은은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붙잡듯 그를 전적으로 믿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게 얼마나 우스운 일이었는지 뼈저리게 느껴졌다.
왜냐하면 그때의 강재민은 그저 흔적을 지우고 있을 뿐이었으니까 말이다.
강재민은 다정한 간병과 결혼이라는 이름으로 그녀의 감정을 안정시키며 속으로는 안이서의 생각을 했을 것이다.
심지어 안이서가 신지은을 ‘밟고’ 올라서 더 높은 곳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시간을 벌어 주고 있었다.
신지은은 마침내 이 관계에 숨겨져 있던 내막을 깨부수고 이미 썩어 문드러져 있던 진실을 보았다.
날이 희미하게 밝아 올 무렵, 신지은은 집을 나섰다.
그녀는 당시 사건을 담당했던 경찰서를 찾아갔고 그곳에서 전지훈이라는 경찰을 만났다.
그는 이제 경찰서 부서장이 되어 있었다.
전지훈 역시 신지은을 기억하고 있었고 그녀의 용건을 듣자 당시 상황을 떠올리는 듯 표정이 미묘해졌다.
그는 그해의 기록을 꺼내 신지은에게 낱낱이 보여줬다.
“사고 다음 날, 연인 강재민 씨가 먼저 찾아왔습니다. 이건 개인 간의 분쟁이라고 하면서 합의서를 들고 왔어요. 입원 중인 신지은 씨가 그렇게 하겠다고 하더군요. 게다가 연습실의 CCTV가 분실돼 직접적인 증거가 없어서 절차대로 종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신지은은 전지훈의 말에 제자리에 얼어붙었다.
곧, 그녀는 그 당시 봤던 강재민 모습이 떠올랐다.
그는 분명 차분하고 믿음직한 얼굴로 여자 친구를 걱정하는 남자 친구를 연기했지만 가장 잔인한 선택을 했다.
그녀가 중환자실에서 고통과 공포로 떨고 있을 때, 강재민은 안이서를 위해 신지은 대신 용서를 선택했고 모든 추적의 가능성을 깨끗이 지워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