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고개를 살짝 든 허태윤은 날카로운 눈으로 아무도 없는 다락방 베란다를 쳐다봤다. 잠시 침묵한 그는 조용히 지시했다. “저들을 데리고 먼저 들어가!” 어… 그게… 정시후는 몹시 의아했지만 대표님의 지시에 토를 달 수는 없어 하는 수 없이 들러리들에게 손짓했다. “자, 다들 저를 따라 먼저 들어오세요!” 허 씨 가문 신부 맞이 대오는 고 씨 집안 입구에 있는 신부 들러리들과 게임을 시작했고 분위기는 몹시 떠들썩했다! 하지만 진짜 신랑은 이미 고씨 집안 별장의 뒷문으로 향했다는 건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고씨 집안 뒷문. 한 여자가 거침없고 단호한 걸음으로 결혼 행진곡을 부르며 빠져나왔다. 하지만 몇 걸음 걷기도 전에 뒷덜미가 강한 힘에 덥석 잡히더니 그대로 들어 올려져 양 발이 허공에 떴다. 마치 도살장에 잡힌 어린 양 같았다… “도망가려는 겁니까.” 첼로 소리처럼 낮은 남자의 위험한 목소리가 차갑게 귓가를 울렸다. 고연화는 자신을 습격한 남자를 등지고 있었지만 단박에 목소리의 주인이 누군지 알아맞혔다. 바로 허태윤이었다! 방금 전 그 먼 곳에서 한 번 눈이 마주쳤을 뿐인데 무려 그녀를 알아본 것이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그녀는 플랜 B도 준비하고 있었다. 고개를 돌려 허태윤을 바라본 고연화는 목소리를 변조하고 혀를 부풀리며 버벅대며 말했다. “아…아조시, 누…누구세여? 왜 조를 붙잡는 고에요?” 고개를 돌린 여자의 얼굴을 본 허태윤은 순간 멈칫하더니 귀신이라도 본 듯 별안간 손을 놓았다. 눈앞의 여자는 얼굴 빼곡히 점이 가득했고 갈매기 눈썹에 소세지 같은 입술을 한 데다 오색찬란한 섀도우까지 바르고 있었다. 몹시 정교하게 못생긴 얼굴은 어디 내놔도 빠지지 않을 얼굴이었다. 고연화는 못생기게 그린 자신의 얼굴에 허태윤이 놀라 얼굴색이 바뀌는 것을 보고는 속으로 통쾌해했다! 이내 그녀는 바보인 척하며 말했다. “아조시, 신부 맞이하로 온 거져? 문 잘못 드러써여! 신부 맞이는 정문으로 가야해여. 아조시 신부는 지금 정문에서 아조시 기다리고 이써여!” 허태윤은 눈을 가늘게 뜨며 눈앞의 못난이를 차갑게 쳐다봤다. 하마터면 그녀의 수작에 속아 넘어갈 뻔했다. 남자는 얇은 입술로 조롱하듯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그래요? 그럼 손에 왜 허 씨 가문이 특별 제작한 약혼반지를 끼고 있는 겁니까?” 말을 마친 허태윤은 그녀의 손을 끌어와 들어 올리더니 차가운 눈빛으로 약지에 있는 다이아 반지를 쳐다봤다. “…” 망했다! 까먹고 빼지 않은 게 아니라 이 반지는 그녀의 손에 붙어버리기라도 한 듯 비누칠을 해도 도무지 빠지지가 않았다! 허태윤은 두 눈은 어둡게 가라앉은 채 조용히 그녀를 관찰했다. 고연화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눈에 훤해 그는 입을 열어 그녀의 궁금증을 해소해 줬다. “괜한 힘 뺄 필요 없습니다. 그 반지의 고리는 백금에 특수 재료를 섞어 만든 거라 특별 제작한 오일을 발라야만 뺄 수 있어요.” 고연화는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정말 음험한 계략이었다! 그래, 도망칠 수 없으니, 인정하는 수밖에! “아저씨, 이렇게 된 이상, 우리 터놓고 얘기합시다! 저 아저씨가 진심으로 저랑 결혼하려 하는 게 아니라는 거 알아요. 쟤가 나보다 예쁘고 몸매도 좋으니까 쟤랑 결혼하는 게 훨씬 좋을 거예요!” 허태윤은 눈을 가늘게 떴다. 눈앞의 여자애는 진심으로 자신과 결혼이 하기 싫은 모양이었다. 게다가 피하지 못해 안달인 모양이었다. 오히려 신선했다! 여태까지 여자들은 그만 보면 하나같이 온갖 수단을 동원해 그의 관심을 끌고 그의 여자가 되려 했었다. 그리고 그가 바라는 것은 이렇게 달라붙지 않는 여자였다! 허태윤은 얇은 입술을 열었다. “반지를 끼고 있는 사람이 내가 결혼하려는 사람입니다.” 고연화는 미간을 찌푸렸다. “… 그거야 간단하죠! 그 특별 제작이니 뭐니 하는 오일 가져와요. 지금 당장 빼서 돌려줄 테니까. 가서 고설아에게 끼워주면 되겠네요!” 허태윤은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없어요.” “그럼 사와요!” “실전돼서 살 수 없어요!” “아, 그래요…” 고연화는 이를 바득바득 갈며 억지웃음을 짓더니 손을 들어 남자 등 뒤를 가리켰다 “아저씨, 저기 봐요! 오색찬란한 돼지예요!” 무표정을 유지하는 허태윤의 얇은 입꼬리가 눈에 띄지 않게 부들거렸다. … 유치했다. 다음 순간, 곧바로 달려 나가려던 고연화는 다시 한번 남자의 손에 운명의 뒷멀미가 잡혀 그대로 들어 올려졌다. 그런 뒤 몹시 덤덤한 자세로 그대로 끌려갔다. 고연화가 있는 힘껏 발을 굴렀지만 소용이 없었다. …… 다른 한쪽, 정시후가 잘생긴 신랑 들러리들과 함께 고 씨 집안 거실에 들어서자마자 그의 휴대폰이 울렸다. 허태윤의 전화였다. 걸음을 멈춘 그는 공손하게 전화를 받았고, 정시후가 굳은 표정으로 몸을 돌리자 신랑 들러리들도 따라서 등을 돌려 떠났다. 그 모습에 우쭐해하던 류예화는 순간 이해가 되지 않아 서둘러 쫓아가 물었다. “정 비서님, 신부가 안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어디 가시는 거예요?” 정시후가 류예화를 보며 말했다. “저희 대표님께서 직접 신부분을 모시러 가셨습니다.” 류예화는 그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만났다고요? 그럴 리가요! 저희 설아는 아직 방 안에 있는걸요!” 정시후는 미간을 찌푸렸다. “설아요? 사모님, 착각하셨나 본데, 저희 대표님이 결혼하고자 하는 따님분은 설아라는 이름이 아닙니다!” 말을 마친 그녀는 차갑게 류예화를 지나치더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났다. 류예화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는 제 자리에 얼어붙었다. 뭐라고? 착, 착각이라니?! 친척들과 지인들도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친척들에게 둘러싸여 아첨을 듣던 고백천은 순식간에 조롱의 대상이 되었다! 체면이 바닥에 떨어진 고백천은 안색이 안 좋을 대로 안 좋아져 곧바로 그 화를 크게 파티를 열라고 한 류예화에게 풀었다. “류예화!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허씨 가문 도련님이 결혼하겠다고 한 사람이 설아라고 하지 않았어?” 류예화는 억울한 얼굴로 말했다. “저도… 저도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어요! 그날 허 씨 가문에서 예물을 가져왔을 때 우리 딸이랑 결혼하겠다고 했단 말이에요. 우리집에 예물까지 보내왔잖아요… 백천 씨, 백천 씨도 다 봤잖아요!” 고백천 그대로 류예화의 뺨을 때렸다.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함부로 뭘 준비해. 우리 고 씨 집안의 체면은 네가 다 깎아 먹었어!” 그리고 내내 신랑이 데리러 오길 기다리고 있던 고설아는 바깥에서 들리는 싸움 소리에 웨딩드레스를 끌고 방에서 나오며 물었다. “아버지… 엄마! 뭐 하시는 거예요! 제 신랑은요, 우리 도련님은요?” “설아야, 허 씨 가문 사람이 그러는데 착각했대. 그쪽에서 이미 진짜 신부를 데리고 갔대!” 고설아는 아연실색했다. “뭐라고? 엄마! 이런 일을 착각할 수가 있어? 도련님은 나랑 결혼하려던 게 아니었어?” 류예화는 고백천에게 맞아 아픈 얼굴을 부여잡았다. “설아야, 엄마 미워하지 마. 엄마도 머리가 다 혼란스럽구나…” 진작부터 고씨 집안 모녀의 득의양양하던 꼴이 못마땅했던 친척들은 전부 한소리씩 하기 시작했다. “설아야, 이렇게 된 거 김칫국 그만 마셔! 생각만 해도 뻔하지, 허 씨 가문 도련님 같은 사람이 어떻게 스캔들 가득한 너 같은 딴따라를 만나겠어!” “네 주제에 제 1가문인 허 씨 가문에 어떻게 시집가나 이해가 안됐는데, 알고 보니 착각이었구먼!” “설아야, 가서 연기나 제대로 해! 넌 드라마에서나 대표님한테 시집갈 수 있잖아! 하하하…” 고설아는 친척들의 조롱을 참을 수가 없어 류예화를 노려본 뒤 서둘러 방으로 들어갔다. 짜증 나, 쪽팔려서 사람들 얼굴을 어떻게 봐! 하지만, 착각했을 리가! 허씨 가문 도련님은 반지를 줬잖아? 아니! 고설아는 믿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믿고 싶지 않았다. 그녀의 도련님은… 도대체 어떤 여자를 데려간 걸까? 정체가 뭘까? 그 여자도 고 씨에 이 근처에 사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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