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7화 유혹
한민정의 얼굴빛이 서서히 창백해졌다.
테이블 아래에 둔 손은 어느새 주먹을 꽉 쥔 상태였고 힘이 들어간 손마디가 하얗게 질려 있었다.
유채은이 내뱉은 말 한마디 한마디는 모두 사실이라 부정할 수도, 외면할 수도 없었다.
한민정은 신해정을 높이 평가해 왔다.
재능도, 성실함도 단 한 번도 의심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호감과 신뢰만으로는 스튜디오를 굴릴 수 없다.
스튜디오에는 아직도 월급을 기다리는 직원들이 있었으니까.
그건 한민정이 직접 세우고 지금까지 지켜온 모든 것이었다.
눈앞에서 그렇게 무너지는 걸, 그녀는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유채은은 그 미세한 흔들림을 놓치지 않았다.
“그래도 지금, 기회가 남아 있어요.”
그녀는 느긋하게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여유로운 눈빛으로 한민정을 바라봤다.
“주혜진 배우의 주문을 다시 찾을 기회요.”
한민정은 입술을 세게 깨물었다.
유채은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정당한 방법일 리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세나 스튜디오는 이미 벼랑 끝에 서 있었기에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결국, 이성은 현실 앞에서 하나둘 무너져 내렸다.
한민정은 천천히 고개를 들고 힘겹게 입을 열었다.
“무슨 기회죠?”
유채은은 그녀의 눈빛에서 동요를 확인한 순간,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몸을 조금 더 가까이 기울이며 목소리를 극도로 낮췄다.
“주혜진 배우님 임신했어요. 두 달 넘었고요.”
한민정의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
그제야 전수진의 기이했던 요구들과 신해정이 너무도 손쉽게 그 주문을 따낸 이유가 모두 하나로 맞아떨어지는 거 같았다.
“만약 주혜진 배우님이 자신의 임신이라는 엄청난 비밀이 해정 씨 때문에 밖으로 새어 나갔다는 걸 알게 된다면요. 그땐... 어떻게 될까요?”
한민정의 머릿속이 윙하고 울렸다.
순간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유채은은 가장 잔인한 방식으로 신해정을 ‘고객을 배신한 디자이너’, ‘직업 윤리조차 없는 사람’으로 만들어버릴 생각이었다.
...
주혜진은 지금, 최고의 자리에 있는 톱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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